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서양식의 화려한 메뉴판
-『기상도』, 김기림
1930년 대의 일기예보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 <바다와 나비>에서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고 썼던 편석촌 김기림은, 시 속의 ‘공주처럼’ 지치거나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김기림의 시집『기상도』를 보면 변해가는 시대에 그가 얼마나 열렬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기상도』는 1936년 7월 ‘창문사’에서 초판이 출간되어 1948년 9월 ‘산호장’에서 5백 부 한정판으로 재판이 나왔다. 살펴본 『기상도』는 ‘기민사’에서 500부 한정판 비매품으로 1986년에 펴낸 시집이다. 현대에 맞게 띄어쓰기를 한 외는 초판에 맞춘 시집이다.
1988년에 납북 작가 및 월북 작가의 해금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기민사의 일련의 시집들과 소설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출판되었다. 그래서 책속에는 아주 어려웠다는 말이 직접 언급된다. 1988년에 정지용과 김기림의 시들이 해금에 우선되었고, 뒤이어 월북 작가들의 작품들이 연달아 해금이 이루어지게 된다.
기민사 500부 한정판 김기림 시집, [기상도]
시집의 말미에는 30년대 모더니즘의 이론을 선두 지휘하고 도입한 최재서의 ‘『기상도』에 대한 소 고찰’ 이 실려 있다. ‘현대시의 생리와 성격’이란 소제목이 붙은 것으로 미루어 최재서가 시집『기상도』로 당시의 모더니즘 시 이론 도입의 실험적 근거로 삼으려고 했던 의도가 다분하다. 『기상도』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현대시의 정의에 대해 노골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집『기상도』는 1930년대를 휩쓸었던 모더니즘의 물결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기상도』는 시집 제목처럼 당시의 사회적, 국제적 기상을 엿볼 수 있고, 시적 기류도 드려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당시 서구식 메뉴판만 살짝 엿보겠다. 세계의 전 기상에 시인과 함께 인상을 썼다 폈다 하진 않겠다. 시집『기상도』가 당시 사회적, 국제적 기상에 대한 시인의 안목이라면 식당의 메뉴판도 당시 유행하던 메뉴들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이 시집을 처음 읽으면 매우 산만하게 느껴진다. ‘아라비아, 사라센, 쥬네브, 적도 가까이, 아프리카, 이태리, 파리, 동양’ 등의 전 세계를 종횡무진 횡단하고, 시선을 함부로 바꾸어 통일성을 상실한 듯이 보인다.
김기림이 『기상도』를 쓰려고 본 당시 신문 기사의 국제 기류는 21세기인 지금 못지않게 복잡다단했던 것 같다. 아니 그 이상이다. 태풍이 불어 살벌하고 을씨년스러우며, 힘이 없는 나라나 사람은 거대한 바람의 힘에 포로가 되어 있다.
다행히도 이 시집의 흐름을 통일시켜 주는 것은 태풍이다. 태풍이 불기 전과 태풍이 부는 동안, 그리고 태풍이 사라진 세 부분으로 구분해서 7가지의 상황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 태풍은 제국주의의 바람을 의미하며, 김기림이 이 시집을 내고 몇 년 후 발표한 <바다와 나비>에서 ‘나비’ 혹은 ‘공주’라고 할 수밖에 없던 지식인들은 이 태풍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 태풍이 한 가닥의 훈풍으로 바뀌길 기다리는 몹시 초조한 시간이었겠지만 그래도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모더니즘 시들은 회화적인 성격이 강한 탓에 주로 시각적이며, 도시 문명을 동경하여 가까이 가지만 막상 가보면 실망하면서 고독하다. 그래서 문명 비판적이다. 1920년대의 감상성을 배격하며, 1930년대의 한 흐름이던 시의 음악성도 배제하려던 몸짓을 했으므로, 『기상도』가 모더니즘의 산만한 실험장이었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모험적 용기와 그 의지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이후 <바다와 나비>에서 좌절할지라도 ‘청무우 밭’ 으로 무모하지만 돌진해본 ‘나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기도 하다.
이 시집에서 부는 태풍은 거리의 식당 안에도 영향을 미친다. 태풍으로 테이블에 놓인 ‘슬프게 떨리는 유리컵’ 이 ‘쇳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쇳소리를 내며 곧 깨어질 것 같은 유리컵은 실제로는 제국주의의 바람 앞에서 흔들리는 ‘대중화민국의 번영’을 비유하려 했지만, 거대한 제국주의의 태풍 앞에서 더 위태로웠던 것은 실제로 힘이 없던 우리였다.
