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넬로피 피츠제럴드의 <북샵>을 읽고 / 영화 북샵 원작 소설
영화 『북샵』 원작 소설
인간 세상은 절멸시키는 자와 절멸당하는 자로 나뉘어 있고, 언제나 절멸시키는 자가 우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안 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p.63
영화 <북샵>을 본 게 작년이었다. 책 좋아한다고 책이나 서점, 도서관을 소재로 하는 책은 다 좋아하듯이 책 나오는 영화도 일단 좋아하고 보는 그 '단순함'이 선택한 영화였는데 생각한 것보다 더 재밌었다. 작년 여름에 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을 읽고 작가에게 완전히 빠져있었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브런디시가 서점 주인 플로렌스로부터 추천받은 레이 브래드버리에 홀딱 빠져버리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인 것처럼 재밌었던 거다. 이번에 북포레스트에서 사랑스러운 디자인으로 원작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아쉽게도 원작 소설에는 레이 브래드버리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고 미리 알려주셨다. 나로서는 무척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때는 1959년 영국.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플로렌스는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올드 하우스'라는 건물을 대출받아 서점을 연다. 서점을 하겠다고 하면 다들 걱정부터 하고 이해받기 힘든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신념을 가지고 책을 고르고 대여제도도 만들어보면서 플로렌스 나름대로 서점을 운영해 나가지만 이 마을의 실세 가맛 부인은 '올드 하우스'를 동네 예술 센터로 만들기 위해 플로렌스를 대놓고 방해한다. 우영우 못지않은 온갖 권모술수로 책 좀 팔아보겠다는 플로렌스를 도통 가만히 놔두질 않는 거다. 브런디시는 이 마을 명문가의 후손으로 저택 안에서 두문불출하는 노인이다. 시니컬한 브런디시에게 레이 브래드버리를 소개해준 것을 계기로 플로렌스와는 우정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사실 애정이라고 보는 게 더 맞는 듯 하다) 마을의 실세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브런디시는 플로렌스 지지해 주지만 플로렌스가 서점을 지키기란 어려워 보인다.
묘사되는 마을의 분위기가 영화 분위기와 무척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원작 소설을 읽으면 분위기가 많이 다른 작품도 있는데 이 작품은 굉장히 비슷했다. 작가가 실제 거주했던 마을을 모델로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롤리타>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다. 문학적으로 훌륭한 작품으로 볼 것이냐, 옳지 못한 것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 이야깃거리이므로. 영화는 브런디시와 플로렌스의 서사를 좀 더 비중 있게 다뤘다. '레이 브래드버리'라는 흥미로운 조미료를 첨가해 돈독하게 이어지는 그들을 보며 흐뭇했다면 그걸 빼고 보니 다소 아쉽긴 해도 비로소 이야기 전체가 보이는 느낌이다. 서점 일을 도와주는 아이, 크리스틴은 영화에서도 책 속에서도 아주 똑 부러지고 독특했다. 영화에서 강렬한 결말을 선사하기도 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캐스팅도 아주 잘 된 것 같다. 좀 더 재밌는 이야깃거리와, 인상적인 결말 때문에 영화가 개인적으론 좀 더 좋지만 영화 원작 소설을 읽을 때 늘 그렇듯이, 영화와 어떤 점이 다른지 또 어떤 점을 잘 영상화했는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플로렌스는 내가 봐도 장사를 할 성격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도 용기 있게 밀고 나가는 뚝심 있는 성격이라 응원하며 봤는데 그랬기에 플로렌스가 말한 절멸시키는 자와 절멸당하는 자에 대한 작은 반전 하나 없이 끝난다는 건 역시 좀 씁쓸하다. 결말 때문에라도 영화를 한 번 더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