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끝에는 슬픔이 남았다(1)

부모를 용서한다는 것

by 청귤




전공이 전공인지라 지금껏 여러 차례 상담을 받아봤지만, 상담 끝에 좋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이유야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 나는 너무 아팠고, 너무 어렸으니까. 그래서 내 아픔을 또렷이 바라볼 힘이 없었으니까. 상담실 문을 두드릴 때면 막연히 어떤 권위자가 나를 구제해 줄지도 모른다는 의존적이고 마술적인 사고가 깔려있었다. 그땐 아직 스스로를 구제해야겠다는 결심이 오기 전이었다.






삶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그건 어떤 방식으로든 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걸 나에게서 알았다. 처음에는 내 문제인 줄 알았다가, 그다음에는 나와 부모와의 관계의 문제, 즉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 부모-자식 인연으로 만난 탓이라고 생각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해결하지 못한 부모 자신의 문제가 나에게로 투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내가 아닌 다른 누구였더라도 피해가기 어려웠으리라는 것도.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부모를 미워했다. 나의 부모는 도대체 왜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한 채 떠밀려 살았을까. 왜 그런 방식으로 나를 낳고 키웠을까. 왜 가족 안에서의 역동은 나의 책임으로 귀결됐으며, 그들의 수치심이며 죄책감은 왜 나에게로 전가되어야 했을까. 왜 나를 사랑이 아닌 자랑으로, 지혜가 아닌 오기로 키웠을까. 아이도 낳기 싫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 부모를 일면 이해하게 될까봐, 그래서 내가 부모를 용서하고 싶어질까봐. 또 한편으로는 이런 내가 아이를 낳아 내 부모의 모습을 답습하게 될까봐. 나의 마음은 매우 깊고 진지한 것이었으므로 내가 나를 어르고 달래서 아이를 낳기까지는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기에, 나는 어떤 식으로든 내 문제를 한 번은 제대로 들여다봐야 했다.




엄마와 나와의 사이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내 10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부모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는데, 당시 나의 주 양육자는 엄마였기 때문에 타고난 기능 이외에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언어, 정서, 사회성 부분은 대부분 엄마의 것이었다. 나의 언어는 빈약하여 그 언어로는 스스로를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었다. 관계에서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주목받길 바랐고,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피해자를 자처했다. 주 정서는 혼란과 우울. 이런 나의 모습은 정확히 엄마의 모습이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후반 무렵까지는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알을 깨고 나와 부모로부터 분리-독립을 하려는 준비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질적으로 따져보면 병리적인 모습이었다. 20대 중후반 무렵부터 30대 중후반 무렵까지는 냉전이었다. 이 무렵 나는 엄마에게서 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고, 어떠한 소통도 원하지 않았으며, 그저 연이나 끊기지 않는 정도로 적당히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말로는 천진하고 순수하게, 나쁜 말로는 미숙하게 한평생 살아온 엄마가 이제 와서 변할 리 없다고 판단했다.




30대 중후반 무렵 나는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의 관계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아주 가까워졌고, 애틋해졌다. 함께 아기를 보면서도 부딪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내가 엄마를 용서한 건가? 겉으로만 보자면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관계의 변화는 단순히 내가 엄마가 되어서 엄마의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든지, 아이를 낳으면 친정 엄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었다든지 하는 흔하고 뻔한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를 낳은 뒤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인지부조화로 매 순간 고통받아야 했는데, 엄마와 함께 있는 그 시간만큼은 그 어떤 문제도 없이 그저 엄마가 고맙고, 편안하고, 행복하면서도, 엄마가 부재한 시간에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끊임없이 침투하여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고통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자는 각오로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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