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를 달리는 이야기
나의 마음과 다르게 왁자지껄한 마을버스 실내가 나를 맞는다. 여전히 반 정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전보다 활기차다. 토요일 아침의 경쾌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결혼식 하객 차림의 사람, 시장 보러 가는 사람, 아빠와 나들이 가는 여자아이, 헬로키티 신발 가방을 든 아빠. 자상해 보인다. 발레 머리망으로 뒷머리를 고정한 걸로 보아 발레 수업에 가는 길인 것 같다. 신발 가방 안에는 조그마한 발레 슈즈가 있겠지.
플라스틱 통 안의 애완동물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는 30대 커플. 통 망 사이로 슬쩍 나온 토끼의 하얀 귀가 보인다. 버스를 기다리며 일주일 사귄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다. 어젯밤 화를 내고는 추적추적 집으로 걸어온 후 내가 보낸 첫 연락이었다. 챙 넓은 파란색 모자를 쓴 할머니가 빨간색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타임스퀘어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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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마을이야기 '영등포에 귀 기울이다' 중 '마을버스를 달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