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신화적 사랑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이지현

모성애를 자극한 검은 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여름에 사랑이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난 달은 6월이다. 아마 이 여름의 기운이 베르테르의 열정적인 사랑에도 일조했을 것이다. 여름은 흔히 원색으로 표현된다. 원색이란 혼합할 수 없는 독립된 색이다. 소설 속에서 원색인 붉은색은 ‘젊음의 계절’로 표현되는 여름과 치명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 어린애들 6명이 소녀를 둘러싸고 있었고, 로테는 청초하고 단정한 흰 옷을 걸치고, 팔과 가슴에 붉은빛 리본을 달고 있었다. 마치 여신을 연상하게 한다. 이 붉은빛 리본은 비극적인 결말에서, 베르테르가 함께 묻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로테는 검은 빵을 들고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빵이라면 단연 세계적으로 독일빵을 최고로 친다. 로테가 나눠주고 있는 빵은 호밀이 거의 주성분인 흑빵이었을 것이다. 독일 빵은 호밀이 많이 섞일수록 색이 검어진다.

그렇게 붉은빛 리본을 단 흰 옷을 입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건강한 빵을 어린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로테의 모습은 바로 어머니의 이미지와 동일시된다. 베르테르로서는 어머니의 이미지와 사랑의 이미지가 동시에 조우한 셈이다.





검은 빵은 베르테르의 8월 15일의 편지 속에도 등장한다. 로테의 피아노를 조율해주기 위해 그녀의 집에 갔을 때 베르테르는 아이들에게 저녁 빵을 잘라서 나눠준다. 아이들은 로테와 다름없이 베르테르에게서도 빵을 받아먹는다. 베르테르는 아이들에게 공주님이 갇혀 죽게 되었을 때 하늘에서 수많은 손이 내려와 먹을 것을 주었다는 동화를 들려준다. 여기서 빵은 독일어 Broterwerb(생계, 밥벌이)가 ‘빵을 얻다’라는 뜻이듯, 일상의 식사기도 하지만 구원의 음식이 된다. 이때 베르테르의 감정은 로테에게 이입된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랑하게 되는 필연은 바로 뜨거운 여름날과 붉은빛 리본, 모성 이미지를 띤 검은 빵 등의 결합 속에서 일어난다. 이 이미지들은 여름의 계절과 더불어 너무 강렬해서 그가 사랑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따라서 ‘한번 손댄 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정열과 격렬한 성격을 지니고 베르테르가 태어났다’고 로테가 말하면서, ‘적당히 해주세요’라고 부탁할 때 베르테르의 집착적이고 절망적인 사랑은 이미 비극적 파멸을 예고했던지 모른다.




폭풍 같은 사랑의 이데올로기



보리수나무는 베르테르에게는 사랑의 나무다. 이후 알베르토와 로테가 베르테르가 자살한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가 있는 곳에서 고이 잠들고 싶다고 말한다.

게르만의 전설 속 불멸의 영웅이었던 지크프리트와도 관련된 보리수나무는 독일인에게는 신비함을 선사한다. 젊은이들은 하트 모양의 나뭇잎을 보면서 사랑의 나무로 믿었다. 베르테르도 처음에 이 보리수나무를 보면서 안식과 평화를 느낀다.


이 보리수나무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도 나오는데 음악 시간에 린덴바움이라 배웠고 노래했다. 그런데 번역을 보리수나무라고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보리수나무와 좀 다르다고 한다. Lindenbaum(linden tree)은 독일을 상징하는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신성한 나무며, 젊은 남녀의 사랑을 맺어주는 ‘사랑의 나무(tree of lovers)’라고도 한다. 이로 미루어 베르테르는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모든 사물에 자신의 사랑을 접목시켜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로테와 만나는 호두나무도 베르테르에게는 행복한 사랑의 나무였다.




그러나 사랑과 성실의 이미지를 가졌던 보리수나무는 폭력과 살인의 이미지로 변한다. 보리수나무들의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눈 덮인 비석들이 들여다보이는 황량한 광경만이 남은 겨울에 그 나무 아래서 보리수나무 근처 사는 미망인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던 머슴이 비극적인 사건을 벌인다.

베르테르의 사랑이 막을 내리듯 나무도 이제 사랑의 순결함을 지켜보던 그 나무가 아니다. 이제 보리수나무 부근에 살던 사람들은 불행해지고, 호두나무는 잘린다.

