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은 Apr 01. 2024

2023. 5. 6. 11:04~11:16

마을버스를 달리는 이야기


어제 어린이날부터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를 포함해 6명의 여성이 타고 있다. 봄비다. 내리는 비 때문인지 다들 차분하다. 뿌연 창 너머로 김 서린 문래동이 스쳐 지나간다. 어린이날 집안에 갇혀 있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봄비 듬뿍 머금어 잘 자랄 나무들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여자 셋이 쪽머리를 하고 있다. 비 오는 날에는 머리를 안 감고 쪽을 지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 걸까. 하루만 머리를 감지 않아도 난리가 나는 나에게는 쪽지는 게 선택사항이 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보다. 드럼 수업을 같이 듣는 강서구 아저씨가 지난 토요일 활짝 펴준 내 우산이 오늘은 나를 잘 지켜줄 테다. 지난주는 우산이 내내 펴지지 않아 비를 쫄딱 온몸으로 맞았다.


마지막 영등포역 정류장 전, 영중로와 문래로가 만나는 삼거리에서부터 영등포역 정류장까지 마을버스 기사가 경적을 울려댔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 승객들이 앞을 바라보는데, 신세계백화점 앞 영등포역 정류장에서 택시가 손님을 태우고 있었다. 분홍색 옷을 입은 나이 드신 할머니와 손자로 보이는 20대 남녀가 할머니를 부축하고 있다. 20대들의 행동이 느리긴 했다. 누가 봐도 비 오는 날 거동이 불편한 어른을 젊은 사람들이 모시고 있는 것인데, 그리도 경적을 울려야 했을까. 내 기록에 의하면 이 버스는 늦지 않았다.


--

2023 마을이야기 '영등포에 귀 기울이다' 중 '마을버스를 달리는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2023. 4. 22. 11:07~11: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