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시집은 옳다

- 나를 살린 시집들

by 이지현

시집 모으기가 취미였다. 유일한 취미였다.

(지금은 자식 셋에게 돈이 많이 들어서 이런 취미는 사라졌다.)


sticker sticker



국민학교 시절(그때는 이런 이름이었다), 소년 007이 만화로 연재되던 소년 동아일보에 동시 한 편을 보냈고, 신문에 내 시가 소개되면서 선물로 자석 필통을 소포로 받았다.

어떻게 시를 보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선물을 준다는 글을 읽고 혹해서 삼촌들을 꼬셔서 손으로 쓴 시를 꼬불꼬불 접어서 부쳐달라고 했을 것이다.


조그만 중소 도시에서는 절대로 만져볼 수도, 본 적도 없는 까맣고 네모진 상자가 와서

처음엔 책일까 무얼까 하면서 아무도 열지도 못하고 심각하게 바라보았던 희한한 선물이었다.

하긴 그 시절에는 서울에서 소포라는 것을 받는 것 자체조차 희귀한 비상사태 기도 했다.

지금처럼 단 몇 시간 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오래 시간을 들여서 오고 가던 때였다.


자석이 뚜껑 위로 올라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바퀴 반쯤 돌아서 자석이 아래쪽에 있으니 아무도 열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문고판 시집만큼 컸으니 누가 필통이라 생각했겠는가.

서울 아이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살고 있구나, 라는 선망 아래, 시가 내게 준 그 도시적인 선물 때문인지 나는 시를 쭉 사랑했다.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틀림없이 선물 때문에 더했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 학교 글짓기 선생님이 강제로 나를 집에도 못 가게 하고

늘 백일장에 참가시키면서 운동장이 컴컴해지도록 내버려 둔 적이 아주 많지만.


시집책장.jpg 그때 그 시절, 청계천과 인사동 헌책방의 시집들이 든 책장


그리고 어느 날, 진짜 서울로 올라와, 헌책방을 다니면서 엉뚱하게도 시집에 끌려서 용돈을 다 털어서 한 권씩 사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집은 싸지 않았다. 특히 초판본은.

너무 비싼 것은 그림의 떡에 머물고 한숨에 날아갔다. 그래서 하루 식사와 바꾼 날도 있지만, 대개는 사지 못했다.


그런 시가 어느 날 내 힘든 어깨를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만든 것도 시를 감상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하루치의 힘든 삶이 쉬어 갔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깨물고 있는 것보다는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이 낫지 않은가.


아직도 시를 사랑하고, 시인들의 마음을 그리워하고, 시의 생략과 압축 속으로 들어가 유영하면서 상상하기 좋아한다.

오늘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지만, 시가 없는 시대가 될지라도 나는 시를 읽겠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을 시인과 시집들을 소개해보고 싶다.

시인이나 시집에 관해서는 지식인에 묻거나 백과 사전등에도 잘 소개되어 있으니

나는 마음에 쿵하고 와 닿은 시들의 구절들을 소개해보고 싶다.


한 편의 시들은 알지만 시인의 또 다른 시들 중에도 마음에 와 닿는 멋진 구절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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