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계약서 어떻게 작성할까

- 설계 계약서도 특약사항을 적을 수 있다

by 이지현


올바른 설계 계약서에 대해



어떤 일이든지 계약서를 잘 작성하면 '시작이 반'이 듯이 무사히 잘 진행된다.


집을 구매한 후 숨 가쁜 일정들을 거친 후, 20일 만에 설계 계약서를 작성했다. 설계가 어떻게 나올지 그야말로 기대를 하면서 계약서를 받았다. 건축주가 설계사무소로 계약서 초안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우리는 설계사무소에서 쓴 계약서를 받았다.


건축주와 건축가 간의 문제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많이 읽어서 표준설계 계약서로 계약하는 것이 서로 맞다. 거기까지는 또 열심히 읽어 알고 갔는데 설계사무소에서 이미 계약서를 작성해서 준 것을 받아 보니, '건축물의 설계 계약서'란 표제만 있어서 '표준'이란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계약을 하러 가기 전에 표준설계 계약서를 미리 검토했었다. 표준계약서는 총 22조항이 조목조목 들어있어서 되도록 분쟁을 피할 여지들이 많다. 대부분의 계약서들이 그렇듯이 양자 간에 특약조항도 덧붙일 수 있다. 오죽 분쟁이 많으면 국토해양부에서 그렇게 딱 표준계약서를 만들어놓았을까. 그런데 설계사무소에서 받아본 계약서는 9개의 조항만 있었다.

9개의 조항을 대강 훑어보니 분명히 건축주가 갑으로 되어있는데 오히려 을로 보였다. 자칫 주객이 전도되는 거 아닐까 하는 우려도 순간 있었지만, 중요한 조항이 들어있어서 그냥 계약을 했다.


중요했던 조항은 물론 '설계의 대가 산출 및 지불방법'이었다.

설계비는 깎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고, 처음부터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다른 건축사무소에 계획 설계를 의뢰해보지 않아서 설계비의 적정선도 모르고, 또한 설계비에 대해서는 대부분 함구해서 읽은 적이 없었다.

건축가가 말한 비용 정도는 감당할 수준이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엄청난 비용을 불렀다면 예산 초과여서 당연히 할 수 없었다. 설계비를 많이 부르거나 그렇다고 낮게 부른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너무 낮게 불렀다면 오히려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설계가 얼마나 엉망일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설계사무소 측도 현장이 아주 가까운 동네니 맡고 싶은 눈치도 역력하고, 우리도 현장 가까운 데서 젊은 건축가가 열심히 해줄 수만 있다면 생각해서 서로 적극적인 상황이었던 듯했다.


설계 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불시기다.

표준설계 계약서를 약식으로 만들어놓아 다소 찜찜했지만, 마지막 지불시기가 '사용승인서류 제출 시(준공서류 인도 후 7일 이내)'로 되어 있고, 비고란에 '준공 서류 포함'으로 되어 있어서 사용승인까지 책임감 있게 해 줄 것을 믿었다.


표준설계 계약서의 지불 시기는 원래 총 5회로 되어 있다. 우리의 지불방법은 3회로 나뉘어 있었다. 바로 마지막 지불시기가 사용승인까지로 되어 있어서 안심하고 계약을 했고, '디자인 감리 주 1회'로 약정되어 있어서 그대로 계약했다.


우리는 계약자와 입금자가 건축가가 속한 회사로 되어 있었다. 설계사무소가 건축가 단독이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에 대형 설계사무소 같은 경우는 건축가들이 여러 명이 있어서, 설계하는 건축가와 계약을 하거나 입금을 할 때는 소재의 불분명으로 차후에 분쟁의 소지도 있으므로 주의를 하는 것이 좋다.


정확하게 하려면 설계사무소의 사업자등록증의 대표자로 계약을 하는 것이 좋다. 건축사 면허증의 건축사 이름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는 대규모 설계사무소도 아니어서 그런 확인은 하지 않았고, 건축가와 계약을 했다. 지나고 보니 대형 설계사무소라면 건축가가 그 회사를 나올 때면 여러 가지 분쟁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사업자등록증의 대표와 계약을 하는 것이 맞다.


설계사무소와 계약을 하게 되면 설계비도 건축가가 아닌 설계사무소 명의 통장으로 입금해야 증빙자료가 된다. 설계비가 고액이 될 때는 자칫 증여 문제도 있으므로 많은 주의를 해야 한다. 우리는 건축가가 속한 (주)문화지형연구소 씨티알과 계약을 했고, 입금도 그곳으로 했다. 계약서에 처음부터 그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설계도면은 계획도면, 허가도면, 실시 도면 등을 맡는 것으로 되어 있고, 허가업무, 착공 관련 신청업무, 사용승인 신청까지 다 한다고 적혀 있었다. 건축주로서는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설계 계약서도 공동 등기 대상자들이 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날인해야 한다. 이 계약서가 구청에 허가 사항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없다면 서명하고 도장만 찍으면 된다. 우리도 한 아이가 유학 중이어서 추후 계약서가 구청에 들어가기 전에 도장만 가져가서 찍었다.


계약서는 일종의 형식적 절차일 수 있지만 계약서를 잘못 씀으로써 많은 분쟁이 야기될 수 있고, 자칫 건축주만이 아니라 건축가도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을 수 있어서 올바른 계약서를 이용하는 것이 서로 맞다.




