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이 우러나는 맛과 멋

- 『인연』, 피천득

by 이지현

애련과 연정



피천득의 수필 <인연>을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을 때,


'세 번째는 아사코를 아니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라는 애잔한 슬픔이 배인 그 독백에 한 번쯤 가슴을 베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남에 대한 후회는 이루어지지 못한 인연에 대한 쓸쓸한 중얼거림이고 고백이다. 우리가 짐 진 것들에 대한 가벼운 내려놓음이다. 삶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 많지 않던가.

따스한 차 한 잔에 / 토스트 한 조각만 못한 것

포근하고 아늑한 / 장갑 한 짝만 못한 것

잠깐 들렀던 도시와 같이 / 어쩌다 생각나는 것

- 피천득 시, <연정>

‘연정’이 차 한 잔만, 토스트 한 조각만 못하다는 말은 아니며, 어쩌다 생각나는 것은 더 아닐 것이다. 인연이 없어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때 그 따뜻한 그리움만으로도 따스하고 포근하고 아늑하다는 말일 것이다. 역설적인 이 감정은 쓸쓸한 인연을 가졌던 사람이 되뇌어보는 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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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연>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저자의 <은전 한 닢>을 기억해 보자. '단지 그 은전 한 닢이 가지고 싶었습니다.'라는 걸인의 말, 그 단 한 문장 속에는 소유욕을 넘어서 가지지 못한 자의 슬픔 같은 것이 잔잔히 배어들어있고 억만장자가 가지고 있을 그 엄청난 수량의 은전들보다 더 반짝이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


그것도 기억 안 난다면 수필은 청자연적이요. 난이며 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한 <수필>이나, 야구의 외야수처럼 무대 뒤의 콘트라베이스가 되고 싶다는 구절을 기억해도 좋다. 아주 쉬운 말로, 일일이 사전을 뒤적이면서 낱말의 뜻을 알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그러나 마음이 서정적인 사람이 읽으면 더 촉촉한 그런 교과서의 구절들을 기억할 것이다.


서정이 흐르는 멋에 취해



저자의 <맛과 멋>이란 수필을 보면, '맛은 감각적이요, 적극적이며, 정확성이며, 그때뿐으로, 얕고 현실적'이라고 했다.

'멋은 정서적이며 은근하고 교양을 필요로 하고, 여운이며 깊다'라고 했다. 따라서 정욕 생활은 맛이라고 했고,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라고 했다. 저자는 아무래도 맛보다는 멋에 치우쳐 있다. 이 정의가 순전히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서정적인 면은 맛보다는 멋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0세에 어머니마저 잃고 고아가 된 저자는 춘원 이광수의 집에 머물면서 자연히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세상에 홀로 남은 느낌으로 살았을 저자가 그의 수필을 따뜻한 옷으로 입힌 것은 아마 그의 천성으로, 맛의 감각적인 것보다 멋의 우아함과 고아한 가치를 더 우위로 쳤기 때문에 오래 온화하고 따뜻한 글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수필은 대부분이 짤막하여, 한 편의 산문시를 읽는 느낌이다. 그 짤막함 속에 우리가 걸어가는 세상이 다 녹아들어 있고, 자연과 사랑이 아늑한 집처럼 들어있다. 주로 직유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직유법은 돌려 말하기 중에서도 비교적 솔직한 비유법이다. 글들이 진실하고 소박해 보이는 이유기도 하다.


또 형용사가 많아, 서정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생생하다. 현재형이 많고 인용과 반복이 많아 겸손한 목소리로 바로 곁에서 독자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거나 책을 읽어주듯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회상도 많아, 벽에다 건 액자처럼 들여다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현재의 삶을 이끌 단단한 힘을 가진다.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서 '나는 사과를 좋아하고, 호도와 꿀을 좋아하고, 친구와 향기로운 차를 마시기를 좋아한다' 고 했다. 군밤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길을 걸으면서 먹는 것을 좋아하고, 찰스 강변을 걸으면서 핥던 콘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음식에 대한 취향도 아무래도 맛이 아니라 멋이 더 우위다. 그러기에 '비 오시는 날 저녁때 뒷골목 선술집에서 풍기는 불고기 냄새를 좋아한다.' 고 말한다. 맛있는 불고기를 먹는 것보다 냄새가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맛보다 멋을 더 치는 까닭이다.


냄새란 사람 사이에서 유대감과 정서를 불러일으키지만, 서로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저자가 좋아하는 사과나 꿀은 향기가 강하고, 부드러운 것들이다. 차도 그 향기로 마시고, 밤이나 아이스크림도 단지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산책을 거드는 음식이다. 이렇게 저자의 수필 속에서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음식들은 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멋을 위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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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술을 좋아하면서도 술을 마시지 못하고, 포도주를 사놓고 마실 용기가 없어서 그 술 빛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술 자체가 아니라 술 먹는 분위기를 즐기는 것은 맛이 아니라 멋이다.

<모시>라는 수필에서 '인조'는 싫다고 한다.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어야 할 때면, 진열장에 내어 놓은 '비프스테이크'를 볼 때처럼 속이 아니꼽다고 했다. 저자가 지금 시대의 한껏 꾸며 내놓는 한 접시의 멋진 음식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자의 음식의 멋은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마음으로 먹고 향기 맡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다. 인조에 대한 가공과 가식의 마음이 없는데서 서정이 흘러나와 맑은 강물을 드려다 보듯이 질박하다.




행복의 멋



저자의 수필을 읽다 보면 정서를 느끼는데 음식이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도 황제의 식탁에서 홀로 앉아 고독하게 음식을 먹는다면, 그 식탁에 금으로 만든 접시와 포크가 있고, 유명한 요리사의 음식이 있을지언정 어떤 맛과 멋이 있을지.

아주 가끔이라도 음식을 탐하는 맛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좋은 이야기를 하거나, 마시지도 못하는 한 잔의 포도주일지언정 그 향기와 그 빛깔에 취하는 흥을 가져볼 것이다. 그걸 즐기는 마음이 저자처럼 서정의 힘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세상이 건조하여 욕망과 탐욕, 남을 속이거나 넘어가려는 술수가 능해서 서정성이란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약한 힘일지 몰라도, 나는 오늘도 감히 저자와 엇비슷한 서정의 흉내나 내어볼까 하면서, 또 그 서정의 향기라도 맡아볼까 하면서, 수필을 뒤적이고 또 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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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추억에 대한 한 구절.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멋에 대한 한 구절.


‘멋있는 사람은 멋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작고 이름 지을 수 없는 멋 때문에 각박한 세상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산골에서 물동이를 이고 오는 여인을 보자, 집에서 막 뛰어나와 그 물동이를 받으려고 하는 다른 여인과 작은 실랑이. 먼저 물동이를 인 여인이 그대로 괜찮다고 손을 내저으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동서 사이였을 거라는 말. 이 작은 실랑이에서 빚어지는 멋이야 말로 바로 우리 사는 세상의 멋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직 저자의 서정에는 어림도 없고, 그 멋은 더구나 아직 섭렵하지 못했으니 어쭙잖은 속인의 마음이 흉내만 내려고 해도 고달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요, 인간 존재의 총체적 목표이자 끝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것들에 멋을 느껴야 한다. 행복한 맛이면 결국은 멋에 포함될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고 지친 삶이 우리를 종일 괴롭히더라도 누구나 가슴에 서정의 멋을 느낄 한 순간을 가진다면 그 끝에 행복이 서 있지 않을까.

『인연』, 피천득,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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