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꽃 순정

- 그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간

by 이지현

마가렛꽃바구니 사건



'마가렛꽃으로 꽃바구니를 만들어서 과 사무실에 두면 새벽에 찾으러 가겠다'라는 교수님의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그 해 여름의 끝, 가을로 넘어가려던 때였으니 제법 날씨가 쌀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가렛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그러나 꽃다발은 적어도 남자들이 주로 어디에 쓰는 것인지는 알았다. 게다가 그 교수는 부인과 사별한 분이었다.

아무리 조교라도 별 심부름 다 시키네,라고 입이 대자로 나왔지만, 거역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학교 앞 꽃집으로 옷도 걸치지 않고 그냥 나왔다. 부슬비가 슬슬 오고 있었다.


꽃집에서는 내가 마거릿 꽃을 찾으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꽃이 지금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꽃도 제철이 있고, 지금은 마가렛꽃의 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꽃집 아줌마는 마가렛 꽃과 비슷한 흰 야생 국화를 가리키며, 그걸로 가져가라고 했다.

'남자들이 꽃 이름만 알지 생긴 거 거기서 거긴데 머 알려고', 라는 거였다.


마가렛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흰 가을 국화를 보면서 조문용으로 많이 쓰는 꽃인데, 교수님이 그 꽃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모르는 판이라, (속으로는 여자 만나러 갈 거라고 짐작하고) 함부로 살 수 없었다. 그리고 사방팔방 꽃집을 헤매 다니기 시작했다. 비는 부슬비에서 가을비로 바뀌어 굵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순식간에 쫄딱 비에 젖었다. 꽃집을 전부 다 뒤집고 다녔지만 어디서든 그 꽃 있는 집이 없을 거라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어디까지 갔는지, 짐작도 못할 거리지만, 그렇게 다닌 끝에 학교에서 거리가 꽤 먼, 구석에 푹 박힌 어느 꽃집에서 간신히 마가렛꽃을 구했다. 생긴 거 모르는 나는 마가렛꽃 맞느냐는 확인을 거듭거듭하면서, 비는 이미 맞을 대로 맞았지만, 마가렛 꽃을 만난 기쁨에 추위도 다 녹을 정도였다.

아마 팔다가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서 그냥 꽂혀있었던 거 같다.


그 꽃집 아저씨는

'참, 나, 지금 마가렛 꽃 찾는 사람도 다 있네'라고 했다.

생각보다 이쁜 꽃이었다. 나는 마가렛을 몽땅 다 사서 크고 환한 꽃바구니를 만들어 과 사무실에 두고 왔다.

다음날 오전에 과사무실에 갔을 때 이미 꽃바구니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사별한 부인의 생일을 챙기다니



다음에 교수님을 만났을 때 슬쩍, '꽃 잘 쓰셨어요',라고 했다.

'잘 썼지, 그걸 어떻게 구했지. 힘들었을 건데......'

네? 아니 그럼 교수는 꽃이 없을 걸 알면서 심부름시킨 거였다니. 집 근처서 못 구해서 혹시 학교 근처는 있을지 몰라 시킨 거라는 거였다.

아니, 이런, 그럼 없다고 해도 얼마든지 되었을 뻔했다.

그래도 어려운 선생님인데 토 달 수는 없어서 가만있으려니 속이 부글거렸다.

'마누라가 마가렛을 제일 좋아해서 생일에 가져가려고,,,' 교수님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니까 사별한 부인이 제일 좋아하는 꽃으로, 부인 생일에 딸과 함께 꼭 산소를 찾아가는데 그 꽃을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시켜서 많이 미안했다는 거였다. 그런데 나라면 어떻게든 구해 놓을 것만 같아서 시켰으니 너무 고마웠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비 맞으면서 마가렛 꽃을 구하러 다닌 고생이 순식간에 쑥 들어갔다.

부인의 기일도 아니고 생일을 기억하는 분이셨다. 그 말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동안 그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했었던가를 나타내는 잣대가 아닐까.


교수님은 늘 파이프 담배를 태우셨다. 어느 날은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해서 언제 사모님이 제일 많이 생각나는지 여쭈어보았던 적이 있다.

'살아생전에는 잘해주지 못했는데, 부인이 바가지를 박박 긁었을 때가 제일 많이 생각나고 그립다' 고 하셨다.

이후, 교수님은 어린 딸을 혼자 키우다가 딸이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재혼을 하셨으니 적어도 20년 훨씬 이상을 혼자 사신 셈이다.


이 마가렛 꽃 사건(?) 이후로 나는 누군가 선물을 부탁할 때는 순수하게 생각한다. 마가렛꽃의 꽃말은 점치는 꽃, 진실한 사랑, 행복이라고 한다. 교수님은 부인이 어린 딸만 두고 일찍 돌아가셔서 행복하지는 않았겠지만 마가렛 꽃철이 오면 부인을 잊지 않고 있었으니, 그 부인은 저세상에서라도 행복했을까.


지금 세상이 하도 뒤숭숭해서 순수함이나 순정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이 마가렛 꽃의 추억만으로도 아직도 마음이 서늘하도록 화안하다. 누군가 우리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이렇게 오래도록 그 사람이 좋아하던 꽃을 잊지 않고 해마다 생일에 무덤에라도 그 꽃다발을 들고 찾아줄 사람,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세상은 살만할 것이다.

그 소녀의 순수한 모습 같은 마가렛꽃을, 해마다 사별한 부인의 생일날이 되면 구하러 다닐 교수님의 순정은 이후에 내가 사랑을 소재로 글을 쓸 때면 그날의 그 느낌 그대로 빌려오곤 한다.

가끔 내 나이에 무슨 사랑 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더 많다. 뭔 사랑이냐고, 뭔 신파냐고 하지만, 나는 이 마가렛꽃 사건을 생각하면서 개의치 않는다. 우리를 이 거친 세상에서 간신히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교수님은 어린 딸을 키우면서 사별한 부인을 한 번도 잊지 않고, 마가렛꽃을 찾아다녔다.

때로 거친 세상에 마가렛꽃의 그 노란 꽃술 같은 환한 힘을 불러오고 싶어서, 한 편의 어쭙잖은 시들에도, 사랑의 글들 속에도, 배경처럼 순정의 꽃을 꽂아둔다. 사별한 부인의 생일에 산소에라도 가져가고 싶어서 마가렛 꽃을 구하러 해마다 이 꽃집 저 꽃집을 기웃거리고 다녔을 그 교수님의 슬픈 모습을 떠올린다. 교수님은 가끔은 그날의 나처럼 찬비를 맞으면서 마가렛 꽃을 구하러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세상에 없는 부인의 자리와 남겨진 어린 딸 때문에 혼자 울었을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이지만, 그 쓸쓸한 경험을 함께 겪은 나는, 마가렛 꽃바구니를 만든 이후로, 세상은 이런 순정의 힘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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