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의 <파친코>를 읽고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드디어 읽어보게 된 파친코. 사실 이전에 출간되었을 때 나는 전자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자책은 나오지 않은 채로 절판되었는데 다행히도 인플루엔셜에서 발 빠르게 개정판을 내어주어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2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급한 건 출판사일 테니 더 이상 징징거리지 않기로 한다.
이전부터 읽어본 사람들로부터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읽기 시작하니 엄청난 속도감에 푹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책이란 걸 바로 느꼈다. 이 이야기는 독립운동을 했던 열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가 어찌 돌아가든 정치가 어떻게 되든 그저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켜야 했던 조선인의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책이 좋은 이유다. 부산을 터전으로 하고 있는 선자네 이야기로 일제 식민지 하의 조선인의 삶을, 북으로부터 내려온 백씨 집안이나 경희, 창호 같은 인물들로 남북의 이념 문제까지, 역사적 배경이 이야기 속에서 유려하게 흐른다는 점이 좋았다. 그런 혼란한 역사 속에서 삶의 터전을 떠나 오사카라는 일본의 땅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낸 이야기에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나.
선자와 경희의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는 단연 돋보였다. 가족들의 생계 앞에서 그녀들은 누구보다도 현명했다. 생의 위기 앞에서 백요셉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답답하기는 했지만 가족을 책임지려는 그 마음만은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들 드라마를 볼 때 나는 일부러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은 젊은 선자를 맡은 배우, 나이 든 선자를 맡은 배우, 그리고 한수를 맡은 배우 딱 이것만 아는 상태에서 책을 읽었는데 처음에 한수와 선자의 러브스토리에 흠뻑 빠졌다가 이내 실망했다. 한수라는 남자가 러브스토리의 정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수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바닥에 대한 치떨림, 정치나 이념에 대한 생각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거진 chaeg <끼니 너머의 세계> 덕분에 파친코를 조금 더 색다른 감각으로 즐길 수 있었다. 파친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음식을 주제로 쓴 글이었는데 그 글을 읽고 파친코가 더 읽고 싶었다. 시원한 보리차, 흰쌀밥, 보리밥, 떡, 뽀얗게 우려낸 설렁탕, 김치와 장아찌 같은 것들이 파친코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한다. 선자가 백이삭과 결혼을 하여 어떻게든 쌀밥 한 그릇 먹이고자 했던 모친 양진이 조 씨에게 찾아간 장면은 눈시울이 시큰했다. 양진의 간절한 마음도 그랬지만 시대가 그렇다 보니 떡을 한다는 소리가 반가워 쌀을 내어주러 가는 조 씨도 마음 아리긴 매한가지였다. 또 한 번 마음이 쓰렸던 장면은 오사카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던 선자가 리어카를 끌고 장에 나가 처음으로 '김치 사이소'를 부르짖을 때였다. 부끄러움과 서러움과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히 느껴졌다. 선자의 어린 시절에 자갈치 시장에 다니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어릴 때 매일 할머니 손잡고 자갈치 시장에 따라다녔기 때문에 어린 선자가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페이지가 쉴 새 없이 넘어간다 싶더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였다. 2권에서는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듯해서 너무 궁금하다. 창호의 이야기도, 또 한수의 이야기도 더 궁금하다.
선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수도, 심지어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선자는 그렇게 여자가 됐다. 한수와 이삭과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도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p.362-363
2권에서는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노아는 계속 공부하여 와세다 대학에 진학했다.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선자나 경희 세대와는 달리 노아와 모자수는 그 어려운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절대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몸으로 느끼며 성장했다. 노아는 일본인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일본인이 혐오하는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에서 나고 자라 일본인과 다름없는 일본인으로. 모자수는 모자수대로 파친코에서 부를 그러모아 무시할 수 없는 조선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대 충격의 222페이지였다. 너무 놀라서 그날은 책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노아는 도저히 자신의 뿌리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홀연히 떠나고 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노아처럼 외골수적인 사람이 나는 가장 무섭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또 다르다. 자신의 뿌리가 조선임을 알고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적 시선도 분명 여전히 남아있다는 걸 알지만 모자수나 노아만큼 일본에 대한 반감은 크지 않다. 그의 세상은 애초에 그런 일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선한 일본인을 알고 있다. 고로상과 하루키, 그리고 에쓰코 같은 사람들. 2권은 이렇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정서로 자란 재일의 정서적 혼란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는 느낌도 그렇다고 일본인이라는 느낌도 느낄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정서. 많이 배우고 외국도 다녀오면 일본인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솔로몬의 세대에서도 차별은 여전했다. 솔로몬은 파친코가 차별적 시선을 받도록 일조했다 생각하지만 결국 솔로몬도 파친코에서 함께 하게 되는 결말도 결국은 그런 거 아닌가. 그는 피비와도 함께 할 수 없었다. 그가 조선의 핏줄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일본에 대한 피비의 날 선 적대감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고 그런 자신의 혼돈을 완전히 이해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재일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함께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채 일본으로 건너간 선자부터 솔로몬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삶을 우리도 알아야 한다.
* 창호, 하루키의 아내가 하루키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 후, 그리고 노아의 아이들, 그리고 한수의 말년을 조금 더 알고 싶다.
* 개인적으로 하나같은 캐릭터 참 안 좋아함...
* 이제 드라마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