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과머리를 타고났다. 고등학교 때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도 이공계열로 진학했다. 진학한 과가 적성에 잘 맞아서 공부하면서 크게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다.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그 공부를 계속했다면 직업적으로는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 인생을 구제해야 했다. 그건 어떤 직업을 갖느냐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였다.
수능 성적이 성에 못 차 점수에 맞춰 진학한 학교였다. 그런데 와서 보니 심리학과가 유명했다. 늘 심리학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내게 심리학 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심리학과는 대개 사회과학대학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심리학이 문과라고? 왜?) 외국으로 대학을 가지 않는 이상 심리학과에 진학하긴 힘들겠구나 싶어 애초에 후보군에 올리지도 않았던 과였다.
늘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다. 내게 못되게 구는 아이들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관계의 끝이 대부분 좋지 못했고, 잘 지내다가도 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나를 싫어하고 거리를 두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또래 친구 사귀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나만 이렇게 어려운 건지. 이해하고 싶었다. 이 모든 상황과 그들의 마음을.
학부생 시절을 성실히 보낸 대가로 대학원은 원하는 과에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임상심리학과에 지원했다. 지원동기에는 심리적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진단하고 적절히 개입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적었으나, 실은 스스로를 구제하고 싶었음을 나중에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 임상심리학은 주로 사람의 정신병리를 다루는 학문으로, 정신병리의 진단 기준을 공부하고 여러 심리검사도구를 다루고 결과를 해석하는 법을 배운다. 즉 인간을 보편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특수성을 파악하고 진단하는 학문이 임상심리학이다.
나를 적나라하게 발가벗긴 대학원 시절이었다.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선명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공부를 하든 이론을 배우면 그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며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인데, 정신병리 이론의 특성상 공부한 내용을 사람에게, 사람 중에서도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적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왜 내가 관계 안에서 고통받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나를 싫어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낱낱이 알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시절을 훨씬 편안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관계가 어려웠던 건 내 문제도 있었으나 내 문제가 전적으로 나만의 책임은 아니었으며, 때로는 타인의 문제이기도 했고, 상황의 문제이기도 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어리고 미숙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심리적 문제가 그간 내가 경험한 모든 문제의 단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하며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발가벗겨진 나 자신을 어떠한 심리적 방어막도 없이 그저 직면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나를 변호하는 건 방어기제였기에, 책에는 내가 무슨 방어기제를 어떤 식으로 돌리고 있는지 아주 친절하고도 자세히 적혀있었기에 스스로를 변명할 수 조차 없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모양일까를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 보니 결국 부모의 양육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어, 한순간 부모를 몹시 원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나의 부모는 왜 나를 그토록 사랑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밖에 양육할 수 없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 그들 역시 불행한 성장환경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나는 부모를 마음껏 원망할 수조차 없었고, 내가 겪었던 모든 시간은 내가 뭘 어찌할 수 없었단 결론에 이르러, 결국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십수 년간 겪어 온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올라오는 분노는 갈 길을 잃어 스스로를 곪아 터지게 했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우울과 싸워야 했다.
남들보다 잘 해내야만 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것은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확실할 때에만 엄마는 웃었다. 성적표에 쓰인 숫자라든지, 대회에서 받아온 상장이라든지, 학급회장 임명장이라든지. 그 외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나의 인격적 성숙이나 사회성 발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집안일을 돕고 싶어 하면 네 일이나 잘 하라며 성가셔했고, 생일이나 어버이날 때 선물을 드려도 크게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헤아리고 관계를 다지는 것보다 목표를 잘 성취해 내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런 나를 아이들은 싫어했다. 또래 아이들에게 나는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며, 공부만 잘하는 재수 없는 아이였다.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몰랐다. 타인의 생각을 짐작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몰랐다. 특정 상황과 맥락에 적절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몰랐다. 부모는 그런 걸 내게 가르치지 않았다. 관계에 서툰 사람들이었다. 아빠는 모든 갈등을 회피로 일관했고, 엄마는 피해의식이 상당했다. 당장 당신들부터가 건강하게 관계 맺고 관계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게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갈등이 생기면 예민하고 날 선 반응을 보이며 타인이 자신을 부당하게 공격한다고 생각해 몹시 분노했다. 그들에게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주도적으로 헤쳐나가는 능력이 없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관계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가정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으며, 관계가 어려워져 고민을 이야기해도 '그랬구나' 이외의 도움이 될 만한 말을 기대할 수 없었다. 대신 회피와 피해의식을 배웠다. 갈등 상황에 놓이면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맙다는 말도, 실수를 했을 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언어가 없는 집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언제 그런 말을 해야 적절한지를 잘 판단하지 못했다. 그래놓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정리하자면 내게는 사회성이 키워질 만한 환경도 주어지지 않았고, 가정교육도 부재했으며, 비극적이게도 타고난 센스마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