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서정의 물

- 『餘白을 위한 抒情』, 정한모, 신구문화사, 1966

by 이지현

시집 속으로




<여백을 위한 서정> 신구문화사, 1966년 발행. 값은 700원. 안표지에 삽화


위 시집 정한모의 <여백을 위한 서정>은 1959년에 초판 발행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1966년은 재발행으로 보인다.


정한모 시인은 1923년 충청남도 부여 출생으로 중고등학교를 일본에서 수학한다. 1943년부터 1944년 사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서 활동하던 중, 징용으로 끌려간다.

1966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시집은 이때 재 발행된다.

한국 시인협회상, 서울시 문화상, 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문공부 장관, 한국간행물 윤리위원장 등을 지낸다.


정한모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한국 대표시인 100인 선집』을 마련해 시문학사를 정리한 것이다. 또한 1988년 7월 문화공보부 장관으로 재직 시에 <납․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를 과감하게 단행한다.

따라서 『한국 대표시인 100인 선집』에 납․월북 시인을 포함한 정리 작업을 직접 주관해서 민족문학사의 통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남북 시인들의 면모를 알 수 있게 되고,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었다.






1945년 동인지 《白脈》을 만들고, 1946년 봄부터 김윤성과 같이 동인 시지 《詩塔》활동을 한다.

1947년에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전광용, 정한숙 등과 동인지 《酒幕》에서 활동한다.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경험들이 초기 시에 다분히 반영된다. 전쟁은 우리에게 휴머니즘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장치다. 인간의 총체적인 비극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전쟁은 언제나 생명에의 외경과 인간 존중에 대한 의식을 심어준다.


시집의 목차들을 나누는 데도 시인은 고심했던 듯, 첫 파트는 자신의 가난한 사색과 행각의 결과물이며, 두 번째는 살부치들과 어지러운 바람에 싸여 한 지붕 아래 살아오는 과정을 그린 생활 시라고 후기에 쓰고 있다.



1959년 가을에 시집을 간행하면서 저자의 후기


『餘白을 위한 抒情』은 제1 시집 『카오스의 사족』 이후에 쓴 약 20여 편과 낡은 시첩 속에서 잠자던 십 여편을 합하여 엮은 것이라고 쓰고 있다.


시인이 후기에 쓴 말을 빌리자면,


'다만 살아가는 유일한 보람으로 여기고 있는 시에 내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기쁨과 나대로의 의의가 소중한 따름이며, 이러한 달래움 같은 것이 나를 이끌고 가는 恨, 내 생명의 호흡은 커다란 울림은 없을지라도 가늘고 고요한대로 끊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아마 이 마음이 바로 시인들의 마음일 것이다. 시를 쓰는 마음이 바로 유일한 보람인 것. 무엇보다 나대로의 의의가 소중하다는 것, 가늘고 고요한 대로 끊이지 않는 것.

바로 이 세 구절이야말로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마음을 명료하게 나타내고 있다.



순수한 맛



시집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서정이다. 그 서정은 과연 무엇에 대응한 것이었을까.

시인은 징용에 끌려가고, 그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도 거쳤다. 따라서 시인의 초기 시는 비극적인 전쟁으로 인해 입은 고통과 상처를 극복하려는 내용을 주로 담는다.

전쟁을 거친 후에 우리에게 남은 문제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세우고 지키는 일만이 아니라 피폐해지고 황폐한 내면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여백으로 나타나는 포용과 관대함을 노래했고, 물에서 그 의미를 찾았다. 투명하고 맑은 물은 서정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시 <연주>에서 '땅밑을 흘러가는 / 수맥의 노래같은 / 아름다운 화음' 이라고 할 때 물은 그에게 원초적인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그 물은 시 <눈동자>에서 '지금껏 아득히 잊었었던 / 이 우물', '꿈의 골짜기에 두고온 우물'로 나타난다. 땅 밑으로 흐르던 물이 우물로 솟아나는 데서 재생과 생명력을 지닌 물로 순식간에 변모한다.

