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오겡끼데스까

- 동경 '노도야' 상점의 김치를 위한 안부

by 이지현

김치에게 묻는 안부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는 여주인공이 설원에서 눈 덮인 흰 산을 보며 '오겡끼데스까'라고 처절하고 서글프게 외친다.


김장을 담글 이맘때면 나는 늘 '김치 오겡끼데스까'라고 외친다. 설원도 없고, 쓸쓸함도 없는, 다만 낙엽이 길가에 뒹굴 뿐이다.


영화 <러브레터>의 장면


일본 ‘노도야’는 안식년으로 1년 거주하던 동경의 에도가와구에 있는 마트였다. 저녁 시간만 되면 한 애는 유모차에 태우고, 두 애는 걸리고 '노도야'까지 저녁거리를 사러가는 것이 낙이었다.


동네마다 있는 사당과 납골당의 낮은 담을 지나다가 가끔 그 앞에 멈춰 서서, 저녁의 지는 햇살이, 납골당에 늘 있는, 조문객들이 놓고 간 희고 노란 국화꽃들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저녁이 질 무렵 꼭 집을 나섰기 때문에, 일본의 한적한 거리가 좋았고, 차들도 소리하나 내지 않고 다니는 그 적막까지 마음에 들었다.




'노도야'의 김치 사건



그런데 이 저녁 산보를 그만 끝내야 하는 결정적 사건이 터졌다.

'노도야'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산더미 같은 김치를 만들어 파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하루는 '노도야'에 갔더니, 한 대야 가득, 배추를 토막 내어 마구 고춧가루에 버무리고 있었다.

뭐, 거기까지야 나무랄 바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니 제발 맛을 좀 봐달라고 했다. 김치는 한국이 종주국이란 것을 알기는 한 모양이다. 요리 감별사 내지는 감정사도 아니고, 맛을 보고 난 뒤는 이러쿵저러쿵해야 되니 맛보기는 생략하고, 보기는 그럴듯하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랬더니 다시 간곡히 청을 한다. 일본에 살아보면 그 청들이 얼마나 은근하고 간곡한지 알 수 있다. 일본인의 입맛과 우리의 입맛은 분명히 다른 것을 일본에 발을 디딘 순간 바로 깨달았기 때문에 다시 거절했다.

내 입맛에 안 맞아도 그들의 입맛에는 맞을 수 있을 테니까.



일본인 주택가는 우리가 도저히 견뎌내기 힘든 냄새를 가지고 있다. 그 냄새는 마치 우리의 된장이나 청국장 냄새가 나는 것과 유사한 것이리라. 그러니 우리의 일식집을 연상해서는 아주 큰 코를 다친다.


어쨌거나 부탁이 삼 세 번이니, 그냥 한 조각을 먹었다.

일본에서는 음식을 우리식으로 바로 집어 먹으면 안 된다. 작은 접시에 한 조각을 얹어 내민 것을 먹는 바로 그 순간, 숨이 턱 막힌 느낌으로 물, 물을 급히 찾았다.

내 표정을 보고, '노도야' 아줌마가 자기가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한국 김치와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다.


먼저 김치를 담가본 경험이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처음이라고 한다.

그냥 한국 사람인 나와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동네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물어봐서 용기를 낸 것이라고 했다. 빨리 김치의 차이에 대해 말해달라고 한다. 김치 담근 재료들을 묻자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아지노모도, 즉 미원 봉지가 있었다. 비닐봉지채 그냥 1/3 정도 쏟아부었다고 했다.


아뿔싸. 나는 음식에 미원을 넣어본 적이 없다. 외식을 하고 오면 목이 타서 늘 갈증으로 물을 마시는데, 아줌마는 간을 맞출 방법이 없어서 아지노모도를 아주 들어부은 것이다.



김치 완판의 위력



우리는 젓갈이 들어간다고 했고, 일본은 다양한 젓갈이란 게 없으니, 새우젓을 좀 넣는 게 어떻냐고만 했다. 물론 아지노모도는 아주 조금만 넣으라고 하면서.



'노도야' 아줌마는 내 말이 마치 프로의 비방처럼 들렸는지, 나머지 배추로 내 지휘(?) 아래 다시 버무렸다. 그랬더니 저녁거리를 사러 온 동네 아줌마들이 담가논 김치를 바로 그 자리서 다 사버렸다. 20분 만에 김치 완판이었다. 조금 늦게 온 다른 사람들은 미처 사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노도야' 아줌마는 매일 그 시간에 나와서 김치를 좀 담가 달라는 것이다. 아예 김치를 담가서 내가 파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질겁을 하면서 애가 셋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다. 고만고만한 애들을 보고는 더 이상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매일 와서 맛을 봐달라고 했다.


다음날부터 물론 그 시간에 절대 가지 않았다. '노도야' 아줌마가 담그는 김치를 다시 맛보았다가는 아마 숨이 막혀 죽거나, 가슴이 막혀 죽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아지노모도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 첫 김치 조각에 헉하고 숨이 다 막혔을 정도니. 거의 구토 직전까지 갔다.


