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심리학, 나를 살린 심리학
임상심리가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면 '나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 학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임상심리를 공부하면서 나는 정말로 죽음에 아주 가까이 갔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죽음에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
스물 일곱 전까지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고통스러운 날들을 가까스로 살아냈다. 어쩌면 하루하루 떠밀려 살아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항상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 이리저리 휩쓸리며 허공에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불안했고 무력했고 우울했다.
그렇게 25년을 살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내 인생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내가 왜 그토록 고통스러웠는지. 그전까지는 몰라서 고통스러웠다면, 이제는 알게 되어 고통스러웠다.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내 모습을 알게 되어서. 그전까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힘들었다면, 이제는 그런 갈등을 유발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이 고통이었다.
공부를 할수록 내 삶은 그 자체로 잘못된 인생 같았다. 내 인생에 A라는 일이 없었더라면.. 그 A라는 일은 그전에 겪었던 B라는 사건 때문이지.. B만 겪지 않았더라면..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부모의 문제로 귀결되어, 결국 '지금까지 내가 겪은 고통은 그저 내게 주어진 운명이었구나' 하며 무력해지는 것을 반복했다. 매일, 매 순간 생각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게 필요한 말을 해 주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내게 더 나은 통찰과 지혜가 있었더라면. 그땐 그랬다. 지나온 매 순간이 후회고 수치고 원망이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그렇게 실컷 후회와 원망을 하던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죽지 않고 계속 살기 위해서는 지나온 나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고꾸라져 처박히지 않고 성장했다. 임상심리라는 렌즈를 통해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상, 그리고 관계를 바라보며 내 삶의 고통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 고군분투했던 그 시간들이 내 삶에 엄청난 양분이 된 것이다.
스물아홉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갔다. 2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변해있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가끔 옛날얘기를 해 주면 그들은 과거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워했다. 과거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연락을 유지하던 사람이 소수 있었으나 그들은 내가 변했음을 알지 못하고 전처럼 나를 함부로 대했다. 옛날 같았으면 등신같이 당하고만 있었을 텐데 그땐 시원스레 욕을 하며 인연을 끊어버렸다.
나는 정말로 변해있었다. 인간의 보편성을 이해하고 나니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암묵적인 룰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내 문제인지, 상대의 문제인지, 상황의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눈이 생기니 쓸데없이 상처받는 일도 없어졌다. 더 이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뒤에서 내 욕을 하지는 않을지를 전전긍긍하지도 않았고, 남 눈치 보느라 부당한 대우를 받고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마음에 분노를 쌓아두는 일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관계에 적절한 거리를 두며 잘 지낼 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