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아름다운 방황에 안부를 묻다

- 청춘의 교향시

by 이지현

헌책방에 가게 된 수업



처음 문학에 입문하였을 때, 문학 담당 교수님은 첫 시간 수업에, 앞으로 문학을 알려면 딱 3가지의 책은 필수로 읽으라고 하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성경', 그리고 백암사에서 나온 초판본 단편문학전집 5권을 구해 읽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했다.


‘시학’과 ‘성경’이야 어떤 서점에서든 구할 수 있지만 백암사의 책을 사라니.

곧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백암사의 전집은 헌책방에서도 아주 귀한 몸이었다. 나는 대학을 갓 입학했고, 문학에 열정만 있었지, 문학과 관련된 것들에는 일천했다. 아니, 무식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말을 새겨듣고 백암사의 책을 사러 다녔으니, 서점마다 얼마나 웃을 일이던지, 내 깐엔 백암사의 책이 그 학기의 교재인 줄 알고 다녔으니, 이미 절판되어 어디서든 구하기 힘든 책이었는데......


서점마다 없자 물어물어 청계천에 즐비하게 늘어섰던 헌책방과 인사동 고서점을 모두 뒤지고 다녔다. 그때 청계천의 헌책방은, 지금처럼 복개되지 않았을 때라서, 길 한편으로 죽 늘어서서 아주 보잘것없고 초라한 모양이었다. 어떤 헌책방은 책들로 통로가 막혀서 겨우 사람이 드나들 정도였고, 밖에까지 잔뜩 쌓아놓은 책들은 수북한 먼지를 입고 있었다.

설령 필요하고 구하고 싶은 책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낡은 책 저 아래 있어서, 그 책을 사려면 위에 잔뜩 얹혀 있는 책들을 또 다 하나씩 내리고, (헌책들이라 자칫하면 찢어지고 먼지 화하기 일쑤여서 책방 주인들은 함부로 다루는 것을 질색했다) 겨우 그것을 끄집어내야 해서 책을 하나 산다는 것은 마치 산을 하나 조심스레 옮기는 일처럼 중노동이었다.


백암사의 전집에 별다른 소설들이 실려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 책을 읽지 않으면 마치 문학의 문턱도 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느꼈던 거 같다. 마침내 여러 군데의 헌책방을 전전하면서 백암사의 단편 전집 4권을 이리저리 구입한 것이다. 5권인데 1권은 결국 구하지 못했지만, 4권은 구한 셈이니, 문학의 4/5 정도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릴 자격이나 가진 것처럼, 그때의 뿌듯함과 마음 가벼움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내가 수업시간에 백암사의 책들을 구했다고 말했을 때,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기만 했다.



책을 가까이 하게 만든 교수님



이 책은 20년도 훨씬 넘게 보관하고 있다가 동생 책과 내 책을 정리하면서, 대학도서관에 라면박스로 적어 도 50박스 이상 기증할 때, 함께 넣어 수많은 학생들이 볼 수 있으면 하고 보냈다. 마치 결혼시키는 자식을 보는 마음이 그럴 것이다. 부디 가서 잘 살았으면. 이 책을 볼 수많은 학생들이 두고 본다면 오히려 내 손에서 점점 낡아서 먼지로 화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그밖에 내가 당시 청계천 헌책방과 인사동 고서점을 다니면서 구했던 전문서적들의 귀한 책들도 모두 기증했다. 이제 그런 전문서적들을 볼 어떤 특별한 이유도 기회도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 서적들은 오히려 논문을 쓰는 학생들에게 아주 필요한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논문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중앙도서관, 각 사설 도서관, 각 대학 도서관들까지 섭렵해야 하니, 그럴 때마다 귀한 몸의 책들은 열람이 불가능한데 모셔져 있거나, 열람 확인을 거치는 도장을 받아야 하거나, 열람실 밖으로는 대출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열람실 안에서만 볼 수 있거나, 복사 시에 책이 훼손된다고 복사도 금지하는 책들이 많았다.

한 번은 논문 쓰는데 꼭 필요해서 몇 날 며칠이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그 책을 몽땅 손으로 필사해온 적도 있다.


이렇게 문학 책중에 특히 만나보기도 힘든 책들이 많아서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지 몰라서 책을 기증했지만, 그 책을 사러 인사동이며 청계천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던 노동을 생각해서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더는 내게는 소용이 없는 책이려니 싶어 보내버리고 나니 가볍기도 했다.

