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콩국을 먹을 때면 맷돌로 갈아서 진국을 만들었다. 콩국수는 먹으면 배가 탈이 나서 안 먹었지만 우묵을 넣은 콩국은 항상 좋아했다. 우묵을 사러 기찻길까지 가는 길은 그래서 늘 지루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어두운 방에서 맷돌을 갈아 콩국을 만들 때면, 콩의 고소하고 비릿한 내음이 부뚜막에서부터 차올라 연기처럼 피었다.
부뚜막의 가마솥에 콩을 끓이기 시작하면, 오래 끓이지 않아야 한다면서 연기가 한 김 오를 때 무쇠솥의 뚜껑을 열었고, 체로 콩을 다 들어내고도 솥 안의 물은 한참을 부글거리면서 끓었다
콩을 끓이기 전에는 상위에 콩을 주르르 한 손에 쥐고 획 펴서, 병든 콩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그럴 때면 둥근 콩은 여기저기 튀기 마련이고, 콩 구르는 소리는 양철 지붕 위의 비 떨어지는 소리보다 요란했다. 끓은 콩은 다시 조물 거리면서 거피를 했다. 그렇게 해놓은 콩은 염주처럼 고요히 가라앉아서 땡글한 자세로 얌전했다.
한 주먹씩 쥐고 맷돌을 돌리면 도대체 어떻게 콩이 갈려서 나오는지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었다. 자그마한 돌덩이에서 어떻게 그리 멀건 죽처럼 나오는지 한 번은 내가 도울 셈해서 맷돌을 돌렸다.
아뿔싸!
제대로 구멍이 안 맞았는지 콩물이 옆으로 다 새서 방바닥을 적셨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이 거봐라, 하시는 표정으로 보고만 계셨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이미 외할머니는 주방의 고달픈 일상을 어린 손녀딸에게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맷돌을 돌리면서 그때 할머니가 노래를 불렀던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맷돌을 돌리는 일은 여성으로서는 노동이다. 실제로 해보니 그렇게 무거운 돌을 쉬임 없이 돌리면서 일상적으로 먹어야 하는 곡식을 얻기 위해 여성들은 멈출 시간도 없이 노동을 했던 셈이다. 맷돌을 돌려야 했던 여성들의 비극이 어린 나에게도 가슴이 저렸다.
원형의 맷돌이 던지는 그림자
맷돌을 돌리면서 부르는 노래는 여성의 노동요 중에서도 그 범위가 넓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만 전승되는 것이 1만여 편이라고 하니, 여성의 노동의 강도가 눈에 선하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을 하면서도, 다음날 먹을 양식을 위해 여성들은 또 맷돌을 돌리곤 했다. 먹을 양식도 희디흰 쌀알이 아니었다.
맷돌은 거친 잡곡을 위해 존재했던 도구였다. 여성들의 비극적인 노고가 맷돌의 무게만큼 무거웠으리라. 맷돌은 잡곡 문화권에서 유효한 도구니 제대로 잘 먹지도 못하는 여성의 체력과 인내심을 시험하던 도구기도 했다.
맷돌이 다른 형태로 생긴 것은 보지 못했다. 맷돌은 원형이다. 위아래 두 원이 서로 엇갈려 돌면서 곡식을 간다. 원의 형태는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여성의 숙명처럼 그 자리를 맴돌 뿐이다. 그런 맷돌을 갈면서 여성들은 자신의 벗어날 수 없는 숙명에 좌절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굴레를 받아들이면서 수용했을까.
맷돌은 농경사회의 중요한 도구기도 하지만 여성의 전유물로 남았을 때 어쩌면 숙명 같은 것이기 쉽다. 맷돌의 원형적 숙명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여성들은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고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잡곡 문화권에서 유효한 맷돌
한편 맷돌이 둥근 것은 어쩌면 곡식이 갈리기 쉽게 돌리기 쉬운 형태였겠지만, 맷돌이 가는 곡식이나 씨앗들도 모두 둥근 형태다. 흔히 대지를 여성의 상징으로 볼 때 맷돌의 그 원의 형태는 모든 것을 품는 넉넉한 존재이기도 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양가적인 모순을 맷돌은 숙명처럼 지니고 있다. 맷돌의 원형성이 여성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형태라면, 또한 모나지 않아서 여성적인 모성의 넉넉함을 드러내는 모순을 가진다.
외할머니가 해주신 음식 중에서 칼국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반죽을 밀대로 밀어서, 칼로 싹둑싹둑 채를 치고 닭고기를 푹 곤 진한 국물에 넣고 끓인 맛이란.
맷돌을 가느라 실수한 일보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그 칼국수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주방의 힘겨운 노동보다 맛에 길든 편한 여자가 더 되고 싶은 탓일 거다.
작은 돌쩌귀 하나 가는데도 요령이 필요한 정교한 주방의 솜씨가, 지금의 주방에서는 얼마만큼 유효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