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대체물 묵요리, 건강한 인내

- 『농무』, 신경림

by 이지현
슬픔의 묵

시집 『농무』의 배경은 1970년대로, 성장 위주의 개발에 집중하느라 심각해진 이농현상으로 농촌공동체가 파괴되는 때다.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이 휩쓸고 간 농촌은 문학의 공간에서도 황폐하고 비극적이다.

『농무』의 공간은 극도의 가난이 자리한 궁벽한 시골이면서 장터다. 장터는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서로의 옹색함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비극적인 모습에 절망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장터, 김동리의 『역마』 속 장터처럼 여기 장터도 만남과 헤어짐의 순환을 되풀이하는 공간이다. 전자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도 핏줄을 찾은 흐뭇한 사랑의 장소라면, 후자는 쓸쓸한 사랑의 긴 유랑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농무』의 장터는 다르다. 농민들은 충분히 자신의 비극적 가난을 알고 있고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자신의 처지를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막걸리나 소주 등의 술을 마실 때며, 안주는 묵이다.


묵은 가난한 자가 가장 만만하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이었다. 도토리는 시골 마을 뒷산의 갈참나무나 졸참나무에서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어서 굳이 돈이 없어도 되었다. 밭에다 씨만 뿌려도 메밀을 거둘 수 있었다.


도토리가 서민들에게 익숙한 음식이다. 도깨비방망이 얻기 설화에는 착한 동생이 산에서 주은 개암을 깨물자 도깨비들이 그 소리에 놀라서 방망이를 두고 도망가 동생은 부자가 되었다. 또 메밀묵을 도깨비가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과부가 메밀묵을 쑤어 도깨비를 불러들이고 그로 인해 부자가 되었다. 설화 속에서 묵을 쑤어 먹을 수 있는 도토리는 서민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소재였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흰 메밀꽃이 소금처럼 흐뭇하게 뿌려져 있는 그 달밤의 메밀 꽃밭은 낭만적인 시골 풍광이지만, 『농무』에 등장하는 농촌은 황폐하고 촉촉한 슬픔으로 앓고 있다.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 ‘겨울밤’ 중에서


묵은 긴 겨울밤 농민들의 주린 허기를 메우는 야식이기도 했고, 시 <경칩>에서는 ‘아내 대신 묵을 치고, 술을 나르고’라고 말하듯이 안주가 되기도 했다.


겨울 한밤에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메밀묵 사려어'라는 소리는 얼마나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것인지. 더구나 쨍쨍하니 추운 밤에 울리는 그 청명하게 끄는 듯한 소리는 당장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메밀묵 장수를 부르고 싶다. 언젠가 하도 추운 날, 기다려서 그 메밀묵을 사 먹었던 적이 있다. 나이가 많지 않은 남자아이가 팔고 있었다. 그 묵을 사면서 왜 그 아이가 이 추운 겨울밤에 묵을 팔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겨울밤에 모든 것이 얼어붙는 순간에 메밀묵 사려라던 소리가 얼마나 먼 종소리처럼 아리던지.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몸져누운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너무 가난하여 먹고살기 위해.




그때 나는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묵이란 자못 쓸쓸한 음식이란 생각을 했다.

국수 반 사발에

막걸리로 채워진 뱃속

농자천하지대본

- ‘오늘’ 중에서


가난과 허기와 소외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민들을 보는 시인은 ‘농자천하지대본’이란 시니컬한 반어를 내뱉을 수밖에 없다.

묵요리

사농공상 중 두 번째로 치던 농민은 『농무』에서 허기진 삶을 산다. 산업화가 물밀 듯 들어와 시 <서울로 가는 길>에서는 ‘우리의 피가 얼룩진 서울’로 가야 잘 살 수 있다고 무조건 믿는다. 농업이 업이었던 그들은 막걸리와 국수 반 그릇으로 이제 허기를 면한다. 천하에 가장 근본이 되었던 농업은 이제 모두 기피하는 일이 되는 이 슬픈 반어를 『농무』에서 저절로 본다.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는 더운 여름이면 500원이면 큰 우묵을 한 덩이 주었고, 콩물에 소금을 타서 채친 우묵을 넣어먹는 맛이란. 또 투명한 우묵의 살을 관통해서 환히 비치는 것들이란. 그 모든 것을 즐기면서 먹는 우묵 콩국은 어디에도 비유할 수 없는 맛이었다.

시리도록 찬 우물물을 길어서 저편이 환히 보이는 투명한 우묵을 사다가 담가 놓고 쪼그려 앉아 보던 재미란.


여고시절엔 가정실습시간에 탕평채를 만들었다. 숙주, 미나리. 부순 김의 갖은 나물에 청포묵을 무쳐낸 음식으로 어쩌면 그렇게 맛이 있었던지. 국사시간에 왜 탕평채가 만들어졌는지 배우고 먹던 그 맛. 온갖 당파를 비벼서 먹는 그 맛이란.



이렇게 내가 아는 묵은 맛깔난 음식이며, 가슴이 저릿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농무』에서 묵은 순전히 가난의 대체물이고, 가난한 농민들의 먹을거리다.

한창 묵 요리가 유행이었다. 애써 가서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묵이 다이어트 요리로 각광을 받고, 또한 담백한 영양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변화에 잠시 숙연했다. 『농무』에 등장하는 가난의 대체물이 묵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묵을 먹으면서 그들은 건강하다. 그 가난은 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농무』에서 농민들은 묵을 먹으면서 버릴 수 없는 고향에서 묵묵히 견디며 살아간다. 없는 살림에도 만나면 소박한 술상을 놓고 정답다.


봉당 멍석에까지 날아오는 밀 겨,

십 년 만에 만나는 나를 잡고 친구는

생오이와 막소주를 내고

아내를 시켜 틀국수를 삶았다.

처녀처럼 말을 더듬는 친구의 아내,

- 시, ‘친구’ 중에서


묵 내기 화투까지 하는 그들은 가난도 처음엔 놀이처럼 가볍게 받아들였다. 호이징하가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했을 때, 인간의 중요 원형적 행위에는 처음부터 놀이가 스며있었다. 그러나 가난이 지속될 때 가벼운 놀이가 아니라 연민이 되고 분노로 바뀐다.


도토리묵 한 덩이를 사서 가늘게 채쳐 멸치 다신 물로 낸 육수에 다진 김치와 가늘게 채친 김을 얹어 온면으로 먹어본다. 때로는 차가운 육수를 부어 먹어 본다. 『농무』를 읽은 후로는 도토리 온면을 먹을 때나 도토리 냉면을 먹을 때나 가슴 한 복판으로 차가운, 그러나 따뜻한 시 한 편이 늘 지나간다.



가난이 체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시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신경림, 『농무』, 창작과 비평사, 1976.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숙명 같은 인내의 두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