도서관에서는 아주 귀한 책들이 많이 기증되니, 동생과 내 이름을 붙여서 분류하겠다고 했지만, 글쎄, 거기서부터는 이미 내 관할이 아닌 셈이니, 중요하지가 않았다.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 굳이 알려고도 해본 적 없으니까. 나중에 들으니 기증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문제는 그 교수님은 왜 굳이 백암사의 책을 구하라고 했을까. 나중 보니 거기 실린 단편이야 어디서나 있는 것이었다. 다만 백암사의 것은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내용만 볼 것이 아니면. 그러나 대학에 갓 입학해서 겨우 문학 입문을 하는 학생에게는 굳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주 한참 후에 나는 교수님의 의도를 눈치채었다. 교수님이 굳이 백암사를 거론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청계천 헌책방과 인사동을 뒤지고 다녔을까. 그리고 그 헌책방에서 낡고 귀한 서적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헌책방들을 다니면서 어떤 책들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지 나는 훤하게 다 꿰고 있었다.


문학 서적은 초판본이 중요하다. 특히 시집들은 초판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당시 헌책방을 다니면서 이 초판들을 많이 만났고, 용돈은 이 시집들을 사는데 다 들어갔다.

심지어는 밥도 굶어가면서 이 책들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아야만 했으니, 물론 이런 시집들은 당시에도 너무 비싸서 정말 귀한 것들은 살 수도 없었다. 너무 비싸서. 이런 것들은 여러 번 그 헌책방을 다니면서 열심히 눈인사나 했다. 그러다가 헌책방 주인을 감동시키면 내 삼고초려는 성공해서, 좀 깎아주기도 했다.

초판본이 아니라도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시집들은 이렇게 헌책방을 전전하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었다.



- 1968년 초판본 시집



청춘의 방황이 정신을 살지우다



청계천 헌책방 주인은 어떤 교수보다도 유식하다. 문학사를 꿰고 있었고, 시인 이름, 소설가 이름, 문학사적으로 유명한 책 이름 등, 전공하지 않았으면서, 전공자보다 더 유식했다. 물론 그 주인들 말은 그래야 책을 제값을 받을 수 있으니까,라고 해도 문학만이 아니라, 모든 도서의 프로였다.


이런 청춘의 방황으로 아직도 청계천 하면 먼저 헌책방이 떠오르고, 젊은 날의 하염없던 시간이 부연 먼지처럼 떠오른다. 청계천의 책들은 많은 연륜과 수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었다. 어쩌다 그 책갈피 속에서 튀어나오는 낙서나, 말라버린 나뭇잎 한 장, 그리고 책의 여백이나 뒷 장에 새겨진 사인들은 또 누군가 청춘을 방황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일까 생각하게 했다.


지금의 대형서점들에 가서 맡는 새 책들의 인쇄 잉크 냄새가 과연 청계천의 헌책방이나 인사동의 고서점 에서 맡을 수 있는 그 알싸하고 매운 냄새 같으랴. 켜켜이 쌓인 책더미 속에서 한 권의 시집을 구하던 마음. 쉽게 구할 수 없던 그 시집들은 아직도 책꽂이에 몇 단 꽂혀 있다. 가끔 나중에 이 시집들이 누구에게 소용될까 생각하면서 주변을 돌아볼 때가 있다. 아쉽게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 책을 팔면 돈이 얼만데 하지만, 그건 청춘을 파는 행위다.




언젠가 이 시집들마저 도서관에 기증하고 갈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집들은 아직은 청춘의 방황의 이력으로 간직하고 싶다. 이 시집들을 볼 때마다 청계천이 떠오르고,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이 떠오르고, 시집에 미쳐있던 젊음이 떠오른다. 청계천 고서점들이 어느 날 사라지고, 우리는 헌 책의 향수를 잊어버릴지 모른다.

그 교수님은 아마도 이 향기를 기억하고 간직하라고 백암사의 책들을 추천했을지 모른다.

패션을 전공한 아이가 그 옛날의 나처럼 청계천 헌책방을 다녔었다. 물론 문학서적을 구하러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전공에 필요한 옛날 패션 잡지책들을 구하러 다녔다.


나는, 아직도 청계천에 헌책방이 있더냐, 고 안부를 묻곤 했다. 청계천이 복개되었으니 다 사라지지 않았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그 옛날 같은 헌책방은 아닐지라도 아직은 몇 개가 남아있어요,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누가 그렇게 한갓 먼지로 사그라질 낱낱의 추억을 향기로 기억할지,,,


헌책방이 아직도 남아있느냐고 묻는 안부 인사는 어쩌면 지나간 우리 청춘에 대한 안부일지도 모른다.

그 청춘이 방황과 상처의 시간이었더라도, 헌책방을 휘여 휘여 다니던 시간은 아름다운 방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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