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유의 음식
이 책의 맛들은 노마디즘의 맛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음식은 맛있었다는 말들이 때로는 멋지고, 때로는 쓸쓸하며, 때로는 가슴 먹먹하다.
노마디즘은 유목민적인 삶과 사유다. 끊임없이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으로, 작가는 음식 맛으로 끝없이 사유하고 우리 땅을 끝없이 새롭게 해석한다.
이 책은 이북 요리가 많이 나온다. 작가가 만주서 태어나 외가가 월남했으니 이북 음식에 길들여져 있을 것이다. 장떡을 만들 때 이북식은 된장을 쓴다는 게 특이하다. 장떡은 나도 김치 속만 남았을 때 냉장고 속 야채들, 풋고추, 부추, 버섯, 깻잎들을 넣어서 고추장 넣고 지져먹는다. 그런데 이북 장떡은 된장과 고추장을 섞거나 장떡용으로 아예 햇된장 담글 때 소금을 치지 않았다가 찹쌀가루, 다진 쇠고기, 파,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등을 넣어 지져 훨씬 맵싸하다니 한번 해 먹어보고 싶다. 장떡용 된장을 담글 정도의 그런 정성이라도 배우고 싶다.
작가의 어머니는 암으로 임종하기 전에 ‘노티’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작가는 노티를 1989년에 방북했을 때 비로소 맛본다. 방북 당시 이북의 사촌들이 싸준 것을 비행기 속에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보자기를 끌러 먹는다. 비행기 안에서 다후다 보자기를 끌러 촌 음식을 먹고 있을 작가를 상상해 본다. 1984년 북한에서 온 수해물자를 본 적이 있는데, 천이라 보낸 게 옥양목과 나일론 다후다였다. 그 다후다를 어렸을 때 보고 처음 봐서 신기했다. 실 하나만 쓱 걸려도 올이 나가버리는 것이라서 이제 보자기로도 잘 쓰지 않는데 북한 보자기라니 문득 나일론다후다가 떠올랐다.
작가의 노티 만들기를 보면 시각과 후각, 미각이 온통 동원되어 못 견디게 먹고 싶다. 작가에게 이북 음식은 스스로 말하듯 고향의 맛이고,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먹는 맛이다. 이 책에서 추억과 관련된 음식이 나올 때는 맛과 향이 더 생생하다. 음식이란 매우 개인적인 세계로, 자신이 기억하는 음식에 대해 말할 때는 더욱 구체적이고 감각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음식은 대부분 그 개인만의 음식을 넘어 매우 친근한 맛으로, 읽는 동안 드디어는 아, 먹고 싶다까지 생각한다.
작가가 김일성과 함께 먹은 음식들도 나오는데, 들 딸기로 만드는 들쭉술, 언 감자를 녹말을 내어 국수를 뽑아 찬 콩물에 말아먹는 감자국수, 요즘 식으로 말하면 나물이나 전을 얹은 국밥 같은 온반 이야기 등도 나온다.
기아에 굶주린다는 이북사람들이 무엇을 먹고살던지 알고 싶었지만 그 부분은 없어 아쉬웠다.
북에서 먹은 호박 짠지 이야기는 유일하게 이북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작가가 북에서 초대소의 연회 음식을 물려하자 주방장이 그의 노모가 계신 고향까지 가서 가져온 음식으로 만든 것이 호박 짠지 지지개로, 이 맛을 못 잊다가 10년 후에 작가는 충청도에서 호박김치를 우연히 먹었다가, 제주도의 갈치찌개가 바로 이 호박김치찌개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음식이야말로 남북을 통합할 수 있는 희망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요리할 때는 국적불명의 음식을 할 때가 많아, 우리 것의 재료에 서양소스를 애용한다. 만일 남북이 한식의 세계화에 동참한다면 두 음식을 조화시켜 음식을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북에서 먹은 잊지 못할 음식으로는 부드러운 목둘레 살을 얇게 저며서, 해파리냉채 무치듯 겨자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 개장국, 장작불로 달군 반석 위에 참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뿌려, 백두산 송이버섯을 얇게 저며 함께 구운 산천어 구이, 갓 잡은 대합 구이다.
그러나 잊지 못할 음식에 대한 미련은 맛 때문이 아닐 것이다. 지척에 두고도 다신 가지 못할, 그곳에서 다시 그 음식들을 먹어볼 날이 언제일지도 모를 고향에 대한 막막하고 아득한 미련 같은 것이 더 보태졌을 것이다.
팔도 유랑의 음식
허기가 질 때는 비린 생선이 오히려 더 발길을 잡아끈다. 무교동쯤이던가. 연탄불에 석쇠를 올리고 꽁치나 청어를 구워서 백반과 함께 팔던 식당들이 쭉 있었다. 자취생이라 청어 한 마리 사면 청어 알까지 먹는 호화로운 식탁이었다. 그때는 청어도 전부 알이 들어있었다. 요즘처럼 알배기 청어 구경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이상한 때도 없다. 그 길을 지날 때면 거의 환장할 정도로 먹고 싶던 그 비웃 굽던 구수함을 잊지 못하지만, 작가도 생선 반찬을 오래 기억한다.
작가가 어릴 적 잊지 못할 해산물 요리는 꽃게장으로, 쇠고기 다진 것과 사이다를 부어서 짜지 않고 깊은 맛을 내는 것이 특이하다. 학교 다니던 시절의 도시락 찬으로 장아찌만 한 반찬이 없다고 믿거나, 고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가서 방랑할 동안 먹은 옹심이 수제비나 곰치국에 대한 향수는 청년기의 방랑에 작가만의 맛을 더한 것이다.
