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정현채 저서

by 환타지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정현채 저. 2018.9. 출판. 삽화. 김영화. 출판사: 비아북.


나는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죽음을 접하는 의사다. 의사라고 다 죽음을 매일 접하지는 않는다. 나는 암환자, 특히 병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암환자의 항암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혈액종양내과 의사이다. 그런데,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아무리 열심히 치료해도 죽음의 시간은 다가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나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환자들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이 있을까? 아니다. 환자들은 나에게 얼마 동안 살 수 있느냐? 항암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 연장될 수 있는지, 언제쯤 죽게 되느냐라는 질문을 한다. 나는 환자들에 내게 근삿값을 듣고 싶어 묻지만 나는 정작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는 없다. 삶만큼이나 죽음도 불확실해서 언제 죽을지는 알지 못한다. 그 환자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다른 환자들의 통계적인 기간을 얘기해줄 수는 있어도 그 환자가 언제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는 모르기 때문에 그런 곤혹스러운 질문은 회피하는 게 상수는 못 돼도 하수를 면할 수 있을 때도 많다. 더구나 환자들은 정확한 수치보다는 그래도 살 수 있는 희망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혹은 갑작스러운 말기 암 진단에 대한 분노로 그런 질문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의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있다. 죽음은 언제나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평균 생존 기간이 1년인 환자가 아직 3년째 생존해 있고, 그 환자가 한 달 후에 사망한다고 해도 그 환자는 아, 남들은 1년 산다는데 3년이나 살고 있으니까 난 불행 중 다행이다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누구에도 죽음은 너무 빨리 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일 뿐이다. 어쩌면 삶에 대한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단 한순간이라도 죽기 살기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때로는 죽음을 잘 준비해서 잘 떠나가시는 환자분들도 종종 본다. 종양내과 전문의기 때문에 환자들이 죽음 직전에 경험하는 종말 체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하고, 임사 체험도 더 많이 알고 있다. 환자들이 단지 죽을 때가 되어 헛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떠난 친구, 친지, 가족의 환대를 받고 있는 기간이 존재하고 그것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때로 환자들께서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오랜 기간 사업 파트너였던 친구가 병실에 와 있는데 하나도 두렵지 않다. 걱정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 선생님만 알고 있어라. 괜히 미친 사람 취급받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도 있지만 굳이 동료 의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괜히 현대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죽음에 대해 미화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두루 뭉실 상황을 모면하였을 뿐이다. 때론 가족보다 아니, 가족과는 다른 종류의 굳건한 신뢰감을 형성한 환자와는 다르다.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암에 걸렸든 암에 걸리지 않았든 잘 살아가고 또 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녹록한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 준비하기 어렵다. 때로는 농담 속에서 때로는 슬픔 속에서 우리는 죽음을 떠올리며 웃기도 울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고 외면하는 문화 속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된 것은 바로 임종하시는 분들 당사자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 조차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고 믿었던 의료진들 조차 오늘 상태에 급급한 이야기만 나누고 정작 생로병사의 커다란 축이자, 언제 그 순간이 올진 모르지만 오는 것이 확실한 죽음에 대해서 아무와도 얘기 나누지 못한 채 죽음을 제대로 준비조차 못하고 허겁지검 바쁜 걸음으로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시간은 부족하다. 준비 없는 시간은 더욱 부족하고 쫓기게 된다. 2박 3일 짧은 여행을 떠나더라도 우리는 준비를 철저히 한다. 인생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문으로 이동하는 죽음이라는 시점에서 우리는 죽음을 조금은 알아야 하고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누가 그 죽음에 대해 이토록 자세하고 과학적이면서도 따스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을까? 더구나 현대의학의 선봉에서 서서 오랜 기간 연구하고 진료하고 교육하던 의대 교수 중에서 그런 분이 있었을까? 좋은 얘기는커녕 괴짜 의사가 괴상한 소리 한다. 의사가 살릴 생각은 안 하고 왜 죽음 얘기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비난받을 일이 뻔한데 과연 누가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외국 유명한 의학 저널인 NEJM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의사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일반인보다 훨씬 덜 받는다는 것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의사들은 죽음의 속성에 관해서 잘 알고 있다. 죽음에 대해 충분히 힌트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지식 보따리를 펼쳐 보여주지 않는다. 나만 해도 그렇다. 환자나 가족들은 오늘은 부종이 있다. 콩팥 수치가 높다. 간수치는 왜 그러냐. 잘 먹인다고 먹이는 데 왜 기운이 없고 잠만 자냐 등등 질문을 할 때마다 병이 이기기 시작하면, 삶보다 죽음이 이기기 시작하면 쓰나미처럼 몸이 한꺼번에 무너진다고, 소변 잘 안 나오고 부종 생겨서 이뇨제를 쓰면 전해질이 깨지고 전해질 보충하고 영양제 쓰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고, 댐이 새기 시작할 때는 주먹으로 모래주머니로 여기저기 틀어막아도 오히려 다른 고통만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말을 표현할 때도 있지만 그냥 안으로 삼킬 때도 많다. 항생제가 좋다지만 그것은 박테리아 하나만 볼 때 그렇다. 그 균을 품고 있는 환자가 항생제 쓰는 것이 오히려 고통일 때가 있다. 그런데도 회피하듯이 그래, 이것을 써보자, 저것을 써보자 할 뿐. 그러나 정작, 이런 회피하는 태도가 과연 환자를 위하는 일이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오히려 이 상태는 금식, 탈수가 오히려 환자 몸을 가볍게 하고 죽음의 세계로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이다. 이렇게 안 먹으면 죽기밖에 더하지 않냐는 물음에 할 것이 없어 아무것도 안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적기에 시행하는 적극적 안 주기이며, 존엄한 죽음을 위한 탈수이자 금식이라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한다. 이미 스콧 니어링이나 우리 고승들은 이미 적극적으로 실행해온 지혜로운 방법이다. 아니, 그런 훌륭한 분들 이야기가 아니라도 수십 년 전만 해도 가족의 어른, 마을의 어르신들은 죽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임종자가 주인공이며 가족과 친지들은 조력자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게 도와주는 조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시대는 죽음을 생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이동하는 장엄하고 고요한 순간이었다. 오히려 물질만능, 과학 만능, 의학 만능의 시대가 된 최근에서야 죽음이 정말 죽기도 힘든 고역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짐 덩어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상식을 총망라한 책이다. 정현채 교수님이 오랜 기간 연구한 죽음, 임종, 존엄사, 종말 체험, 임사체험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총망라한 책이다. 더구나 용감하게도 죽음 후의 세계를 다뤘다.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 것 대해서 많은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풀어나간다. 여기 있는 죽음, 그리고 죽음 후의 세계에 관한 것은 재미없는 박제된 지식이 아니다. 영화로, 실화로, 다큐멘터리로, 책으로 소개된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고 하나하나가 감동이 넘치는 스토리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어떤 것은 그랬지. 맞아. 나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야 라고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고 아, 이제는 나도 내 경험을 비로소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죽음 담론의 마중 물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것들은 아, 이런 것들도 있었어? 아직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다. 먼저 간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을 극복하는데,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의 죽음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된다라고 여길 수도 있다. 우리는 죽음과 죽음 그 후의 삶에 대해서 이제는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바로 내 죽음을 자발적으로 준비하고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 그 순간뿐만 아니라 이 소중한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다.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준비하지 않은 채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단 말인가?