자기가 손수 가꾼 배추를 식탁에 올리고 맛볼 수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더불어 즐거웠던 경험과 갖가지 추억들을 식사하는 그 한순간에 되새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베르테르의 가치관은 단순히 사랑을 바라보는 것으로만 생각지 않았다. 베르테르는 이런 생각을 발하임의 주막집 채소밭에서 완두콩을 따고 버터를 넣고 불에 올려 뒤섞으면서 생각하게 되는데, 사랑은 개인의 고유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도 그 감정을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 가부장적 사고였다. 따라서 이런 감정들이 현실에서 성립하지 않을 때 베르테르의 비극은 이미 예정되었던 것이다.


베르테르는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에게 구혼자들이 몰려와 소와 돼지를 잡아 굽는 장면을 인용하면서 “내 삶의 양식에 아무 꾸밈없이 짜 넣을 수 있는 저 가부장적 삶의 모습만큼 조용하고 진정한 느낌으로 나를 만족시키는 것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신화 속 인물들을 등장시켜 가부장적 삶의 가치를 삶의 진정한 본질로 간주할 때, 로테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만족을 얻을 수 없었다.

로테가 자신과 살게 되었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는 일방적인 사고에 함몰되는 순간, 베르테르의 사고는 경직되고, 신화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 이때 로테의 이미지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신화적 스테레오 타이프에 고정된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처음 만난 날도 마치 여신 같은 모습과 음식을 나눠주는 모성적 이미지를 동시에 보았다. 그리스 신화가 남성 중심의 계보를 가진 가부장적인 질서가 농후한 사회를 상징한다고 볼 때 베르테르는 사랑을 소유의 개념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식탁을 마련하는 것은 여성의 의무지만, 그 식탁에 차릴 음식을 가져오는 것은 남성의 권위를 상징했다.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사랑은 이처럼 가부장적 신화소가 작용하면서 더욱 치명적으로 치닫는다. 페넬로페가 수많은 구혼자를 물리치고 오직 오디세우스만을 기다린다는 지고지순한 상징을 차용하면서, 베르테르는 스스로를 그 사랑에 대비시키기도 하지만, 사랑의 관용이나 포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식탁에 올린 신화적 사랑



검은 빵을 나눠주던 로테의 모성적 이미지가 마침내 페넬로페의 식탁에까지 이르는 신화적 이미지를 거치면서, 베르테르는 사랑의 순수함에 대해 말하려고 했겠지만, 사랑의 본질은 매우 다양해서 오직 사랑, 그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삶 속에서 존재하는 생물과 같아서 그 촉수로 많은 곳을 더듬어가기도 한다.

때때로 사랑은 이기적이다. 1974년에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 DavidPhilips가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한 ‘베르테르 효과 Werther effect’는 사랑의 이기심을 드러낸 모습이 아닐까. 사랑을 이루지 못해 자살을 택하는 것부터가 이미 상대방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또한 서간체라는 것도 상대방의 관점에서 쓰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방에게 자칫 사랑을 강요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 빌헬름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간체의 독특한 형식은 사랑의 일방 통행적 강요가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소설이 한국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20년대 개벽 창간호에 현철의 소설 개요에 서간체 담화 법의 예로 소개된 때다. 이후 1920-30년대에 가장 많이 번역된 소설로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의 실패로 인해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던 청년들에게, 이 소설은 마치 잘 듣는 약처럼 작용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괴테의 자전소설로도 알려져 있는 이 소설은 수많은 신조어와 당대의 감상주의들과 맞물려 열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직도 이 소설 속의 사랑은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베르테르의 사랑은, 지금이라서 사랑의 본질과 그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베르테르의 사랑이 절망적이고 비극적이었지만, 그리고 그 사랑의 한 끝을 잡을 수 없었다 하더라도, 사랑의 정의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마치 불빛 없는 마술 환등 같다. 불을 그 속에 넣어야 비로소 다채로운 영상이 흰 벽에 비치게 되는 것. 비록 그것이 순간적인 환상. 슬쩍 비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베르테르의 사랑이 일견 무모한 사랑이었을지라도, 청춘의 시간이 지났어도 두근거리면서 읽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사랑은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서 그저 아름다우면 그것만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