나를 살린 불멸의 구원 투수

- 최동원, 쓸쓸한 시간을 향해 던지던 볼

by 이지현

나의 영원한 11번



'NC 다이노스 김택진, 우승 트로피 들고 영웅 故최동원부터 찾아'


뉴스의 헤드라인을 읽는 순간 다시, 내가 유일하게 아는 야구 선수 이름, 최동원.

영원한 11번을 떠올린다.


언젠가 MBC서 '불멸의 투수 최동원'에 대한 다큐를 찍는데, 내 글을 보고 연락한다면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었다. 그 시간은 내게 매우 힘들고 쓸쓸했던 시간이어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 전화가 수차례 왔지만 계속 사양하다가 잠깐 응했다.


MBC 다큐, '불멸의 투수 최동원' 인터뷰 장면


내가 힘들었던 시절, 정신적으로 힘이 되었던 고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진지하게 응했다.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공을 던지던 에이스 투수 최동원을 보며, 나도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야지,라고 생각하며 힘을 내곤 했던 그 시절.

공을 맞으면 맞을수록 오히려 더 직구를 던지던 최동원 선수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나도 결코 병에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그 시간.




쓸쓸한 여고 시절을 향해 던진 볼



그해 내게는 오로지 텔레비전만이 친구였다. 학교를 가지 못하고 아파서 집에만 있던 나는 책 읽기나 교과서 공부도 아무 의미가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재미를 붙인 것이 고교야구였다. 내 또래의 남학생들이 나와서 볼을 치고 던지고 달리고 하는 광경을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보았다. 야구의 규칙 같은 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운동을 재미있어하지도 않았고, 좋아하지는 더 않았다. 그 또래의 여학생들이 그러듯이 그런 땀이나 뻘뻘 흘리는 운동을 좋아할 리 만무였다.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하니 그런 역동적인 움직임이 좋았을까.

야구의 룰도 모르면서 그냥 텔레비전 화면만 보고 있었다. 달리 볼 것도 할 것도 없었으므로. 텔레비전을 계속 보니 야구의 룰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처음엔 시시했고, 무엇하러 저렇게 맥 빠지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맞히려고 애쓰나, 이런 정도였다가, 어느 순간 야구에 몰입하게 되었다.


최동원, 연합뉴스 이미지


순전히 최동원 때문이었다.

고작 고교야구 선수인데, 아니면 내가 여고생이어서 더 그랬을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픈 자리에서 골몰할 수 있던 일이 야구를 보는 일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친구들이 학교에서 예비고사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을 동안, 나는 최동원이 나오는 고교야구를 보며 마음을 졸이고, 응원하면서 2년이란 긴 시간을 보냈다.

당시 최동원의 야구 선수로서의 이력은 굳이 이 자리서 쓰지 않아도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시절 최동원은 오로지 그 혼자만 기억하게 만드는 그런 선수였다.



나를 일으켜 세운 강속구



그렇다. 그 시절의 나에게 최동원은 야구선수 이상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운드에 서서 흔들리지 않던 최동원의 반사적으로 던지던 그 볼들은 학교에 가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서 누워 있던 나에게는 단순한 야구공 이상이었다.

절대로 흔들리지도, 주저앉지도, 절망하지도 않는 무표정의 그 단단한 얼굴. 9회 말 투아웃이 와도 그냥 담담한 얼굴. 그게 그때 보았던 최동원이었다. 겨우 고교야구 선수였을 뿐인데.


그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주저앉지 않던 견고함은 그 또래의 한 여고생에게 힘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다. 아픔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애썼다. 마치 최동원이 강속구로 볼을 던지던 바로 그처럼

내 쓸쓸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에도 스트라이크만 존재하는 강속구를 던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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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나는 건강이 회복되면서 최동원의 야구를 애써 보지 않았다.

내 가장 어둡고 쓸쓸했던 시간과 최동원의 고교야구는 동일선상에서 조우하고 있었으므로.


부산 경남여고로 진학한 여중 친구에게 혹시 경남고등학교 애들을 만나면 최동원 사인하나 받아달라고, 부탁을 했었던지 어떤지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경남여고로 진학한 그 공부 잘하던 친구가 제일 부러웠던 기억은 있다. 생각하면 참 터무니없지만, 최동원이 경남고니까 경남여고라서 만나기 쉽지 않을까 이런 단순한 계산을 하면서. 그때 그 사인이 있었더라면 아마 부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최동원이 자리 잡고 있던 내 여고시절은 사라졌고 내 병도 나았고, 까마득히 그때를 잊고 있었다.

내 쓸쓸한 여고시절을 향해 볼을 던지던 영원한 고교야구의 영웅을.

그러다 고인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불현듯 그 어둡고 불안했던 시간을 다시 떠올렸고, 최동원을 기억했다.


비록 고인을 직접 만난 적도, 야구 외는 특별한 개인적인 일들을 알지 못하지만, 마운드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던 최동원은 내게는 진정 불멸의 에이스였다.


한 사람의 의지를, 다른 힘든 이가 공유하고 교감하면서 삶을 씩씩하게 헤쳐 나왔다면 그는 다른 한 사람에게 진정한 삶의 지주며 영웅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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