'노도야'에선 이제 새우젓을 쓰고, 미원은 아주 조금 넣은 김치를 매일매일 팔았고, 금세 동이 났다고 자랑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김치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매일 한 대야씩 팔린다고 했다. 늦게 오면 당연히 못 사는 것이다. 그 대야 크기는 우리가 김장김치 할 때 김치를 푹푹 담그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다 내 덕분이라면서 '노도야'에 가면, 음료수나 그밖에 채소들을 공짜로 마구 집어주었다. 편하고 즐거운 동경 생활이 시작된 것도 김치 덕분이었다.

일본을 떠나기까지 '노도야'의 김치는 매일 한 대야씩 팔려나간다는 자랑을 실컷 들었으니, 일본인들의 김치 사랑은 아마 우리보다 더한 거 같다.

또 나와 아이들이 그 동네서 살게 되어서 갑자기 김치전도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김치와 기무치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때마다 김치 전문가들이나, 음식 전문가들이 작은 곳에도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동네의 작은 슈퍼만 가도 김치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많았는데, 정말 그것을 먹는 일본 아줌마들의 마음을 읽으면 좋겠다.



보은의 김치 선물



'노도야'의 김치 사건으로 나는 동경을 떠나기 직전에 큰 아이의 담임인 하나와 선생께 딱히 선물로 드릴 게 없어서 두 양동이의 김치를 직접 담가 선물했다. 김장 김치 수준의 양이었다.


일본은 다른 젓갈은 없고, 다행히 새우젓은 파니, 한국에서 가져갔던 고춧가루만으로 담근 김치였다. 집에서 적당히 익혀서 제일 맛있고, 톡 쏘는 맛이 강할 때 갖다 드려, 하나와 선생은 김치가 이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이라고 거듭거듭 인사를 했다.

하긴 일본 가게서 아지노모도를 잔뜩 친 김치를 사 먹는 사람이면 당연히 그런 인사가 나왔을 것이다. 내 김치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일본 김치가 워낙 맛없어서일 것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정성껏 만든 김치였다.

하나와 선생은 큰 아이가 학교에 전학 가고 문구들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자, 문구 일체를 구비해 주어서 아이가 수업에 불편이 없게 했다.(일본 문구 값을 안다면 정말 사고 싶지 않다, 색종이 100원짜리가 100엔으로 퉁친다.)

아이가 일본어를 하나도 알지 못하고 갔는데 20일간 방과 후에 일본어를 가르쳐서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게 해서 나중에는 학년 전체 1등을 했다.

한국 아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동경의 소학교 전체 미술대회에 참가시켜서 대상까지 타서 요미우리 신문과 동경신문에까지 '한국 소녀 사생대회 대상'이라고 특별 인터뷰도 하고, 대서특필 되었다. 그밖에도 아이를 일본에서 부디 자신이 키우게 해 주면 동경대학교까지 책임지겠다고 장문의 편지를 구구절절하게 썼으니, 진짜 한국 김치를 맛보게 해 주겠다는 고마움의 비장함까지 나는 양념으로 넣었다.

하나와 선생은 그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동네잔치처럼 다 조금씩 돌렸다고 한다. 한국 김치를 직접 먹어본 일은 모두 처음이었다고 했다.



접대했던 구절판, 치자 밀전병구절판




김치와 기무치의 거리



이후 하나와 선생이 한국관광을 나와 집에 모셨을 때는 구절판이 동났다. 한국의 구절판처럼 맛있는 음식을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일본 음식은 정말 담백하다. 혹은 아주 달거나 짜다.

동경서 살다 오니 한식의 세계화를 만들 다양한 틈이 많이 보였다.


일본 배추는 김치 담그는데 적당하지 않다. 토질 때문인지 김치를 담그면 물컹거려서 맛이 안 난다. 배추 고르기가 가장 문제였다. 이런저런 배추를 사다가 여러 차례 김치를 담가보고, 하나와 선생께 드린 김치는 제일 단단한 배추를 골라 담갔다.

그래도 일본 배추는 아무리 단단하다고 상점 주인이 추천해도 물컹거렸다.


그때 김치 전문가들이 음식의 세계화, 한식의 세계화만 부르짖지 말고, 직접 일본 동네의 구석을 살펴보면서 파고들어 주었으면 했었다.

김치보다 기무치를 더 찾는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안타깝다. 내 경험상엔 김치는 정말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

'노도야'에서 점점 더 많이 담그는, 그 산더미 같던 김치가 다 팔려나가는 시간은 딱 2시간 이내였다. 김치를 사러 '노도야'로 몰려올 정도였다.

내가 그때 '노도야' 아줌마의 청을 들어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면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지금쯤 김치공장이라도 차렸으려나.


식문화란 그 지역에서만 나는 채소의 질이 있다. 일본은 배추가 물러서 우선 글렀다. 양념도 형편없다. 게다가 솜씨는 더 없다. 그래도 살아본 경험에서 밥하는 주부들은 매우 근면하고 부지런했다.


언젠가 우리의 김치에게

'김치, 오겡끼데스까' 하고, 안부를 물어야 할 날이 올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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