끝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새로운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 어디에도 죽음이나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현학적인 자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먼저 알게 되었으니 이것을 나누고 싶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동시대인으로써 한발 한발 기쁜 마음으로 같이 살아가자는 따스한 배려 때문이었다. 최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늦추지 않고, 호의적 회의론자로 죽음과 죽음 그 이후의 세계를 바라보자는 차분한 설득을 하고 있다. 왜?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큰 손실이기 때문에. 너무 아깝기 때문에 같이 알고 같이 기쁘게 살아가자는 저자의 의도가 절실히 다가왔다. 이제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시간이 없다. 죽음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언제까지 비과학적인 이야기라고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무시할 것인가? 저자인 정현채 교수님이 올해 방광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 및 수술을 견뎌내면서 명실공히 이제 암환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은 당당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펼칠 자격을 얻은 것 같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뜻하지 않는 암 진단. 서울대 의대에서의 조기 퇴직 결정. 큰 수술과 항암치료를 건너는데 죽음학 공부가 결코 헛되지 않고 담담하게 준비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제 죽음학 공부는 정말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바쁜 걸음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조곤조곤 말하고 있다. 왜 죽음학 공부를 안 해서 커다란 손실을 감수하려고 하는가? 언제까지 무서워하기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나 피하기만 할 것인가?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카르페 디엠 (현실을 즐겨라)과 결코 다른 말이 아니다.


먼저 알게 된 선배, 가족, 친구의 입장으로 쉽고도 재미있게 차근차근 이 책을 써주셨지만 책 자체가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삽화가 더욱 의미와 재미를 더한다. 풍부한 실례와 참고문헌 소개가 더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새내기도, 어느 정도 죽음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 책은 중요한 첫 마중물이 될 것이다. 정말 이 책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사족이지만, 이 책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죽음을 잘 준비하자고 주장한다고 해서 죽음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말해준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은 죽음을 맞이한 임종자 당사자나 가족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또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은 지금 견디기 어려운 문제와 슬픔, 무기력 때문에 자살을 택하려는 많은 분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다. 오히려 죽고 나면 그 문제를, 그 아픔을 해결할 육신이 없어진 상태로 그것을 지켜봐야만 하기 때문에 더 힘든 고통에 빠지게 된다. 힘들더라도 직면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죽음 후에도 다시 태어난 후에도 그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려서 자살을 막게 된다. 실제로 정현채 교수님은 죽음을 앞둔 환자 한 명, 가족 두 명을 위해서도 장시간 운전해서 죽음학 강의를 해준 적이 있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본인도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여중생 한 명을 위해 그 반에 가서 강의를 해준 적이 있다. 그 가족과 임종자 당사자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 후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그 여중생이 다시금 웃음을 되찾고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자살자의 빈도가 그렇게 높은데도 장례식장에 가면 자살로 죽었다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자살자, 그리고 그 유가족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가 크다. 이 책은 병이나 노화로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바로 당장 현실적인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자살을 방지하고 자살자 유가족에게도 깊은 위로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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