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미팅의 시작

- 건축 변호사 역할을 맡는 건축가

by 이지현


설계 미팅 첫날



설계사무소를 마음으로 결정한 후, 다음 날 당장 딸을 데리고 갔다. 책들을 읽어보면 설계 사무소는 적어도 세 군데 이상 견적을 넣어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나는 현장 가까이, 그리고 시인 '이상'의 공유 감정을 두고 마음속으로 결정했지만 딸이 어떻게 생각할지 또 모르는 일이었다.


한편 가장 걱정이 과연 건축가가 우리 의견을 얼마나 반영해줄까였다. 건축도 디자인이다 보니 건축가에게는 하나의 작품이 될 것이다.

건축주의 의사와 반해서 건축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하니 얼마의 조율이 들어가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더군다나 젊은 분이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이니 개성이 지나치게 강할 수도 있거나 자신만의 경계가 또 있을지 몰랐다.


그 걱정은 막상 설계 미팅을 해나가는 과정을 거치니 거의 기우였다. 건축가와의 조율 과정에서 우리가 중점을 둔 상가의 특색이 있어서 걸맞은 디자인도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와 얼추 맞았다.

딸은 딸대로 가게의 콘셉트와 맞아야 했고, 나는 또 나대로 헤밍웨이에 대한 동경으로 핑크색을 고수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옳다. 따라서 건축은 자신이 어떤 용도로 그 집을 사용하게 될지 잘 감안해서 건축가와 잘 조율해야 한다.


일조사선에 의한 4층 규모와 3층 규모, 건축사무소

건축가를 우연히 만나고, 다음날 설계 미팅은 바로 시작이 되었다. 집의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딱 보름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9월에 시공사를 만나기까지 도합 10회의 설계 미팅이 있었다. 이 미팅은 순전히 건축가와의 집 짓기에 관한 면담이다.

그 사이에 간략한 구조안전진단 검토, 실측 등이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설계사무소에서 다 나왔다.




건축가의 역할



설계 미팅을 하는 중에 시공사 선정이 있었다. 이때가 8회째 미팅이 있던 날이었다. 시공사를 만나기 전까지 매주 1회씩 설계 미팅을 한 셈이다. 그 외의 의논은 카톡이나 메일로 연락했다. 사실 설계사무소가 있는 마포 현장까지 왕복 시간이 3시간 정도여서 일하는 시간 때문에 미팅이 쉽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오려고 했다. 아무리 현대 문명의 이기가 좋다지만 직접 만나서 조율하는 것보다 효율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계를 할 동안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늘 생각했다.

결론은 건축가는 설계사를 넘어서 일반인이 결코 담당할 수 없는 건축 변호사의 역할까지 다 했다. 어떻게 일반인인 우리가 집 짓기에 관한 그처럼 명징하고 사려 깊은 조치와 선택들을 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 알던 건축가는 설계만 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골치 아픈 법적인 일까지 다 관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 집 지으려다가 10년 먼저 늙는다, 집을 세 채 짓고 저승에 가면 천당에 간다는 우스운 말도 있듯이, 집 짓기는 어렵다고 알고 있다. 바로 이 어려운 일을 건축가가 도맡아서 해준다는 것을 설계를 맡기고 집을 다 짓기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집과 관련해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는 집을 지은 건축가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현장 가까이서 건축가를 찾은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그리고 믿을 만한 건축가를 만나는 것은 집 짓기가 그렇게 어렵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매입한 집은 이층을 증축했었는데, 집을 설계하고 증축한 설계사무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찾지도 못했다고 매도자가 말했었다.


증축 전 주택, 건축사무소 기록


마음으로만 설계사무소를 선택하고 갔는데, 이미 설계사무소에서는 집의 규모 검토까지 다 마친 상황이어서 매우 당황했다. 아직 계약에 대한 논의도 서로 오가지 않았고, 설계비 책정과 대략의 시공비 등도 알지 못했는데, 알려준 집 주소의 규모 검토가 다 되어 있어서 일에 관한 꼼꼼하게 맡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른 설계사무소를 방문해보지 않아서 다른 건축사무소는 어떤 기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읽은 책들에서 말한 것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리모델링을 할 때의 상황을 대략 얘기만 건넸을 뿐인데 이미 주차대수 산정과 대지 면적에 대한 최대 연면적과 최대 건축면적 등이 이미 계산이 되어 설계 자료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물론 이후에 이 면적들은 설계 과정에서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일조 사선에 의한 증축이 3층까지 일지, 4층까지 면적이 나올지에 대한 고려도 좌우면으로 다 되어 있었다. 4층에 관해서는 이후 설계과정에서도 말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원하지 않는 사항이었다. 4층을 엘리베이터도 없이 일상생활에서 오르내려야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정도의 규모를 가진 대지면적도 아니었다.

우리는 설계사무소와 계약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첫날 미팅 때는 건축가에게 계약에 대한 확답을 주지 못했다. 첫 미팅 때 설계비와 대략의 시공비가 나와서 내가 생각했던 일천한 리모델링 지식에는 터무니없이 어긋나서 은행에 다시 연락을 해서 대출을 더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미팅은 설계사무소와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때로 여겨야겠지만 첫날부터 이미 우리가 감안하고 감당할 개략의 스케치가 나와서 바로 설계 미팅이라고 생각했다.




집 짓기는 어쩌면 삶을 짓는 일


스페인의 건축가인 가우디는 건축가 architect는 '자신이 스스로 규약을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 규약이란 지나친 개성이나 임의의 권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규약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지키도록 협의하여 정하여 놓은 규칙'이다.


따라서 우리가 건축가를 선택할 때도 설계 도면의 지나친 개성에 건축주가 휘둘릴 일도 없어야겠지만, 건축가의 의견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면 그에 맞추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집을 짓는 내내 생각했다.


그동안 읽은 책들을 보면 건축 도중에 건축가가 바뀌는 경우도 왕왕 보았다. 그럴 경우 얼마나 서로 많은 물질적 손해와 정신적 충격을 받을지를 집을 짓다 보니 새롭게 생각했다.

특히 <부부의 집짓기>를 읽고 난 뒤는 건축가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하게 생겨서 건축가를 만난다는 일조차 강박관념에 짓눌리기도 했다. 나도 어쩌면 그 건축가를 선택했을지 몰라서 더했다. 언젠가 분당을 다녀오는 길에 그 건축가가 짓고 있던 집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던 건축가여서 나도 언젠가 집을 지으면 꼭 맡기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서 실제로 겪는 일과 바라보는 일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을 지으면서 겪어보니 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집 짓기에서 기적이고 행운이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을 짓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가 없이 집 짓기를 하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내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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