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식전주, 햇볕에 말린 홍합과 신선한 들기름에 볶은 한우를 넣어 끓인 미역국, 내일의 달걀찜, 아침 허브와 레몬을 곁들인 연어구이, 봄날의 더덕구이, 미니 꽃밥, 완두콩과 밤을 넣은 돌솥밥, 달콤한 디저트.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의 메뉴.
실연자들을 위한 조찬 메뉴는 위로 음식(comfort food)이어야 한다.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1977년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처음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전에는 ‘편안하거나 위로나 위안이 되는 음식. 어릴 적 추억이나 집에서 만든 음식 (보통 매우 달거나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있는)’이다.
살아가는 데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특히 사랑을 잃은 순간에는 그 텅 빈 공허를 채우는데 음식이 가장 유효 적절하지 않을까.
미역국은 국 종류 중에서 위로 음식으로 가장 알맞다. 갑상선 호르몬 이상은 일명 ‘전쟁병’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다.미역 중의 요오드는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필수 성분으로 호르몬 이상을 예방한다. 미역국을 끓일 때 넣는 홍합은 봄에 더 맛이 좋아서 시원함 뿐만 아니라 국물을 뽀얗게 한다. 한 가지, 들기름은 열에 약하니 볶을 때 직접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달걀찜도 위로 음식으로 좋다.달걀 단백질은 호르몬의 주원료로 호르몬 조절을 위해서 필요하며 스트레스완화에 도움이 된다.
허브도 심신이 안정되고 몸에 기운이 없을 때는 활력을 준다. 레몬은 비타민을 보충해서 활기를 느끼게 한다. 슈퍼 푸드란 용어를 창시한 스티븐 프랫 박사가인정한 연어는 마돈나와 마크 제이콥스도 챙겨 먹는 생선이다. 피부 미용에 좋아서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 색소 침착과 다크 서클을 개선한다니, 레몬과 허브를 곁들인 연어구이도 밤잠을 이루지 못할실연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는데 유효하다.
봄을 느끼게 하는 더덕은 봄이라는 출발과 재생의 이미지를 환기시킬 수 있어서 좋다. 더덕은 뿌리 전체에 혹이 많아 두꺼비 등처럼 더덕더덕하다고 해서 더덕이라고 부르는데, 더덕 중의 사포닌은 인삼에 버금가는 효능으로 지치고 힘든 몸에 활력을 준다. 실연한 사람들에게 더덕구이도 위로 음식으로 제격이다.
기업 강연가인 이지훈은 조찬 메뉴 중의 꽃밥을 보고 진주 사람들이 부르는 비빔밥이라고 한다. 진주비빔밥은 기름을 걷어낸 쇠머리 삶은 곰국을 부어 지은 밥에 오색 나물을 얹으면, 여기에 둥근 놋그릇과 흰 빛의 밥 테가 마치 일곱 색의 아름다운 꽃 모양을 드러낸다고 해서 꽃밥 또는칠보화반이라 불렸다.
실제로 진주에 가서 먹어보니 진주비빔밥이 화려하면서도 입맛에 착 엉길 정도로 구수했었다. 실연자들이 이렇게 아름답고 화사한 밥을 먹어야 자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여길 것으로 보여 적절한 메뉴로 여겨진다.
완두콩을 넣은 밥을 지으면 단백질의 영양 효과가 상승한다. 특히 비타민 C가 많은 밤을 더하면 실연에 지쳐 혹시 밤을 새웠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의 메뉴는, 실연자들의 지치고 슬픈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들로 알맞다. 또 유기농이니 몸이 산뜻하게 느껴질 것이므로 실연의 아픔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연자들을 위한 모임
결혼정보회사에 다니는 정미도는 의도적으로 실연자들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한다. 테이블과 의자의 배치부터 바꾸고, 감정을 고양시킬 비발디의 음악을 틀어 놓는다. 그리고 물기가 많은 따뜻한 음식을 순서대로 내는 것으로 메뉴를 짰다. 혼자 앉아서 음식을 먹도록 한 테이블 배치는, 혼자 얼마나 외로운지 뼈저리게 느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장치들은 실연과 같은 감정의 폭풍이 스쳐 지난 후, 지독한 외로움을 겪으면 거기서 벗어나야겠다고 깨달아 새로운 사랑을 찾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위로란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일어설 힘을 키울 때 더 강해지지 않을까. 나무들도 부러진 곳은 더 강하게 붙는다.
음식이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편안해졌고 스트레스가 해소된 것이 맞다고 한다. 연구결과에서는 또 특이한 점이 발표되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먹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먹을 때 위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요리 거나 훌륭한 음식을 위로 음식으로 꼽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책의 위로 음식은 실연자들을 다 모아놓고 음식을 함께 먹는 설정은 실연을 위로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메뉴들은충분히 위로 음식이다. 특히 당 함류가 높은 달콤한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하면 뇌 속을 기분 좋게 만드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많아져서 충분히 위로의 효과가 있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음식으로 서로를 알게 된다.
윤사강은 한정수 기장을 만날 때 로열 밀크티를 타 가지고 조종석에 들어가다가 기장의 중요 부분에 뜨거운 밀크티를 쏟는 사고를 내거나, 기장의 기내식으로 라면에 냉동 야채가 아닌 규정을 어긴 신선한 채소인 파프리카, 브로콜리, 잘게 자른 꽈리고추가 들어있는 야채라면을 끓여서 기장이 꽈리고추 알레르기를 일으킨다.즉음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인식시키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조금 어긋나고 있지만.
이지훈과 윤사강이 만날 때는 수프 자동판매기의 버섯 수프가 등장한다.
이 책에서 사람들이 만날 때 음식이 관련되기도 하지만 헤어질 때도 관련 있다.
‘현정은 오이를 먹지 못했고 지훈은 생선을 먹지 못했다. 생선회를 가장 좋아했던 현정은 우유를 마시지 못했지만 지훈은 눈에 보이는 족족 우유를 마셔 하루 권장량 이상의 칼슘을 우유로 섭취했다.’ 등, 같은 음식을 먹지 못할 때 더 이상 두 사람은 만날 수 없게 된다.
이 책에서 실연의 정의.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을 일시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그런데 이 같은 실연의 어둡고 쓸쓸한 면보다는,
‘실연은 살면서 쓰게 되는 대표적인 오답인 거야, 오답이 대수야? 오답은 그냥 고치면 되는 거야’
라는 정미도의 말이 더 마음에 든다.
실연의 이 두 단면을, 단 한 번이라도 실연당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극작가 몰리에르는 ‘실연당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가 된다. 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하라.’고 매우 직설적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해서 자신의 상처를 잊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스스로 일어설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주면서 살아간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의 메뉴’에 있는 음식들을 해 먹어 보면 어떨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레드 버틀러가 떠나버리자,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라고 말하듯 스스로 강해질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여주인공격인 윤사강의 이름이 된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이, 슬픔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게 이제 안녕을 고하는 것이라면 정말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