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마음은 엄마의 것도 선생님의 것도 아니다, 영화 <괴물> 후기
11월 29일 개봉 예정,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을 2번 미리 만나고 왔다.
Before Movie
처음 포스터를 봤을 때의 강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얼굴 가득 진흙을 묻힌 아이 두 명이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낯설게 보는 듯한 불편함이 살아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영화일까? 마치 ‘어른들은 몰라요’하고 원망하는 듯한 쓸쓸한 시선 같기도 하고.
포스터 속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괴물’은 마치 어릴 적 자주 했던 낙서가 떠오르기도 한다. 빨간 이름으로 자기 이름을 적으면 죽는대!라는 미신이 있었는데, 그 뒤로 빨간색으로 적힌 이름을 보면 아직까지도 흠칫하기도 한다. 그만큼 포스터의 인상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괴물>을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4000석 규모가 매진되었던 야외상영이었는데, 확실히 고레에다 감독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구나 생각했다.
첫 관람은 다 마찬가지겠지만 서사만을 따라가느라 세부적인 디테일이나 대사 같은 것을 많이 놓치면서 봤다. 더군다나 야외상영이어서 확실히 실내 극장보다는집중력이 떨어졌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최근 국내 개봉이 11월 29일로 잡히게 되면서 시사회로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천천히 여유롭게 관람해서 그런지 한 달 전 대략적으로만 남았던 감동도 섬세하게 다가왔다.
Into the Movie
어른이 되어도 괴물이 무서워요?
<괴물>은 어른들에게 두려운 존재는 아니다. 아이들은 두려워한다. 어쩌면, 두려움을 대표하는 가장 원초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다른 존재, 무서운 존재, 피해야 하는 존재. 그 넓고 깊은 낙인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게 편견이 된다.
그런 과정이 잘 나타나는 곳은 역시 ‘학교’다.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긴 하지만, 동시에 통제를 위해 정형화되고 규칙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것은 용납하지 않고 오로지 올곧고 바른 개념만 고집하는 곳. 나와는 다른 것보다, 나와 같아야 하는 것에 아이들은 익숙해져 간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모두의 시선의 대상이 되고 만다. <괴물>은 그 개념을 낙인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영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총 세 부분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소년 ‘미나토’ 어머니의 시선, ‘미나토’의 담임 선생님 ‘호리’의 시선, 그리고 ‘미나토’와 그의 친구 ‘요리’의 시선. 같은 반 두 소년, 부모 그리고 교사들 사이에서 한 사건이 일어나고, 오해가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간다.
각본이 정말 영리하다. 물론,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도 훌륭하다. 지금 당장 쏟아지는 뉴스를 경험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댓글을 보면 ‘중립’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어느 한쪽의 입장만 듣고 섣부르게 판단했지만, 막상 다른 입장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또 반대편으로 우르르 움직인다.
<괴물>도 이런 인간의 섣부른 믿음과 어리석은 판단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한번 지핀 불처럼 덜컥 믿은 오해는 진실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간다. 종잡을 수 없는 시선들, 오해들, 잡담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일까?
너랑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이상하게 볼 거야,
너를 좋아하는 건 잘못된 거래.
우리 아빠가 내가 돼지의 뇌라서 그렇대.
또한 극장을 나서면서, 관객의 마음속에 남는 건 두 소년, 미나토와 요리일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인 두 소년.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자신이 되는 두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을 가로막는 수많은 시선과 편견과 오해는 그들을 숨게 만든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그저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 이야기로 단정 짓고 영화를 보다간 큰코다칠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주변을 둘러싼 편견, 차별, 폭력 등의 거대한 사회 이슈들을 어느 작은 마을의 학교의 이야기로 힘 있고 단단하게 풀어 나간다.
After Movie
사실, 개봉 후에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무수한 의견이 나올 것이라 예상되는데, 그저 두 소년의 ‘이야기’로만 바라봤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마음은 사랑과 우정은 다른 것일까? 이것을 나누려고 하는 것조차 어리석은 짓이다. 마음이 이어지는 길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엄마도 선생님도 친구들의 것도 아닌 세상에서 유일한 본인만의 것.
저울처럼 3개의 시선을 교차하며 어느 한쪽에도 무게를 싣지 않고 수평을 유지하며 펼쳐지는 서사들. 관객들은 이를 찬찬히 따라가고 함께 오해하고 이해하며 마침내 결말의 숙제를 받아들인다.
영화는 불타는 건물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두 모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순수하게 뛰어노는 두 아이의 모습으로 끝난다. 시선에서 끝나서 시선에서 끝나는 이야기. 두 아이들을 그저 남의 집 불구경 하듯 바라봤다면, 이 영화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매우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