그러나 이 우물이 단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면 새로운 변화를 꿈꿀 수 있었을까.


시 <비단江>에서 '산 허리 씻고 도는 저 파아란 흐름은 / 몇 만 폭 흰 바탕 치마 위 / 어느 여인이 풀어놓고 잊어 버린 / 푸른 비단 부드러운 허리띠'로 이어져 강물이 되고, 마침내 고향집의 뜰에서도 들리는 바닷소리로 연결된다.

그의 재생에의 의지는 무모하고 파괴적인 전쟁의 상흔을 상쇄시킬 수 있기를 꿈꾸었다. 그래서 땅 밑 물은 우물로 세상에 드러나고, 강이 되어 흐른다. 그 물이 '여인의 부드러운 허리띠'처럼 느껴질 때 모성을 불러일으키는 고향으로 이어진다.


시 <3월의 편지>에서 '보리밭 너머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 고향의 뜰악에서 / 오늘은 양말을 벗고 / 하얀 고무신을 신어보았습니다.'고 할 때 '보리밭'과 이어지는 바다는 고향과 접속되는 공간이다.

고향만이 자연적이고 순수한 서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육체를 감싼 '양말을 벗고' '흰고무신'을 신어보는 행위는 바로 고향에서 순수함을 그릴 수 있는 여백의 서정을 찾는 행위다.


보리는 당시 백성들이 가장 만만하고 편히 먹을 수 있는 곡식이기도 하지만 모진 겨울을 견디고 푸르게 돋아난다. 극복 의지가 담긴 보리와 포용력을 지닌 바다를 고향 뜰에서 동시에 그리며, 모성처럼 따스하고 순수한 세상을 꿈꾼다. 바로 '엄마'와 '아가'야 말로 그가 꿈꾸던 것이다.

그래서 시 <가을에> 에서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 모아 쥔 아가의 / 작은 손아귀 안에 /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희구한다.

시 <餘章>에서 '뜨겁던 알몸들이 / 철수한 사장沙場에/ 밀대와 발자욱만이 / 미역냄새에 씻기고 있을 / 해변/ 그렇게 나도 / 남아 있다' 고 말할 때, 향기로운 미역 냄새는 인위적인 것들을 지운다. 미역은 해산한 산모가 먹는 음식으로 모성을 떠올리게 한다. 따뜻하고 푸근하다. 바로 고향 그 자체다.

바다에서 시인은 아무래도 전쟁 이전의 삶을 느끼고 싶었거나, 물이 흘러 바다로 모이듯이 끊임없이 흐르는 유동성을 원했던지 모른다. 바다에 고이는 물처럼 거대한 유동성의 세계는 끝없이 변하고 이전 것을 소멸시킨다. 전쟁의 난폭함을 변모시켜 순수함을 찾고, 세계를 모성애로 감싼 고향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상승과 포용의 물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후에 살아남은 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죽음과 파괴, 굶주림과 질병.

전쟁은 삶의 비극적인 총체성을 한꺼번에 목도하게 만든다. 그럴 때 그 안에 함몰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벗어나려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어느 불행인들 그러지 않겠는가.


시인은 전쟁의 황폐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로 나타나는 순수함을 택했다.

땅 밑에서 흐르던 물이 우물로 솟고, 그것은 다시 여성성을 가진 강으로 흘렀고, 다시 고향의 바다가 되었다. 끝없이 상승하는 의지를 보였고, 좌절하지 않았다. 끝끝내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거대한 포용성으로 감쌌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어떤 불행을 겪었더라도 의지를 가지고 끝없이 맑게 흐르고, 순수하게 포용하며 산다면 어떤 삶이 환해지지 않겠는가.

시인에게 그처럼 순수한 대상은 '아가'였고 '모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안식처인 고향으로 귀결되었다.


<가을은 法堂처럼 - 相圭의 露柩(노구) 앞에서>에서 보듯이 '목숨이 그토록 賤하던 때에도 / 우리는 살아 오지 않았는가'라고 독백하는 힘은, 투명한 서정과 넉넉한 여백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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