작가는 마산 아구찜을 최고로 친다. 서울의 물컹한 아구를 쓰는 찜이 맛도 별로지만 양만 부풀려서 파는 것 같아 나도 영 찜찜한데, 마산 아구찜은 원래 말린 아구를 쓴다. 아구가 많이 들어가게 되어 비용이 높아지니 생물을 쓰는 것일지, 아니면 아구를 말리는 수고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약삭빠른 맛일지 알 수 없다. 마산 아구찜은 말린 아구에서 나는 군내를 없애기 위해 된장을 약간 넣고 아구를 먼저 푹 끓인 후, 그 물에 꼬리와 대가리를 딴 살이 통통한 콩나물을 넣어 찜을 만든다. 아구찜에 된장을 넣는 것은 원조 아구찜 집인 ‘오동동 초가 할매집’ 의 비법이었는데, 원조집에서 물어보고 알게 되었다..
작가는 젊은 시절 방황하거나 답답하면 전라도 지방을 휙 다녀온다고 했는데, 전라도 음식은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맛깔스럽다고 한다. 인정한다. 전라도 쪽으로 가서 음식을 먹으면 전라도도 음식 맛이 조금씩 다른데, 지리산과 섬진강 쪽의 음식은 경상도와 접경지역이어서 그런지 맛이 불분명했다. 아마 내가 경상도서 살았던 바람에 세밀하게 느꼈는지 모른다.
언젠가 여름 답사 여행 시에 광주를 지날 때 가이드가 콩나물국밥과 전주비빔밥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우리는 비빔밥을 택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콩나물국밥을 택하지 않은 게 몹시 후회가 되었다. 콩나물국밥은 멸치 맛국물에 콩나물을 넣어 새우젓을 따로 주어 간을 하고, 내오기 직전에 계란 흰자위만 풀어 넣는다고 되어 있는데, 읽기만 해도 그 맛이 연상될 정도로 개운한 느낌이다. 전주비빔밥은 마치 팔도 비빔밥처럼 요즘은 안 하는 곳이 없다. 콩나물국밥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으니 아쉽다. 단순한 음식이 맛 내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전라도 음식 중에서는 해남 한정식을 아주 맛깔나게 먹은 기억이 언제나 마음 저 밑바닥에 화석처럼 남아있다. 해남 한정식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아니, 반찬 접시를 놓을 자리가 없어서 겹겹이 쌓아놓을 정도였는데, 도대체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 가짓수가 많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작가도 해남 한정식에 대해 감탄을 하고 있으니 다시 한번 해남으로 가면 나는 아마 한정식을 먹으러 가는 길일 것이다. 전라도의 연포탕과 홍탁 삼합 등 작가의 음식 섭렵이 부러울 정도다.
작가는 남쪽의 끝인 전라도를 지나서 제주도의 음식까지 그의 맛있는 세상에 넣는다. 결국 작가의 맛있는 세상은 우리 땅, 전부인 셈으로, 땅이 좁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아마 이렇게 우리 땅 곳곳을 다녀보면 땅기운만큼 음식 맛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충분히 활용해서 그 맛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살고 있는 우리 땅의 사람들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까지 느끼게 한다.
작가의 흘러가버린 사랑과 관련된 음식은 지나간 사랑처럼 소박하다. 모시조개 넣고 된장 고추장에 끓인 냉이 토장국, 고들빼기김치, 보리새우와 바지락조개를 넣고 끓인 미역 냉국에 말아준 국수. 어떤 음식보다도 가슴의 밑바닥에 갈아 앉아서 쓸쓸함을 더할 음식들이다. 때론 우리는 음식의 맛보다는 음식이 놓였던 주변의 배경 때문에 더 많이 가슴에 담는다.
젊은 날의 쏘가리탕에 대한 기억.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은 맛도 맛이지만 낯설면서도 새로운 느낌으로 설레면서 먹던 기억이 난다. 하얀 찔레꽃이 푸른 호수 위로 떨어지던 정경. 그 후 20여 년이 흘러 다시 먹어본 쏘가리탕은 다만 얼큰할 뿐 밋밋했다.
작가의 소설이 낭만성을 띠는 것도 이런 음식의 정취가 배어들어서 일까. 유랑하는 삶의 자유로움 속에서 따뜻하고 소박한 음식 한 그릇을 먹는 건강한 민중들.
음식도 새로운 삶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노마디즘의 세계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일까. 저 가슴 밑바닥부터 유목민적 삶을 살고 싶은 그런 노마디즘의 세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가는 곳마다 나보다 한 발 먼저 다녀간 시인이 있음을 발견한다.’고 했다.
우리 국토를 다니면서 음식을 먹고 사색하고 그리움을 키울 때, 실은 우리 앞서 그런 음식을 만든 음식의 시인들이 이 땅에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나는 작가의 『삼포 가는 길』에 나오던 그 국밥집을 계속 떠올렸을까. 백화와 영달과 정 씨와 그 국밥집. 찾아가서 뜨끈하게 한 그릇 먹어나 봤으면 하는 쓸쓸하고 아린, 그러나 가슴 밑바닥까지 뜨끈하게 데우는 그 국밥 한 그릇.
이제부터 단순히 음식 맛만을 담지 않겠다. 그 맛과 관련된 기억에 묻어있는 멋이나 혹은 쓸쓸함, 아련함, 그런 추억들과 조우할 것이다.
황석영<황석영의 맛있는 세상>,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