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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Nov 02. 2020

성장 로드 속 마법의 음식

- <오즈의 마법사>, L. 프랭클린 바움

  

음식도 상징이 되는 마법의 나라 



오즈의 마법사에는 똑똑하고 침착한 도로시와 어리바리 마법사가 나옵니다. 도로시를 왜 침착하다고 하냐고요? 회오리바람에 날아가는 집안에 있어도 ‘걱정을 접고 가만히 기다리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기로’ 마음먹고 있으니 침착함이 그 정도가 넘칠 정도입니다.

 

거기에 더욱더 못 말리는 건 ‘집이 흔들리고 바람 소리가 윙윙거리는 데도 눈을 감자마자 잠에 곯아 떨어’ 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도로시의 태연자약하고 대담한 성격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고 마녀들을 물리치는 힘이 됩니다.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기 전에 도로시의 집은 방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방에는 음식을 해 먹는 화덕과 접시를 넣어두는 찬장, 식탁 등이 있어서, 도로시는 노란 벽돌 길을 따라 마법사를 찾아가는 길에 빵을 먹으면서 갈 수 있었습니다.


도로시가 처음 도착한 나라는 바로 먼치킨입니다. 치킨이라고 하니까 간식으로 먹는 튀긴 치킨이 떠오르겠지만, 그 치킨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이후로 먼치킨은 난쟁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난쟁이 나라인 먼치킨은 지금 일반적으로 작은 도넛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던킨 도넛의 작은 도넛, 먼치킨처럼.


도로시가 살던 곳은 잿빛의 땅으로 물이 귀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살던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내린 곳은 ‘초록빛 잔디밭이 온 사방을 아름답게 수놓고’, ‘아름드리 큰 나무들엔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곳입니다. 먼치킨에서 가장 큰 집은 ‘맛있는 과일과 견과류, 파이와 케이크 등 푸짐한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어서 배고픈 도로시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 농사 솜씨가 좋은 농부들이 살아서 ‘곡식이며 채소를 가득 심어 놓은 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런 곳은 당연히 허수아비가 필요합니다. 허수아비는 넓은 옥수수 밭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로시가 허수아비에게 빵을 건네자 배고픈 것을 모른다고 합니다. 허수아비는 뇌가 없어서 텅 빈 존재로 그려지고 있지만 먼치킨을 지키는 존재로 나오니까 사실은 풍요를 나타내는 역설적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먹을 게 있지만 먹지 못하는 존재가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허수아비를 통해 잘 드러냅니다.


이 책 속의 많은 상징에서, 도로시의 은 구두는 은의 자유 주조 즉 정치인들이 주장한 은화의 자유발행의 허용을 나타낸다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노란 벽돌 길은 선거운동의 행로를, 허수아비는 농부들을 의인화, 양철 나무꾼은 노동자를 상징하며, 심장이 없는 것은 노동자 계급을 비인간화시켰음을 상징하거나, 겁쟁이 사자는 인민당을 나타낸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양철 나무꾼이나 허수아비는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지만, 도로시는 양철도 아니고 지푸라기도 아니니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허수아비가, '사람으로 산다는 건 아주 번거로운 일이며, 잠도 자고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해야 하니,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뇌가 있으니 그 정도 불편은 견딜 만하겠다'라고 말하지만, 도로시가 오직  걱정하는 것은 토토와 함께 먹을 빵이 바구니 속에 한 끼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먹어야 생각도 하지요.


만들고 싶은 정원을 조사한 연구에서, 오즈의 마법사 정원이 1위, 헨젤과 그레텔 정원 2위, 다음이 소공녀, 인어공주 정원이었습니다. 도로시가 캔자스를 떠나 도착한 곳들은 풍요롭고 맛있는 열매들이 풍성하게 매달릴 정도로 나무와 풀들이 무성한 곳입니다.


에메랄드 시로 들어가는 노란 벽돌 길은 ‘푸른 들판’과 ‘예쁜 꽃’, ‘맛있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길입니다. 이러니 '오즈의 마법사' 정원이 제일 만들고 싶은 아름다운 정원인건 맞습니다.

그러나 도로시는 에메랄드 시를 향해 가는 동안 호두나 과일만 먹, 이제는 ‘과일 말고 다른 걸’ 먹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맛있는 죽과 으깬 달걀 요리와 먹음직한 흰 빵 한 접시’.


