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내가 공감이 되는 것들엔 아픔이 있다.

by 초록숨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고 왔다. 요즘 어떤 영화 홍보에도 그렇게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이 영화는 왠지, 이상하게 꼭 보고 싶었다. 구교환과 문가영이라는 두 주인공의 조합이 신선했고,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뻔한 이야기는 아닐 거야 하는 느낌, 그리고 문가영 배우와 함께 풀어간다면 뭔가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정말 얼마나 오랜만에 오는 영화관인지, 어떻게 영화를 예매해야되는지 어떤 조합으로 팝콘을 사야 꿀조합인지도 다 잊은 채 어색하게 카운터에 섰다.


영화관이 주는 힘일까, 좋은 영화의 힘일까?

ott에서 어떤 시리즈를 봐야하나 잠깐 고민하고 보다보면 조금이라도 흥미가 없어지는 지점에서 갈아타고 싶어진다. 내 소중한 시간인데! 이것보다 더 좋은 작품을 얼른 찾아 정착해야할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누구도 쫓아오지 않는데 마음의 시간에 쫓기는 나는 10초 넘김을 계속 누르며 줄거리만 파악하는 일도 잦다. 그래서 영화관은 이제 너무 비효율적인 장소라고 생각했다. 나의 안락한 집에서 나에게 꼭 맞는 소파에 누우면 내가 마음에 드는 어떤 것이든 틀고 건너뛰고 멈출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웬걸, 내가 선택한 한 가지에 시간을 끝까지 쓰겠다는 마음가짐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환경이 얼마나 다른 경험치를 만들어내는지. 오랜만에 온 영화관에서 이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티비를 끄고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앉아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며 음악을 듣고 영화관을 걸어 나오며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것까지가 영화를 느끼는 일이 아닌가 처음으로 생각했다. 좋은 영화를 알았다와는 또 다른 느낌. 좋은 영화는 왜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더 좋은지를 알게 하는 경험. 왜 영화관이 없어지면 안되는지에 대한 어렴풋한 감각. 새로운 경험이었다.


<만약에 우리>는 헤어진 연인이 단순히 ‘만약에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여전히 함께일까?’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이 대사가 포장지처럼 영화를 싸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환경과 그에 따른 인간관계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콘크리트 속에 뿌리내리기 힘들어하는 연약한 꽃에 대한 이야기를 빙자한, 한 개인의 성장사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빛나는 젊음에는 왜 힘이 없는지, 아름다움은 왜 피로로 시들어가는지, 어떠한 경력도 없을 때 왜 삶이 어려워지는지, 돌아갈 가족이 없다는 것은 체감 온도가 얼마나 영하인지, 어떠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그것에만 집중하기 힘든 환경은 어떻게 사람을 건조하게 말리는지, 쩍쩍 바닥부터 갈라지는 삶이 인간에 대한 배려를 어떻게 앗아가는지, 이로 인해 우리는 눈앞의 피로에 사로잡혀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심한지. 두 인물의 변화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자꾸 멈칫하게 만들었다.


정원이의 떨리는 아랫입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정원을 향하던 선풍기는 은호의 앞에 고정될 수밖게 없었는지 이해가 될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팠다. 은호의 아버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일을 해나가며 자식들을 챙기는 모습이, 그 자질구레한 화분과 살림들이 너무나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같아서 속상하고 또 아팠다. 휴대폰을 열면 이제 누구나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잘나가고 멋진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자식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지만 자꾸 나이를 먹어가는 부모의 모습이 내가 더 공감이 가는 부모의 모습이기 때문이었을까. 잠깐 숨고르며 뒤돌아보면 가슴 아픈 과거들이 거기에 있어서, 정원과 은호처럼 나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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