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한 슬픔

by 이지현

가을 거리엔 저마다 한 움큼씩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오간다.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기록들이

오래 굳어서 단단하다.

물렁한 쓸쓸함이 휩쓸고 지나는

딱딱한 거리에서

저 아무렇지 않은 표정들은

생을 버티기 위한 점잖은 얼굴이다.

가끔 부는 바람이

담벼락에 걸린 능소화를

노을처럼 투둑 떨어뜨리는 소리

그리움의 신호처럼 울려

가을 거리가 기우뚱 기울었다.


물렁한 슬픔이 마음을 딛고 가는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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