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뜻한 시집 한 권

- 박목월 시인의 부인이 준 시집

by 이지현


아들의 수필에 실린 어머니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박동규 교수의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 이란 수필엔 전쟁이 끝난 직후 어렵게 살았던 시절, 서로 따뜻한 정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화가 실려있다.


그중 한편은 저자가 어머니의 심부름을 가던 중, 돈봉투를 잃어버려, 그 사실을 먼저 알게 된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그 돈을 주면서 어머니에게 말할 수 있을 때 언제든지 갚으라고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따뜻한 동네 아저씨도 멋지지만 저자의 따뜻한 어머니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그런 분을 내가 직접 만났을 때 저자의 글 이상으로 내가 받은 그 따뜻함을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박동규 교수는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 시인의 장남이다. 이 수필에서 그 어머니는 아들이 돈봉투를 잃어버리고 동네 가게 아저씨가 빌려주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된 사실을 알았을 때, 아들에게 진작 말하지 그랬느냐고 하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느냐고 아들을 위로한다. 어떤 엄마가 아들의 부주의를 나무라기는커녕 이렇게 위로할 수 있을까. 나도 자신이 없다.

그러나 박목월 시인의 부인은 실제 만나본 결과 꼭 저자의 수필에 나오는 그 엄마 그대로다. 나도 저자 이상으로 그 따뜻함을 선물 받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온기로 환하다.


실제 박동규 교수의 수필집인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을 읽어보면 반 이상이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며, 그 책을 읽다 보면 그 부인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모두 눈시울을 핑 붉힐 것이다.



박목월 부인을 만나다



대학원 다닐 때 소논문을 써내라는 과제가 나왔다. 그냥 작품만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한 작가를 선정해서 그 작가의 작품과 일생을 연결해서 어떻게 작품이 생성되는지 쓰라는 한 학기 내내 주어진 과제였다.

발로 뛰어야만 되는 과제여서 정말 힘들었다는 기억이 아직도 남지만, 나는 그때 박목월 시인을 선정했고 한 학기 이상 박목월 연구에 온 열정과 시간을 다 바쳤다.


박목월 시인이 다녔던 대구 계성중학교까지 직접 가서 생활기록부까지 사정사정해서 보면서 복사까지 했고, 시인의 주변분들까지 만나보면서 시인의 어린 시절을 채록했다. 그러기까지 여러 번 대구를 다녀왔다. 아마 그랬길래 생활기록부까지 복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생활기록부는 당시 제출해서 지금은 어떤 기억도 남지 않지만 아마 목월 시인은 어릴 때부터 매우 달랐던 학생으로 쓰여 있었던 듯하다.


문제는 대구와 서울의 유명 도서관을 모두 다 뒤졌지만, 박목월 시인의 시집 중 딱 한 권을 보지도 구하지도 못 한 것이다. 시인의 초판본 소장으로 인해 대출 및 열람 불가의 시집들도 일일이 복사하면서 정리했지만, 그 한 권을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한 권이 빠진 바람에 내가 사방팔방 다니면서 수집한 박목월 시인의 자료들은 그냥 중간이 뻥하고 비어버린 바람 빠진 기록이 되고 말았고, 또 그 한 권으로 인해 시인의 시적 변천 과정의 흐름을 도저히 연결할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이 바로 시인이 초기의 자연에서 서서히 현실로 들어가는 초입의 바로 그 단계였기 때문이다.

시집 <무순>에서부터 박목월 시인은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 1976년 초판본


고민하다 못해 박목월 시인의 집으로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시인의 부인이 전화를 받았고, 내 사정을 말씀드리자 시집을 소장하고 있지만, 줄 수 있을지는 만나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시집을 구경만 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기대조차 하지 않고 갔다.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시집이 그 부인에게는 얼마나 소중할 것인가.


부인은 대청 끝에 서서 대문으로 들어서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부인은 자그마한 분으로 날씬하셨다. 그리고 아무 표정이 없는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맞이해주셨다. 긴치마에 색상이 없는 소박한 옷을 입은 부인이라서 미남인 시인의 부인치고는 매우 수수해 보였다.


나는 그동안 모았던 시인의 자료들을 잔뜩 가지고 갔다. 어떤 것은 드리려고 아마 일부러 복사까지 따로 해갔을 것이다. 가족들도 일부러가 아니면 구할 수 없었을 자료들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어릴 적 자료들이 었으니. 내 자료들을 대청 끝에서 본 부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두말없이 책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때까지 인사 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인은 방에서 가지고 온 시집을 내밀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얘기도 미처 드리지 않았는데요,,, 하고 말끝을 흐렸다.


부인은


'말해야 압니까. 보기만 해도 다 알지요. 사람은 백 마디 말을 다 한다고 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의 말도 안 한다고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집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렇게까지 다니면서 선생을 연구 했다니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박목월 시인의 연구를 잘 끝마쳐달라고 하면서 시집을 손에 꼭 쥐어주셨다. 일개 대학원생의 학기 중 논문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대해주는 부인의 마음이 너무 놀라웠다. 내가 보고 싶었던 시집 외도 부인은 다른 한 권을 더 주셨다. 이 시집을 꼭 읽어야 박목월 시인을 안다면서.

그 시집은 바로 <크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시인의 신앙 시집이었다.



깊고 따뜻한 마음의 시집



아직도 나는 그 대청 끝에 서서 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박목월 시인의 부인을 잊지 못한다. 소박하고 표정이 없던, 그러나 마음이 깊은 그 부인을, 한번 만나 본 사람이라면 아마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저 빈말에 능란하거나, 유명한 시인의 부인이라고 과시하거나,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거나 했더라면, 또 멋진 집에 살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이 지나고도 기억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그 유명한 시인의 집은 아주 오래된 골목의 그 한쪽에 겨우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부인은 더 소박하고 검소하지만, 마음이 깊고 따뜻한 분이셨다.


따질 줄도, 계산할 줄도 모르는 부인의 그 마음이, 박동규 교수의 수필을 읽을 때면 늘 고요한 물처럼 떠오른다. 그래서 박동규 교수의 수필집은 내가 가끔 손에서 놓지 못하고 드려다 보는, 나에게도 내 생애 가장 따뜻한 책이다.


바로 그 아들이 기억하고 생각하고 글에 쓴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엄마가 맞다. 잃어버린 돈보다, 아들이 그 돈을 잃고 말을 못 해서 끙끙대고 다녔을 그 한 달이 더 마음 아픈 엄마, 돈보다 마음에 입었을 상처를 더 위로해주는 엄마, 그때는 나도 학생이라서 세상살이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 나도 역시 그 부인과 여러 마디의 말을 주고받지 못했어도 그 따뜻함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집을 한 권 받았던 셈이다.

아직도 그 시집은 내 서재에 그 부인의 따뜻한 체온을 간직한 채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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