태풍처럼 불어 닥친 것은 제국주의의 바람만이 아니라 서구 문명도 함께여서,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처럼 혹은 그의 시 <태양의 제국>처럼 근대 서구 문명에 대한 향수에 당시 사람들은 쉽게 물들었다.
하이칼라한 샌드윗치의 꿈
탐욕한 <삐-프스테잌>의 꿈
건방진 <햄살라드>의 꿈
비겁한 강낭죽의 꿈
- ‘자최’ 중에서
샌드위치, 비프스테이크, 햄샐러드 등은 서구 문명이 들여온 서양 음식들로, 이런 음식들에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근대문명을 동경하던 사람들은 경도되었다.
1917년에 나온 최초의 한국 근대소설인 이광수의 『무정』에서, 한국 여성의 표본으로 내세웠던 영채에게 처음으로 샌드위치를 먹이며 계몽의 힘을 부여하고 서구 문명의 맛을 보인 이후, 이 음식들은 1930년대까지도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선망의 음식이었다. (이광수의 [무정]에 등장하는 샌드위치론은 졸저 [맛있는 문학 ]에 기술)
하이칼라들의 샌드위치를 앞세워 등장하는 화려한 서양식 메뉴판은 『기상도』에 불어 닥친 태풍이 제국주의의 바람만이 아니라, 근대 서구 문명의 화려한 식탁 메뉴판도 함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기림은 서구 음식에 대한 꿈은 ‘건방진’ 것이며 ‘탐욕한’ 것이라고 한다. 강낭죽을 찾는 생활이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서구식 메뉴판에 경도되는 생활이 비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식당의 문전에는 / 천만에 천만에 간 일이라곤 없습니다.
-‘자최’ 중에서
식당의 문전에도 간 적 없다는 반어적 표현은, 서구식 메뉴판을 펼쳐놓고 그 달콤하고 색다른 맛을 느끼기 위해 식당의 유리문 안을 기웃거리면서도, 사실은 강낭죽을 외면하는 것임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던 지식인들의 딜레마를 드러낸 것이다.
좌절과 절망의 태풍을 견디면서 그래도 그 태풍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견뎌야 했던 그 시대, 태풍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만도 그의 의식은 깨어있었고, 그래서 ‘새파란 나비허리에 초생달이 시린’ 것을 감각적으로 알아 서글퍼했다.
서양식 메뉴들이 들어오면서 자연히 외래어들도 뒤따라 들어와 당시 외래어 구사는 매우 지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김기림은 이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즉 과거 지양을 모더니즘쯤으로 아는 시대조류에서 메뉴판을 꺼내놓고 들여다보는 일은 비겁한 것이라고 한다.
1920년대 문학을 휩쓸던 병적 징후를 김기림은 근대문명이란 방파제로 막아보려고 했다. 적어도 근대 문명이 그것을 막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랬을 때 근대문명의 수용은 관념적이었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문을 닫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근대문명은 달콤한 소스가 끼얹어진 채 비프스테이크 접시 위에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닫힌 문 이쪽에서 김기림은 절대로 간 적이 없다고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냄새를 맡고 있다.
샌드위치에서 나는 근대문명의 복합적인 냄새, 비프스테이크에서 풍기는 냄새들, 햄샐러드의 냄새.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서양소스들의 냄새들이 식당의 문밖으로 속수무책인 채 새어 나오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문을 닫고 서있는 일뿐이었다.
굳이 김기림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어느 시대나 태풍은 불고 있고, 그 태풍을 거부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햄샐러드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나 햄샐러드를 끼운 샌드위치는 우리식의 구수한 음식으로 바뀔 것이며, 샌드위치보다는 쌀밥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음식을 더 그리워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는 더 많을 것이다.
모더니즘의 태풍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던 시대는 어디서든 문명의 조류가 점령군처럼 밀려들어왔다. 지금 우리의 시대도 이 기상도가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용감하게 돌진해오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이미 와 있고,올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기상도가 틀릴 때 즐겁다.
- 오늘은 비를 동반한 바람이 강하게 불 것입니다.
이런 일기예보가 있는 날, 우산을 가지고 나갔지만, 기상대의 틀린 예보에 맑은 햇살 아래서 행복한 산보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기상대의 예보가 틀려도 유쾌하다.
김기림,『기상도』, 기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