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재해석하는 힘
내 마음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20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었다. 그건 지나간 내 행동과 결정에 대한 후회였다. 그때의 나는 그 나이라면 알았어야 할 것들을 몰랐고, 그러나 내가 뭘 모르는지조차 몰라 혼란스러웠으며, 그 무지로 인해 인생에서 결정적인 것들을 놓쳐버렸다. 그것들은, 그 시간들은 돌이킬 수도, 만회할 수도 없었다. 절대로.
그래서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그저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건 멍하고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그저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이었는데, 매 순간 과거의 어느 순간이 내 머릿속에 침투해 현재의 나를 헤집어놓는 것에 저항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 시간이 모두 흘러갔음을 실감한다.
그때의 시간이,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더 이상 흔들 수 없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 때 나의 세상과 지금 나의 세상에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때의 일들이 지금의 내 삶에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일부 의도한 것이기도 하고 일부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이기도 한데, 직업을 바꾸면서 자연스레 환경이 바뀌기도 했지만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 인연은 과감히 끊어버리기도 했다.
물론 내게는 꽤 오랜 기간 이어져오는 몇몇 인연이 있기는 하다. (대부분의) 그들의 공통점은 지금의 우리를 마주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닌, 지금 여기에 있는 너와 나를 만나, 서로를 긍정적으로 비춰주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만나기 전보다 헤어진 후가 더 좋다는 것. 그래서 또 만나고 싶은 사람들. 서로가 미숙했음을 인정하고, 인간의 성장을 실로 믿으며, 지금 여기에 있음에 감동하고, 앞으로도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싶은 관계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이유다. 어린 시절 나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스무 살에 좋은 대학만 가면 인생이 완성된다는 생각이었다. 좋은 대학만 가면.. 소위 말하는 명문대만 가면.. 나라는 인간이 완성되어 완벽한 어른이 되고, 완벽한 직장을 얻고,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 완벽한 결혼을 할 것이라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내 20대의 비극은 거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확실해. 그런 잘못된 생각을 품고서 아직도 어리고 엉망인 자신을 우울증적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건...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해 성장할 수 없어 같은 실수를 기어코 반복하며 고통받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중요한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어쨌든 나는 그 대가를 전부 치러냈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나를 완전히 재해석할 힘이 생겼다. 스무 살의 나는 스스로에게 차갑고 냉정했으며 시야가 좁았다. 하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의 나에게는 넓고 깊게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또한 대부분의 관계와 상황은 단순히 직선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것이며, 그 안에는 논리가 아닌 감정이 얽혀있음을, 그리하여 상황을 깔끔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장 큰 변화는 인간에 대한 시선인데, 더 정확히는 변화가 아닌 깨달음이다. 실로 사람을 연민하는 따뜻한 마음이 내게 있었음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알지 못했다.
수많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재해석을 거쳐 힘을 잃었다. 나는 유쾌하지 않은 장면에 닥칠 때마다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 기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오랜 시간 자존감이 낮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이 온전히 내 잘못 때문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상대방의 탓이었고, 때로는 얄궂은 상황 탓이었다. 더 넓게는, 내가 백 프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그 모든 경험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대가 없이 성장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지금의 나 역시, 어떠한 지점으로 가는 과정에 서 있음을 이제는 안다.
평온하다. 이 거저 얻어지지 않은 평온함이 좋다. 나는 이 평온함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순간의 나 자신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 덕분임을 확신한다.
과거라는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누가 그랬다. 너의 20대는 싱그러웠다고. 눈부시게 빛났다고. 얼마나 반짝였는지 모른다고. 이제는 나도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보다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었을까? 이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뭘 좀 일찌감치 알았다면 훨씬 평탄했을 수는 있어도 아마 재미는 없었을 거다. 어렸기에, 뭘 몰랐기에 그토록 치기 어릴 수 있었고, 그토록 진심일 수 있었고, 그토록 상처받을 수 있었겠지. 덧붙여 그 긴 여정 끝에 다다른 지금 생각한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진정한 수용이 무엇인지, 감사가 무엇인지 지금만큼 깊이 알 수 없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