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Sep 29. 2020

이별의 주술

-  당인리 골목길의 데이트코스가 부른 덕수궁 돌담길의 기억


지금도 그런 말이 있을까. 우리는 때로 지난 시절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끝났으리란 생각에

모두 추억이라 부른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이별한다. 이 말은 그 당시 미팅이나 데이트시에 필수로 회자되었다. 덕수궁이 데이트 장소였어도 그 돌담길을 걸어가던 일만은 한사코 피했다. 실제로 친구 중에서 돌담길을 걸어서 성공한 케이스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심코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더라도 언젠가 헤어지리란 강박관념에 빠지지 않았을까. 그 주술의 힘을 너무 광신하고 있었던 거 아닐까. 


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덕수궁 돌담길은 낙엽으로 아주 아름다웠다. 지고 있는 낙엽 사이로 사람들은 낙엽만큼 아름답지 않았고, 아니, 낙엽의 일부분처럼 아름다운 그 어떤 것도 가을 낙엽의 감성을 능가하지 못했고, 또한 태고의 그 신비로움을 사람들이 뛰어넘지 못하였고, 모두 의고적 향수에 젖어 지금 사람을 만난다는 일이 덧없고 시시하게 느껴졌고 그래서였지 않았을까. 헤어짐이 그토록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은 까닭은.

그리고 굳이 덕수궁 돌담길 탓으로 돌릴 만큼 이별에 대한 더 나은 변명을 마련하지 못했으리라.


70년대 산업화와 더불어 서울로 많은 인구가 이동했다. 서울로 인구가 갑작스럽게 몰리면서 어디 마땅히 갈 곳도 머물 곳도 없었다. 그런 중에 사람들과의 관계와 만남은 빈번했고 헤어짐도 많았을 것이다. 

딱히 갈 곳이 없던 서울의 데이트 장소에서 덕수궁은 만나기도 적절한 위치에 있었다. 광화문에서부터 덕수궁으로 걸어오는 길은 한적했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기에 적당히 한산했다. 마냥 걷기에 제법 거리도 있어서 큰돈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걸어가면 되었다. 따라서 덕수궁은 그 어떤 길보다도 데이트하기에 좋은 길이었을 것이지만 수많은 연인들이 지나간 길이 되면서 또 이별의 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덕수궁이 있는 장소는 각국의 외교 공관이 있는 곳이다. 이화여고가 있고 미국, 러시아, 영국 대사관, 등의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정동은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젊은 남녀들이 한 번쯤 가던 의식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많은 젊은 남녀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확률적으로 이별이 가장 많은 길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명동에서부터 덕수궁으로 이어지는 길은 화려함에서 감성적인 소박함으로 연결되던 길이었다. 그 소박한 고독이 화려한 명동의 상품화와 물질적인 길과 연결될 때 어쩌면 더 이상 그 길은 낭만과 서정의 길로 남아있을 수 없는 성찰적이고 숙명적인 길이 되지 않았을까.  


1960~1980년대의 대중가요를 분석한 어느 글을 읽어보면 이 당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는 명동․무교동, 종로 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 가요에 등장하는 단어는 네온사인, 불빛, 빌딩, 나그네가 압도적이라고 한다. 나도 즐겨 부르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도 덕수궁 돌담길이 여지없이 등장한다. 


이 덕수궁 돌담길은 한때 수난을 겪는다. 1960년대라는 거친 시대를 지나면서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명목 아래 흙 담을 부분적으로 현대적인 감각의 투시 철책의 담으로 만들어 시민과 문화재를 더욱 접근시키자는 발상이 나온다. 즉 덕수궁의 돌담길을 해체하고 근대화에 맞는 담을 조성하겠다는 어이없는 발상은 당시 부시장을 인터뷰한 동아일보 신문기사를 보면 너무도 떳떳하게 자신의 주관을 말하고 있어서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 돌담길은 이후 1984년이 되어서야 다시 정부가  5대 궁을 원상복귀시키면서 덕수궁의 담도 돌담으로 복원하겠다고 나섰고, 다시 돌담을 찾기에 이른다. 아마 덕수궁 돌담도 쓰라린 상처로 울었을 듯하다. 


그때 그 시절, 세상의 어떤 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젊음의 시절. 그 시절의 아이러니를 다룬 관용구가 된 이별의 덕수궁 돌담길. 돌담길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없건만 사람들만 어디든 추억과 눈물을 끌어대고 있다. 그만큼 어떤 기억 하나쯤 추억 한 조각쯤 껴안고 있고 싶을 정도로 세상이 삭막할까. 

 

나도 덕수궁 돌담길은 아니지만 보신각 종이 있던 그 어디쯤에서 짧은 데이트를 한 기억이 있다. 그런 순간에도 그 근처만 지나도 이별은 예정되지 않을까 하면서 잠시 떨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게 그럴 것이다. 그 언저리는 그렇게 우리가 주술을 갖다 붙이고 싶은 거.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헤어짐에 대한 또 다른 변명거리였을 것이다. 이별할 사람은 언젠가 이별하게 마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