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무소 선택은 현장 가까이
- 설계 사무소를 정하다
설계사무소 찾기
"바로 옆에 제비 다방도 하고 있어요"
"제비 다방이면 이상이 하던 다방인데, 종로에 있어야지 여기 왜..."
"이상을 아세요."
30년대 모더니스트 이상에 대한 공감대로 씨티알폼 건축사무소를 선택하게 된 대화의 일부다. 나이 든 아줌마가 이상을 당연히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나는 이상의 시와 소설 작품을 관통하는 '문'의 이미지로 비평을 쓴 적이 있고 KCI에도 등재되어 있으니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이상과 건축설계사무소가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상의 팬인 건축가라면 어느 부분에서는 맞을 수도 모를 것 같은 예감에, 건축가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는 채 선뜻 씨티알폼 설계사무소를 선택했다.
나는 왜 그때 '문'의 이미지를 탐구했을까. 집을 짓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했을까.
식민지의 지식인 이상에게 '문'은 '탈출과 비상'의 이미지'였다. 이상은 작가이자 건축가였다. 그래서 이상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입체적인 구조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집을 계약하고 리모델링을 염두에 두면서 건축가를 찾기 시작했다. 구옥을 구해서 그저 뉴트로 하게 개조한다가 내 일천한 리모델링 상식이었다.
그동안 잡지 등에서 관심 있게 보아둔 건축가들을 생각하곤 2군데 메일을 보냈다. 그분들의 집에 대해 쓴 의미 있는 글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연락을 했다. 세상에 똑같은 형태의 집은 없으니 집이야 짓기 나름이겠지만, 집의 의미에 대해서 누구나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든 글을 쓴 건축가들에게 연락했지만, 어느 누구도 답장조차 없었다. 아마 내 우스운 리모델링 개념은 그런 건축가들에게 맞지 않았던 듯했다.
이미 집 계약 문제, 대출 문제, 이사 문제 등 할 일들은 산재하고, 설계사무소도 찾아야 했다.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는 매매했던 부동산을 방문했는데 사장님이 안 계셨다. 뒤로 돌아서는 데 갑자기 길 건너 건축사무소 간판이 보였다. 집을 사는 날에 종일 오가도 보이지 않던 간판이 보인 것이다.
필요한 순간에만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고릴라 실험의 '무주의 맹시'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보려고 하는 것만 인식하고 필요한 것만 본다는 것이 맞다.
현장 가까이서 건축가 찾기
현장 가까이서 건축가를 찾아라. 내가 읽은 집짓기 책 중에서 마음에 새겨두었던 구절이었다.
마침 공교롭게도 오상훈 건축가가 있었다. 리모델링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대화 끝 무렵 작가 이상에 관한 이야기로 내심 건축가를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매매한 집과 아주 가까워서 좋았다. 현장에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서 좋은 건축가를 만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건축주들의 '가까운 데서 건축가를 찾기'에 적극 공감했었다. 바빠서 현장에 쫓아다닐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생각이 나면 한 번이라도 더 가봐줄 것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집짓기 책들에서는 건축가들은 설계 도면이 건네진 후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집을 사려고 마음먹으면서 엄청나게 읽은 실제 현장을 기록한 책들은 행복이 아니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때 나는 차라리 좋은 건축가, 좋은 시공사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좋은'의 정의는 우선 내가 그들을 믿어야 한다는 전제가 들어갔다.
마포에서 건축가를 찾기로 의지를 다진 날 처음으로 씨티알폼을 대면했고, 바로 결정했고, 이 결정은 이후도 너무 잘한 것이었다.
책들을 읽으면 적어도 세 군데 건축사 사무소에 견적을 의뢰하라고 되어 있지만 그냥 나와 맞다고 생각하면 믿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또 견적이라는 것이 막상 겪으니 맞지도 않았다. 책이나 건축 잡지에 소개된 집들과 자신의 취향이 맞는 집을 설계한 곳이 어딘지를 알아보고 그중에서 되도록이면 현장과 가까운 건축가를 찾을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물론 마음에 들어서 2-3군데 메일을 보내본 건축가들은 답장도 없었지만. 잡지에 기고하는 글들과 실제 건축가들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현실과 이상, 혹은 글과 건축의 거리일 수도 있었다.
더 이상 찾을 필요도 없이 건축가에 대한 정보도 모른 채, '이상' 이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설계사무소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집을 계약하고 씨티알폼 건축사무소를 만나기까지 딱 보름 걸렸다. 이 시간도 줄일 수 있다면 설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집 계약 후에 허둥지둥하면서 늦은 셈이다.
집을 사야겠다는 결정과 계약이 일사천리로 되어 서 나머지 일들이 너무 늦어진 것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미리 준비를 하고 대비를 했더라면 더 좋을 것이다.
이후 설계 미팅을 하며 느꼈지만 미리 건축가를 아는 행운이 있었다면 집을 구입하기 전에 집의 입지에 대한 분석까지 건축가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부터 바로 설계 미팅이 들어가면서 집을 짓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소함이 모여서 크고 거대한 조화를 이루게 되는지 경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