도로시가 찾은 에메랄드 시는 ‘초록 사탕과 초록 팝콘, 초록 레모네이드’를 팝니다. 사탕이야 워낙 알록달록한 눈깔사탕까지 있으니 이상할 거야 없지만, 초록색 레모네이드와 초록 팝콘의 맛은 어떨까요. 그들이 파는 사탕이며 팝콘, 신발, 모자 심지어 그들이 사용하는 돈까지 모두 초록색입니다. 따라서 모든 색이 초록인 것은 새롭고 신선한 곳을 나타냅니다. 폐한 캔자스에서 살았던 도로시의 이상적 공간입니다.


  



성장의 음식들



도로시와 친구들이 만난 오즈의 마법사는 사실은 가짜 마법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마법사의 명령 때문에 서쪽 마녀를 도로시가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서쪽 마녀는 어떻게 물리쳤을까요. 바로 물입니다. 윙키들의 나라가 정신과 물질이 조화를 이룬 곳으로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생명력의 근원인 물입니다. 도로시는 자신이 아끼는 은빛 구두를 서쪽 마녀가 빼앗아 가자 화가 나서 마녀에게 물을 부어 버립니다. 그러자 마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집니다.


물질적으로 메말라 버린 캔자스에 물이 필요한 것과 같이 정신적으로 황폐한 윙키의 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물이 쓰입니다. 물질과 정신의 황폐라는 서로 정반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통된 열쇠는 결국 물입니다. 도로시가 살던 캔자스 지방은 물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온통 잿빛의 땅이었습니다. 물은 생명이며 죽었던 것들도 살리는 장치입니다.


서쪽 마녀를 없앤 도로시는 먹을 것을 챙기러 마녀의 찬장을 뒤지다가 먹을 것 대신에 마법의 황금 모자를 얻습니다. 나중에 이 마법의 황금 모자 때문에 모든 일이 척척 다 풀리게 됩니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서는 꼭 먹을 게 필요합니다. 캔자스를 떠난 도로시는 노란색의 윙키 나라와 파란색의 먼치킨 나라를 거치면서 풍요로운 땅들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빨간색인 쿼들링 나라에 도착해서 도로시는 근사한 대접을 받습니다. 도로시가 먹을 것을 부탁하자 농부의 아내가 훌륭한 저녁 식사를 차려 주었습니다. 케이크가 세 종류에 쿠키가 네 종류, 토토가 먹을 우유도 한 그릇 있었습니다.


    


도로시가 떠나온 캔자스가 메마른 곳이라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길의 나라들은 풍요로운 곳입니다. 맛있는 과일이 산더미에 마녀도 없애는 물이 풍부한 나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로시는 맛나고 풍부한 음식들이 있는 곳을 마다하고 고향을 찾아가기 위해 애씁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그게 다가 아닌 모양입니다.  


집을 떠나 온 도로시는 성숙해지고 의젓해집니다. 허수아비가 먼치킨처럼 아름다운 곳을 놔두고 메마르고 칙칙한 캔자스로 왜 돌아가고 싶은지 묻자 ‘고향에서 살고 싶은 게 사람’이라고 의젓하게 말을 할 정도로.

도로시가 캔자스를 떠나 오즈로 갔다가 다시 캔자스로 회귀하는 과정은 도로시에게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잠재 능력을 개발성장 로드입니다.


다시 돌아온 캔자스는 집이 새로 지어졌다는 점, 갓난아기나 막 태어난 동물들이 생명을 이어는 수단인 우유를 짤 수 있는 점, 생명의 근원인 물이 더 이상 부족하지 않고 식물을 가꿀 정도로 풍부하다는 점에서 도로시를 통한 캔자스의 부활은 어쩌면 아메리카의 풍요를 드러내는 여로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로시처럼 어떤 고난이 닥쳐도 의젓하고 침착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품었던 희망도 결국 우리의 손을 놓지 않고 따라올 것입니다. 오즈는 서류 정리함 O.Z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풍요롭고 마법이 있는 오즈의 나라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은 멋집니다. 마치 우리가 삶의 정리함을 차곡차곡 펼쳐놓게 되면 나타날 마법의 나라처럼.   


아주 오래 전의 동화지만, 현재의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인 물의 소중함을 알리는 환경동화 보여 의미심장합니다.

   

<오즈의 마법사>, L. 프랭클린 바움, 김양미 옮김, 김민지 일러스트, 인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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