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화와 우아한 시간의 향기

- 테너 엄정행을 만난 시간

by 이지현

바다가 보이던 여고 시절



그날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멀리 바다와 아름다운 노래, 그리고 여고 시절, 여고 합창반, 나른한 오후. 거기에 테너 엄정행의 노래


아름다운 추억이란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터질듯한데 이날의 총체적 추억은 언제나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학교를 다니던 무렵, 나는 앞에 나서기는커녕 말 한마디도 않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음악 시간만이 유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싫어하던 선생님이 또 음악 선생님이셨다. 미술실에 있는 베토벤 석고상처럼 머리는 파마머리로 부스스했고, 정말 베토벤처럼 얼굴은 둥글넓적하고 늘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음악 시간은 아이들에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고, 두렵고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음악시간에는 누구나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질러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음악 선생님께 지휘봉으로 손바닥을 맞는다. 어떻게 귀신같이 아시는지 입만 벙긋벙긋하는 애들은 가차 없이 집어냈다. 음정이라도 누군가 틀릴라치면 우리는 맞출 때까지 고장 난 녹음기처럼 계속 반복을 해야 했다.


어느 날, 음악시간에 나는 노래조차 하기 싫어서 입만 벙긋거렸다.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 우울한 일이 있었던 거 같다. 아니나 다를까. 여지없이 선생님은 목소리는 안 내고 입만 벙긋거린 나와 몇 명을 집어내었고 나는 음악 시간에 처음으로 손바닥을 한 대 맞았다. 어쨌거나 난 그 시간 이후로 음악마저 싫어져서 노래 부르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 부르던 시간을.



합창반에 들다



그런 며칠 후, 점심시간에 교실 청소를 하는 중에 음악 선생님이 가늘고 얇은 지휘봉을 휘두르며 교실로 나를 찾아왔다. 합창반에 한 명이 부족한데 내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이었다. 내 잘못이었든 어쨌든 손바닥을 한 대 맞은 처지에 합창반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안 할 거라고 했고 선생님은 합창반의 다른 애들이 추천한 사람은 나뿐이니 내가 꼭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곧 도내 합창대회가 있을 예정이니 선생님으로선 인원수도 채워야 하고 이미 노래를 제법 한다는 애들은 합창반에 다 들었다.


음악 선생님은 한 음절만 틀려도 지옥훈련을 시키는데 내가 들어갈 리 만무였다. 거기에 굴욕적으로 한 대 맞기까지 해 놓고 내가 들어가랴 하고 버텼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날 꼭 필요한 한 명의 합창단원 때문에, 억지를 부리는 나에게 때린 것을 사과까지 하면서 합창반에 들어와 달라고 사정했다. 정말 선생님답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음악 선생님이 싫었다. 평소에도 아이들을 무지 차별하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 선생님은 합창반 아이들이 꼭 나를 넣어야 한다고 했으니, 담임선생님까지 동원해 협박 반, 애원 반 하여 어쩔 수 없이 합창단에 들었다. 솔직히 합창반을 하면 점심시간의 청소당번 면제가 약속되어서 나름대로 괜찮았다.


음악시간이 아닌 합창반 시간의 음악 선생님은 솔직히 멋있다. 노래를 너무 잘하시고, 음악에 대한 프로 정신이 투철해서 존경심까지 일 정도였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학생들의 노랫소리 속에서도 바로 틀린 것을 집어내시는지 보통의 분은 아니었다. 그냥 음악 선생님은 음악만으로만 너무 편향되어서 음악과 관련 없는 학생들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 시절, 감성 풍부한 음악선생님이시라면 여고생의 어느날 하루 기분 정도는 감안해주셔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들을 우리는 모두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이 추천한 합창반에 적합한 아이라고 판단하자 바로 오셔서 선생님답지 않게 사과를 하고 기어이 합창반에 들게 만드셨다. 합창반을 하면서 비로소 선생님에 대한 편견을 조금 버릴 수 있었다.



테너 엄정행이 나타났다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완전한 편견을 버리게 된 사건이 생겼다.

어느 날, 우리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곧 있을 도내 합창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할 때, 문득 문이 드르륵 열리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문쪽을 일제히 돌아본 우리는 여고생 특유의 수다도 뚝 그치고 물을 끼얹은 듯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음악 선생님의 뒤에 들어선 한 남자의 핸섬함에 모두 와아 하고 창문이 덜컹거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음악 선생님이 그런 우리를 모두 바라보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음악 선생님은 노래란 어떻게 하는지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모셨다면서


"곧 앞으로 우리의 음악계를 지배할 사람입니다."


라면서 그 사람을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너무 부끄러워하면서 못하는 노래지만 들어달라고 했지만, 곧 우리는 그 순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잘생기고 노래까지 잘하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 준비도 안 했는데 어쩌냐, 그냥 인사만 드리고 갈려고 했는데 노래를 시키냐' 고 하던 그 사람은 마이크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낡은 교실에 울려 퍼지는 미성과 노래 부르는 사람의 풋풋함이 어우러져 멀리 교실 창밖으로 아스라이 그 끝만 바라보이는 바다마저 새파랗게 눈이 부셨다.



우리는 당연히 앙코르, 앙코르를 외치고, 준비된 노래가 없다면서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던 그 사람은 이후 두 곡을 연거푸 부르고 수줍게 나갔다. 얼마나 열심히 부르던지 우리의 심장이 저 아래서 다 울릴 정도였다.


그 사람을 배웅하고 들어오신 선생님은 이제 곧 우리 음악계에 혜성같이 나타날 사람이라고 장담하면서 소개했다. 그때는 우리들이 다시는 그렇게 그 사람의 노래를 오늘처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오래오래 그 시간을 잊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너무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다. 바로 곁에서 그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하다.


얼마 후에 음악 선생님 말씀처럼 그 사람은 유명한 테너 가수가 되었고, 그 사람이 바로 엄정행이었다. 우리 앞에서 수줍게 노래를 부르던 그때는 그 사람은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그 사람의 노래를 들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가 유명한 테너 가수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겠는가. 맑고 높은 목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워 우리 모두가 숨죽여 듣던 그 노래. 그리고 단지 여고생들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순수하게 불러주던 노래.


먼 후일 나는 괴팍해서 다소 경멸했던 음악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합창반을 들어가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행복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시 무명 테너 가수였던 엄정행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음악 선생님에 대한 내 편견이 완전히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누구나 널리 알려진 프로가 되기 전에는 더 풋풋하고 멋지다. 음악 선생님의 안목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심미안이나 어떤 혜안을 가진다는 것은 일시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음악 선생님을 편견으로 바라본 것도 아마 우리가 어린 소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들 나름대로 존경할 만한 부분들이 있고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안목을 갖는다는 것은, 깊은 성찰과 삶의 성숙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 여고생들 앞에서 최대한의 예의와 겸손을 갖추고, 정말 힘껏,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듯 최대한 열심히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던 엄정행은 얼마나 우아한 사람인가.


그날 이후로 난 합창반이 된 사실을 매우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다. 아마 합창반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음악 선생님이 더 이상 지휘봉으로 탕탕 두드릴 필요가 없이 소리를 질러대듯이 노래를 맘껏 불렀다.

그리고 지금도 우울한 날도, 쓸쓸한 날도, 그리고 즐거운 날도, 그날의 그 아름다운 시간의 향기를 기억하며 혼자 노래를 흥얼거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청춘의 아름다운 방황에 안부를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