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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티 Greentea Jan 13. 2022

원작의 향취를 그대로 담은 현대식 패키지의 향수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본격 파헤치기 리뷰


스필버그의 모험심 가득한 시선과 뮤지컬이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압도적인 세트에 때갈 좋은 특수효과들, 웅장한 노래들이 가득하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은 예상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대중들의 기대와 오락성에 충족해왔었던 그가 이번에는, 내면 깊숙이 가장 아껴왔던 소중한 추억을 관객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앞으로 소중할 추억으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1967년 개봉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뮤지컬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0살 때 처음 들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뮤지컬 OST를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반드시 언젠가 영화로 만들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시간이 흘러 지금 21세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완성시켰다. 스스로 다짐을 한지 60년이 흐른 뒤다. 그래서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마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영화일 것이지만, 스필버그 감독 개인적으로도 많은 의미와 애정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연출하면서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 <E.T.> 이후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고도 말한 바 있다. 그가 ‘영화’를 시작했을 때부터 영화와 보냈던 수많은 시간 속에서 비로소 지금이 돼서야 ‘영화’의 이유를 관객들에게 설득하려고 한다. 이것 자체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리메이크한 이유를 설명한 셈이다.



- 제트 파 VS 샤크 파, 불협화음 속 피어난 사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67년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원작 자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다시 각색을 한 작품이어서, 이번 작품도 플롯 자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간단하다. 영화는 뉴욕 변두리를 장악하려고 하는 두 개의 파, 남주인공 ‘토니’가 속한 ‘제트’파와 여주인공 ‘마리아’의 오빠가 속한 ‘샤크’파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두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는 ‘토니’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새로 정착한 뉴욕에서 희망에 부푼 ‘마리아’. 우연히 댄스파티에서 토니와 마리아는 첫 눈에 반하게 되지만 날이 갈수록 제트파와 샤크파의 갈등은 깊어진다. 자신들의 배경은 뒤로 한 채,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토니와 마리아. 언제 끝날지 모를 사랑을 이어오던 중, 제트파와 샤크파 사이에서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둘은 과연 불안한 시간 속에서 사랑을 지키고 그토록 바라던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 원작을 정중하게 존중한 현대식 재현      


흙먼지 가득한 차가운 철제 계단, 어딘지 모르게 웅장하게 솟아있는 낡은 벽돌 건물들. 그 속을 오가는 사람들. 철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는 카메라와 계단 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비춰지는 토니와 마리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대표하는 이미지 시퀀스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 즉 1950년대의 미국 서부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오히려 내가 지금 1967년 개봉했던 작품을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리메이크 작품을 보고 있는 건가 헷갈릴 정도로 낡은 필름의 자글자글하고 쾌쾌한 감성들을 그대로 살리는 데 성공했다. 레트로 패션도 한몫한다. 색이 바라진 하얀 런닝구만 걸쳐도 멋이 되는 시대. 그리고 형형색색의 드레스와 각종 빈티지 소품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면 현대적 감성이 담겼던, 리메이크된 부분은 과연 어디일까. 개인적으로는 ‘군무’신이다. 원작의 뮤지컬 넘버와 더 섬세하진 안무, 다채로운 카메라 무빙의 만남은 정말 환상이다. 예고편에서도 곳곳에 등장하지만, ‘America’ 신은 마치 풍경처럼 보일 정도로 의상, 안무, 카메라의 합이 아주 인상적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공간을 아낌없이 자유롭게 활용하며, 음악과 안무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에너지를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낸 스필버그의 연출은 마치 어릴 적 그의 모험심 가득한 시선을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한다. 뮤지컬만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부분들은 더욱더 풍부하게 현대적인 기술로 잘 활용했다.



-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 캐스팅     


배우들 캐스팅을 빼놓을 수 없겠다.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안셀 엘고트 배우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마리아’역에 당당히 캐스팅된 신예 레이첼 지글러, 넷플릭스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 <더 프롬>으로 단단히 영화계에 발도장을 찍은 배우 아리아나 데보스까지. 참고로, 얼마 전 개최 된 제 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각각 뮤지컬/코미디 부분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원작이 주는 힘과 그것을 잘 살려낸 배우들의 앙상블이 정말 뛰어났다는 것 아닐까. 신기한 사실은, 원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아니타 역을 맡은 리타 모레노가 당시 제1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그리고 제3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었다. 리타 모레노는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발렌티나 역으로 출연했으며, 제작에도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합일이 완전히 이루어진 셈이다. 영화를 보기 전 마음가짐과 시선을 완전히 오리지널에 초점을 두고 관람을 해서 그런지 배우들의 이미지가 꽤 고전 색채와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토니와 가녀린 섬세한 얼굴선의 마리아의 합은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원작의 향수를 그대로 불러일으키는, 기계음 하나 없는 관현악 연주와 배우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의 조화. 오랜만에 자극적인 재미보다는 오래된 책에서 나는 정겨운 냄새도 한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 오롯이 들어간 시대상      


영화에서 주로 다뤄지는 갈등은 제트 파와 샤크 파의 갈등이다. 이는 곧 민족, 즉 인종 간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긴 하지만.) 공동체의 정체성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발을 디디고 서있는 이 땅의 울림이 전부였던, 투박하고 정직한 시대 속 젊은이들의 혼란과 세상에 던지는 질문들이 오롯이 다 녹아들어있다. 단순한 로맨스 뮤지컬만은 아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계속 보고 있자면, 꿈과 희망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펼치고 치열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에 짜릿한 쾌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반면 불안하고 두렵다. 곧 닥쳐 올 두 세력 간의 엄청난 갈등과 숙제들이 비단 관객들이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등장인물들의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쁨과 행복 앞에서 밀려오는 불안과 슬픔을 동시에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만의 매력이 아주 뚜렷하다.



- 요약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한줄로 요약하자면, 원작의 향취를 담은 고급스러운 패키지의 향수라고 할 수 있겠다. 원작이 가진 단단한 힘과 현대의 섬세한 기술이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를 보여준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다. 무겁고 심각한 주제라도 조금 더 자유롭게, 씩씩하게 때로는 애처롭게, 처량하게 전달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음악’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영화적인 요소가 모여 합을 이루는 결정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런 ‘뮤지컬’의 정체성에 깊은 뿌리가 되어준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그것도 이 작품을 가장 사랑하는 감독이 만든 리메이크를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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