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같은 인내의 두드림

- 고된 노동도 해학으로 넘기는 시간

by 이지현

다듬이 질에 담긴 해학



발해의 시가 <야청도의성>에는 한밤중 다듬이 소리를 들으면서 향수에 젖는 구절이 나온다.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양태사는 문득 가을밤에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에 먼 고국을 그리워한다.

일본에는 다듬이질하는 풍속이 없다고 하니, 아마 일본에 살게 된 고국의 여성이 깊은 밤 그리움과 향수를 실어, 또한 이국에 사는 한을 실어 다듬이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듬이질도 당시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 우리나라에는 '밤에 빨래 방망이질을 하면 집안 망한다', '밤에 빨래하면 가난해진다'는 금기가 있다. 그래도 어릴 때, 이 다듬이 소리는 깊은 밤 동네 골목을 휘돌아 간간이 끊어질 듯 들려왔다. 그렇게 애잔하고 쓸쓸하게 들릴 수 없었다. 아마 낮 동안은 다른 집안일에 바쁜 여자들은 밤중에 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희성의 <다듬이질하는 여인>에서도 다듬이질은 어머니의 한, 더 나아가 여성의 한을 나타낸다. 발해의 시에서만이 아니라 제 나라 땅이 아닌 곳에서 듣는 다듬이 소리는 이를테면 어머니, 더 나아가서 모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만큼 다듬이질과 여성의 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풀이의 수단이었으리라. 밤 다듬이질 소리는 시끄럽기 때문에 빈번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잠을 못 자고 저렇게 다듬이질을 하나, 하고 자리에 누워 중얼거려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마음이 전해져 와 짜안하기까지 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이 다듬이 돌과 방망이가 있었다.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들고 귀한 것이지만, 집집마다 다리미가 있듯이 이 다듬잇돌이 있었다. 방망이는 얼마나 많이 두드렸던지 험하게 패어있거나 닳아서 반질거렸다. 다듬이 돌도 하도 두드려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서 둥그스름했다. 시어머니가 쓰던 것을 며느리가 쓰고, 다시 그다음에 시집온 며느리가 쓰면서 대물림을 했을 방망이와 다듬잇돌이었다. 얼마나 많이 두들겼으면 그 안이 물을 넣어도 고여있을 정도로 움푹했을지 늘 신기해서 쓰다듬곤 했다.


어린 눈에도 빨래를 두드리는 그 리드미컬한 모습이 참 신기했다. 먼저 좀 눅눅한 빨래를 걷어서 차곡차곡 개서 면포에 싸서 발로 꾹꾹 눌러 밟았다. 그 밟는 게 춤추는 것처럼 어찌나 재미있어 보이던지 한 번은 나도 빨래를 밟아보겠다고 자청했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밟아도 어른들은 그만두라는 말을 안 했다. 괜히 빨래를 밟겠다고 나선 것을 후회 또 후회하면서 다리와 발바닥이 아프도록 밟은 기억이 난다. 아마 어린 내 힘으로는 그 빨래를 꾹꾹 밟아보았자 펴지는 힘이 약해서 아주 오래 밟아야 했을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빨래를 걷어서 갤 즈음이면 일부러 피하곤 했다.


꼭꼭 밟아 숨이 착 죽은 빨래는 풀을 먹였다. 밀가루 풀이었다. 큰 냄비에 풀을 가득 쑤어서, 그 풀이 빨래에 풀을 먹이고도 남도록 가득했다. 이불 홑청을 빨 때면 가마솥에 풀을 쑤기도 했다. 계속 저어주어야 해서 팔이 아프니 번갈아 가면서 저어야 해서 어린 나도 그 순서에 들어있곤 했다. 그리고 쓰다 남은 풀은 동네서 필요한 사람에게 갖다 주었다.


어느 집이 그날 빨래에 풀을 먹일 것인지 미리 다 알아서 동네 아줌마들끼리 풀 쑤는 것을 도맡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많이 쑤었고, 남은 풀을 여러 집 돌리거나 아예 풀 먹일 빨래를 들고 한 집으로 모였다. 그때만 해도 옷감은 면이 대부분이었다. 다리거나 풀질하지 않으면 형편없이 구겨져서 보기가 흉할 정도여서 꼭 풀을 먹였다. 게다가 이불 홑청까지 뜯어서 빠는 날은 김장하는 날보다 더 힘들었다. 그러니 빨래하기만도 힘든데, 이 풀까지 먹여야 했으니.


