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인 이모가 유일하게 부른 이름

- 한 맺힌 이름을 비로소 꺼내다

by 이지현


이모에게서 배운 음식



이모에게서 맵고 깊은 맛이 배어들게 하는 생선조림 비법과, 산속 먼 흙냄새를 잃지 않게 하는 고사리나물 비법을 배웠다. 강원도가 고향인 이모의 음식 솜씨는 현란하거나 요란하지 않고 그냥 은근히 깊었다.

그 후로 이모의 솜씨를 흉내 내서 음식을 하면 그냥 생선은 생선 맛, 고사리는 고사리 맛일 뿐이었다.


그런 이모가 90이 넘어 치매가 걸렸다는 말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 곱고 고요한 이모가 치매가 걸리다니 믿을 수 없었다.

이모는 늘 성경책을 끼고 살아서 틈만 나도 햇빛 바른 양지쪽에서 조는 것인지 읽는 것인지도 모르게 성경을 읽고 있었다. 책 페이지가 넘어가면 비로소 아, 아직 읽고 계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종교가 없는 내가 보기에도 경건해 보였다.





이모는 아주 깨끗이 만진 흰 한복 저고리를 입고 계셔서 마치 벌써부터 이승의 사람이 아닌 듯이 느껴졌다. 아니, 이승을 초월해서 사는 사람으로 보였다.


솔직히 치매에 걸린 사람은 내 주변에서 처음이었다. 더구나 이모가 걸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옛날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에도 근무했을 정도로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 치매라고 하면 온 사방에 똥칠해대는 이야기만 들은 터여서 그런 것을 상상하고 뛰다시피 갔는데 이모는 늘 그랬듯이 아주 멀쩡한 얼굴로 한복을 입은 채 앉아만 있었다.



모두 누구세요라고 불렀다



이모라고 평소처럼 불렀는데, 누구세요라는 뜬금없는 질문만 들어왔다. 아, 이런, 갑자기 난감해서 우두커니 섰다. 무어라고 소개해야 하나. 이모의 동생인 엄마라도 기억하려나 싶어서 물어보지만, 누구세요라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이모가 우리 애 셋이 클 동안 돌봐주었기 때문에 설마 아이들 이름은 안 잊었겠지 하고 세 아이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누구누구 엄마라고 해도 누구세요였다. 아는 이름을 죄다 넣어서 기억을 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지만, 끝내 누구세요였다.


순식간에 모든 사람이 '누구세요'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이모는 제일 가벼운 치매라고 했다. '똥칠할 때까지 살아라'는 말이 악담처럼 쓰이는 것은 아마 치매의 최대 한계치인 듯했다. 이모는 혼자 조용히 있거나, 가끔은 청소도 열심히 하지만, 다만 아무도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 자식들이 와도 기억을 전혀 못했다.


잠시 이모와 소파에서 처음 보는 사람처럼 멀뚱거리면서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이모는 치매환자 같지 않게 무척 얌전했다. 그 순간 갑자기 이모가,


"희선인 왜 안 오지" 라고 했다.


모두들 기겁을 할 듯이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그 이름이 치매환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지. 이모가 90이 훨씬 넘도록 한 번이라도, 또 어느 누구도 이모 앞에서는 입에 담아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놀라서, 누구를 찾는 거예요. 오라고 할게요, 했더니. 다시


"희선이 말이야. 내 동생 희선이."


그러자 엄마가, 언니 동생은 나잖아,라고 하니, 다시 쳐다보면서 누구세요,라고 했다.

이모는 그때부터 희선이 이름만 계속 부르기 시작했다. 올 때가 되었는데라고 거듭 말하며. 희선이에 대해 우리와 너무 말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아예 비스듬히 앉더니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얘기를 하며 저고리 춤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간간이 눈물까지 찍어냈다.


희선이란 이름 외에 이모에게는 모두가 '누구세요', 가 되었던 셈이다.

순간 이모가 정말 치매가 걸린 것인지 아니면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서 그 이름을 부르기 위해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갑자기 갈피를 잡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제서야 부른 그 이름



희선, 그 이름은 내가 중학교 무렵에 외할아버지 입에서 처음 들은 이름이었다. 모두가 한 맺힌 이름이었다. 말하자면 이모부가 되는 사람이었다. 6.25 전쟁이 터지자 처자식을 버리고 이념을 좇아서 북으로 간 사람이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이모가 시집갈 때는 골목이 함으로 뒤덮여서 모두들 그 희한한 광경을 보느라고 길이 구경꾼으로 가득찼다고 한다. 당시로는 엄청난 부르주아에 서울대 국문과 강사까지 지내던 이모부는 전쟁이 터지면서 프롤레타리아가 되고 싶어서 북으로 떠나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당시 조금 똑똑하다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에게 무산계급에 대한 환상은 아무래도 달콤한 독주와 같았을지 모른다. 더구나 있는 집 자식에 배우기까지 한 사람으로서 북으로 가는 길은 파라다이스쯤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자의 고통은 헤아릴 줄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이념을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이 평생 한 맺힌 피멍이 들도록 살아가리라는 것을, 또한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우리가 화해할 시간이 있을까



임철우의 소설 <아버지의 땅>에서는 땅속에서 철사로 묶인 유골을 파내면서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인물이 나온다.

빨치산인 아버지를 오랫동안 '눈매 고운 사람'으로 기억하던 어머니를 싫어하면서 그때까지 열등감에 시달렸던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안위마저 걱정한다. 아버지는 어디쯤에서 또 이렇게 묻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빨치산이 되어 처자식을 이념때문에 내팽개친 남편이라도 한평생 고운 사람으로 생각하던 여성의 정한이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이모도 그랬던 것일까. 그래서 치매가 걸리고서야 비로소 한 맺힌 이름을 마음껏 꺼내서 부를 수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그 이름을 부르면서 남편도 아니고, 동생이라고 빡빡 우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친혈육처럼 가깝게 여기면서 마음에 묻고 살았던 이름 하나를 이제야 마음 놓고 세상에 풀어놓는 것이다.


그 이름 외는 다른 사람들은 '누구세요'로 부를 수밖에 없는 가슴에 맺힌 한이 저려 우리는 또 울었다.


철조망 너머로 가버린 이름, 아니. 이모는 이제 생의 마지막을 느끼면서 여태 부르지 못하고 살았던 장막 저쪽의 이름을 철조망 이쪽으로 꺼내 실컷 불러본 것이리라.


그러나 그 철조망을 넘어오면서 상처투성이로 돌아오면 우리가 화해할 수 있을까. 정녕 그럴 수 있을까.

분단의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에 까슬까슬한 모래알처럼 깊고 촘촘히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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