특약사항도 적을 수 있는 설계 계약서



우리는 이미 집을 지었고, 다행히 좋은 건축가를 만나서 설계 계약서가 형식적인 절차 정도로 되었다. 설계사무소에서 계약서 이상으로 잘해주었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

그러나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 상황에서는 격식을 갖추는 것이 좋다. 나도 그런 면에서 분명하게 잘 못하는 성격이지만, 인정이나 친분에 끌려 얼렁뚱땅 넘어가면 결국 서로 피해를 입게 되니 반드시 표준설계 계약서라고 적힌 계약서를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집 짓기는 아는 사람에게 절대로 맡기지 말라는 말을 책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하도 많이 들어서 불신시대를 살고 있다는 비극이 실감 나지만, 주변에 경험자들이 또 있으니 아니라고도 말을 못 한다.

대출 때문에 다닌 은행들도 하나같이 대부분 제대로 집이 지어지는 것을 못 봤다고 고개를 저었고, 아는 사람에게 맡기면 아니까,라고 넘어가면 관계가 어긋나니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하니 계약서 한 장이 훨씬 더 믿을 만하다.


우리는 건축가가 '제비다방'도 거론하고, 내가 사랑하는 시인 '이상'을 좋아하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흐뭇함과, 대학교수(이건 꼭 믿을 바는 못되지만)라는 신분, 무엇보다 젊은 분이 순수하고 선량해 보여서 다 믿고 했고 앞으로도 이건 옳을 것 같다.




설계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일종의 계획 설계라고 할 수 있는 도면과, 공사 스케줄표, 건축물의 대략의 규모 검토 등에 대한 도면을 받았다.

이때는 4층까지 도면이 설계되었는데, 이후 3층으로 변경이 된다. 또한 1,3층이 근생으로 설계되었는데 근생 공간과 주거 공간은 주거 출입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구청의 확인까지 다 거친 상태였다. 감리 계약은 또한 추후에 이루어지므로 이때는 감리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않았다.


설계사무소와 건축가를 정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표준설계 계약서상에는 계약이행보증증권을 주고받게 되어 있으니 특약조항에 넣고 설계 계약금을 주면서 계약이행보증증권을 받아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는 그때 믿기로 하고 넘어갔다. 수수료는 계약금액의 10%라고 하니 비용을 들이고 믿음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건축주가 최종 승인한 설계도면을 접수하기로 특약사항에 기재해도 된다. 우리는 그럴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여러 차례의 설계 미팅을 진행하면서 설계 변경까지 성실하게 다 해준 건축가를 만나서 정말 행운이었다. 그런 특약 사항을 적는 것도 몰랐지만, 애초에 계약을 할 때 설계사무소의 팀장님이 사소한 설계 변경은 그냥다 해줍니다란 말에 순수하게 믿기로 했고 그 말대로 열심히 잘해주었다. 설계 변경이란 결국 시공과정을 겪으면서 예상치 못한 현장 상황이 발생하므로 그때마다 서로 협의를 잘 거쳐야 했다.


그밖에도 건축주나 건축가가 요구하는 사항을 잘 협의하여 특약조항에 넣어도 무방할 듯하다. 현장방문, 설계변경에 대한 문제, 인테리어 설계, 각 단계마다의 등록비용 등에 대한 요구사항들은 나중에 서로 이견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특약 사항으로 두어도 좋을 듯하다. 우리는 집을 구매할 당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이런 것들을 알지도 못했지만 집 짓기를 하면서 일어났던 염려되는 일을 적어보았다.


등록면허세를 낼 때 도대체 어떻게 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진땀이 난 경우가 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는데, 이런 것까지 건축주가 해야 하면 건축과에 전화해보랴, 검색을 하면 알 수 있나 싶어서 사방팔방 경황이 없었다. 이런 문제들도 설계 계약 당시 알았다면 설계사무소가 내든지 아니면 그때 가서 알아서 해주고 돈을 주든지 하는 것도 특약 사항에 적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진짜 이 문제로, 바빠 죽겠는데 할 줄 몰라서 끙끙대었다). 가외의 비용 문제가 생기면 설계사무소서도 껄끄러워서 건축주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는데, 터놓고 의논해야 다음 진행이 순조로워지니 서로 허심탄회한 것이 좋다.


우리는 계약서에 특약 사항들을 적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집짓기 전이라서 많이 무지했고, 또한 어디서도 계약서의 특약 사항에 대해 읽은 적이 없어서 몰랐다. 그냥 좋은 설계사무소를 만나서 무사히 다 넘어갔다.


특히 우리도 겪었지만, 허가 접수 후 설계 변경의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미리 평면도와 입면도를 허가 주무관에게 보이고 협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니 그때 설계변경의 문제도 특약 사항에 적으면 좋다. 우리는 설계사무소에서 다시 설계를 했고, 추가 비용은 없었다. 다만 한 달이란 시일이 지체되어서 그 사이에 재정적 손실도 많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마구 엉키는 마음고생을 했다.


설계 계약서를 작성하고 설계를 진행하는 동안 공간의 구성이란 결국 삶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안정과 행복을 위해 설계되는 공간이 얼마나 삶을 윤택하고 풍부하고 편안하게 만드는지를 알았다. 따라서 삶에 대해서 많은 사색을 거친 건축가를 만나고, 건축주가 생각하는 편리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면서 귀 기울여주는 건축가를 만난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은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보다 편안함. 미적 추구보다 효율성, 순수함보다는 안전함 등이 차라리 우선이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건축가의 예술성이 발현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한 후 도면을 보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일은 언제나 기대와 희망과 꿈으로 반짝였다. 말 그대로 긴장과 이완의 연결지점에서 망설이고 서성였다. 마치 한 편의 멋진 시를 읽는 마음으로 지켜본 행복한 순간이었다. 설계 미팅을 갈 때마다 딸과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으로, 마음대로 희망을 채색하면서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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