여성들의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또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이 빨래 행사야말로 여성의 노고를 아는 바로미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밀가루 풀이 제대로 잘 쑤어지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덩어리가 져 빨래는 엉망이 된다. 쑨 풀을 체로 밭치고, 손으로 주물러서 덩어리를 뭉개어 풀고, 그리고 그다음이 풀 먹이고 다듬이질이었으니 여성들의 지난한 삶이 가엾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동네 여인들이 모이는 풀 먹이는 날은 마치 명절 같았다.


풀 먹인 빨래를 차곡차곡 개어서 다듬잇돌 위에 얹어 놓고 이제 빨래를 두드릴 차례다. 만일 빨래가 너무 말랐으면 물그릇을 곁에 놓았다가 손으로 물을 홱 뿌리면서 빨래를 뒤적이고 다시 두드리고 그런 일을 반복했다. 손으로 물을 뿌리는 일보다 더 흥미 있던 건 할머니께서 입으로 물을 머금었다가 휙 하고 아주 고르게 뿌리던 모습이다. 손으로 뿌릴 때보다 더 골고루 물이 빨래에 번졌다.


나도 그걸 따라 하느라고 시늉을 해봤지만, 입으로 했을 때는 아예 물을 뱉어내었고 손으로 뿌릴 때는 빨래가 아예 함빡 젖었다. 입으로 물을 뿜어대기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주변 어른들은 하나같이 실수가 없었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빨래를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연민이 일지만, 그때는 그냥 마술처럼 신기하고 독특했다.


그뿐이 아니다. 다듬이질을 하는 것을 보면 한 번은 두드려 보고 싶었다. 이번에도 한번 해보겠다고 또 자청하고 나섰다. 어른들이 설마 하는 눈빛으로 방망이를 넘겨주었다. 어쩌면 쟤도 여자니까 한번 해보게 하라는 그런 눈빛으로 방망이를 넘겨주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멋지게 타악기를 두드리듯이 해보리란 기대는 즉시 무너졌다. 할머니와 아줌마들의 그 토닥토닥 투덕투덕하던 리드미컬한 소리 대신에 돌멩이 위에서 튀는 텅텅거리는 소리만 울리고 방망이는 방향을 상실한 채 빨랫감보다 다듬잇돌을 여기저기 칠 따름이었다.

방망이의 방향을 고누느라고 오히려 손목만 잔뜩 힘이 들어가고, 빨래보다 돌을 두드리는 게 더 많다 보니 손목이 멀쩡할 리가 없어 아픈 채 나는 물러나야 했다. 며칠 아팠을 것이다. 손목에 약까지 바르고 다녔으니까. 그리고 다신 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상실했다.


집안 일은 숙련된 장인의 일



훗날 나는 깨달았다. 집안일이야말로 숙련된 아름다움으로 오래 견디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그들이 방망이로 타다닥 타다닥 두드릴 때 무얼 생각했을까. 그렇게 두드린 고운 빨래를 맑은 햇살 아래 다시 널면서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네 여자들이 다 모여서 다듬이질을 할라치면, 고된 설움들 대신 웃음이 오히려 더 많았다. 방망이로 탕탕 칠 때면 모두들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누구 두드리냐. 그렇게 두드려서 속 풀리냐.

그럼 이렇게 할까.


하면서 두드리는 사람은 더 팔을 높이 들고 빨래를 탕탕 내려쳤다. 그러면 또다시 웃음들이 까르르 터진다. 에구, 속 시원해, 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다듬이질은 그럴 때 그 강약의 속도까지 달라, 어린 나에게조차 그 소리에 따라 마음의 갈등까지 다 드러날 정도였다. 혹시 고부간에 앉아서 다듬이질을 한다면, 소리로 갈등의 폭까지 알 수 있었을는지,,,


지금은 다리미가 있어서 그냥 쓱싹 한두 번 오고 가면 옷들이 펴지거나 또 세탁기에서 아예 건조와 다림질까지 되어 나온다고 하니 여성들의 일손을 덜어주는 편리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가끔은 이 다듬잇돌 두드리는 홍두깨가 필요하지 않을까. 여성들의 스트레스를 풀던 도구면서 때로는 마른 북어를 두드리기도 했고, 혹시라도 도둑이 들면 잡겠다고 장롱 아래 두기도 했던 홍두깨. 그 방망이의 리드미컬한 소리는 어린 나도 귀를 기울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고 있었다.


여자들이 집안일을 하는 수작업(手作業)이야말로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인내로써 운명처럼 받아들인 그 모든 감정의 내밀한 결정임을, 나는 지금에야 고개 끄덕이며 잠시 떠올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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