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끝에는 슬픔이 남았다(2)

by 청귤



상담을 하면서는 부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느리고, 고요하게.



내 마음에는 시소가 있었다. 한쪽 끝에는 나의 아픔이, 다른 쪽 끝에는 부모의 아픔이 앉아있었다. 내가 부모의 아픔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아픔이 더 무거웠다.


상담을 하면서는 나의 아픔과 부모의 아픔이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나의 아픔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도 했고, 부모의 아픔을 더욱 깊이 이해하면서 더욱 무거워진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변해있었다.


엄마로부터 나를 철수하고 단절하며 지낸 그 10년 동안, 엄마는 변해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고슴도치 같은 모양을 하느라 내면아이가 자랄 틈이 없었던 엄마는, 아이인 채로 나를 20년을 넘게 키우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엄마를 변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 엄마는 그 시기에 몇 가지 큰 일을 겪었다. 우선 내가 엄마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철저히 유지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깊은 슬픔인 것 같았다. 그리고 관계에서도 큰 일을 겪었다. 언제나 날을 세우며 세상을 살아온 엄마가 유일하게 안식처라고 생각했던 종교 안에서 큰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많이 아팠다. 키가 160이 넘는데 몸무게가 44킬로까지 빠질 정도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갖 검사를 했지만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엄마가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엄마는 꺾어지는 쪽이 아니라 깊어지는 쪽을 택했다.

엄마는 50대가 되어서야 어른이 되었다.






실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쌓여 닿은 지금의 모습이거늘, 단지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의 미묘한 변화가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달갑지도 않았다. 삶의 지혜랍시고 내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할 때면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단 말이야? 그런 말은 나 어렸을 때, 나 키울 때 해줬어야지. 그걸 이제야 깨닫고 지금에 와서야 나한테 조언이랍시고 하는 거야? 설마 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나도 50이나 되어서야 깨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엄마는 변했지만 내 마음은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 아기가 온 것이다. 아기는 실로 따뜻한 봄날의 햇살 같아서 얼음장같이 차갑고 딱딱했던 내 마음을 녹였다. 그 완고한 마음이 누그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엄마를 지금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엄마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건 아니다.


그건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사실은 아직도, 여전히, 엄마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본다. 관계를 현명하게 다루지 못하고 감정적인 엄마를, 아랫사람에게 철없이 얄미운 엄마를, 타인에게 무신경하면서 본인은 배려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를 본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건 엄마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내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몰랐기에 혼란스러웠고, 의미를 알아차렸을 땐 화가 났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따져 묻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 모든 감정은 갈 길을 잃어 나를 늘 우울하게 했다. 아이가 찾아오고 우리에게 다시금 봄날이 왔을 때에도 과거의 일화들이 침투할 때마다 갈 길 없는 분노에 다시금 휩싸이곤 했다. 갑자기 변해버린 우리의 관계로 인해 과거의 나와 현재 내가 통합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슬픔으로 남았다. 이제는 예전만큼 화가 나지 않는다. 그건 엄마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토록 알고 싶었던 것을 이해하기 위해 온 힘을 다 했던 한 아이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제한 아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아이는 그야말로 더 애쓸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애쓴 것처럼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구나.

그러고는 이제는 그만 분노해야지, 그만 애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과거로부터 내게 오는 모든 것들이 잔잔한 슬픔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슬픔을 바라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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