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홍익대학교 신기술 융합 디자인 취창업 특강
해가 바뀌며 3년 차가 되었다.
그래서 2024 버킷리스트로 [강연하기]를 추가했다.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지겹게 외치는 '성장'을 하고 싶기 때문!
3년 차의 사원은 세 번의 사이클을 경험한다.
첫 번째는 배우고,
두 번째는 연습하고,
세 번째에야 비로소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3년 차는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상징적인 연차라고 생각했다.
다음 계단을 밟기 위해 성장을 위한 책을 마구 읽었다. 그중 가바사와 시온 저서의 아웃풋 트레이닝이라는 책에서 가르치기를 가리켜
최강의 아웃풋이자
자기 성장에 가장 효과적인 아웃풋
인풋과 아웃풋과 피드백이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행위
라고 설명하는 내용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강연을 해본 적은 없지만 미술학원에서 4년간 서울대, 한예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가르친 적은 있었다.
더 섬세하게, 더 진짜같이 그리는 스킬을 가르치진 않아서 나 역시 그런 스킬은 제자리걸음이지만,
한 장의 도화지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지는 수도 없이 지도하다 보니
한 장의 키스크린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많이 기를 수 있었다.
내가 성장하고 싶은 분야를 가르치고 싶었다.
지금 몸 담은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으니 UX를 가르치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기획한 강의 내용은 첫 강의에서 개인적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좋은 기회로 홍대에 신기술 취창업 특강을 나가게 되었다.
주변의 대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을 듣고 싶냐는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한 뒤,
메모장으로 강연 프레임 워크를 짰다.
자료 만드는 것은 밥먹듯이 하는 일이었다. 퇴근 후 이틀 만에 저녁밥을 먹으며 완성했다.
나는 자료를 만들 때 페이지당 최소한의 요소를 담아 최대한의 임팩트를 전달하려 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유려한 피피티 아트와 달리 제작기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 동안 간략한 대본을 쓰고 3번의 리허설을 했다.
이때까진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문제없었다.
강연날 아침 생리가 시작됐다.
강의를 하러 가는 지하철에선 5번의 장경련을 겪었다.
앞자리 아주머니가 가쁜 숨을 쉬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셨다.
참을 수 없이 쥐어짜듯 아픈 배를 움켜잡을 때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고민했다. 오늘 강연을 할 수 있을까? 강연하다 이렇게 배가 아프면 큰일이다.
결국 중간에 내려 약을 먹고 배를 안정화시킨 후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약효가 들었던 것인지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적당한 규모의 인원이라 또 장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강연 준비를 하는데 현장에 준비된 HDMI 연결선이 20분 넘게 말썽이었다.
넉넉히 여유를 갖고 미리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결국 키노트로 준비한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전환하여 이메일을 보냈다.
폰트, 애니메이션이 모두 깨졌지만 수정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내용 전달하기엔 무리가 없다 판단하고 그렇게 왜곡된 디자인의 자료 화면과 다소 성급히 첫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강연을 시작하며 나는 긴장했다.
배가 또 아플까봐 걱정되었고, 동시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됐다.
회사에서도 발표를 도맡아 하기 때문에 별로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는 의외로 너무 조심스러웠다.
너무 잘나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너무 못나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담담히 나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긴장한 탓에 시답잖은 이야기를 끼워 넣었다.
제가 준비한 폰트가 다 깨졌네요.
원래 이렇게 생긴 이미지가 아닌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하하 이 인증 팝업이 계속 뜨네요.
내용만 보면 별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황한 기색을 억누르는 초보 강연자가 넉살 있는 뉘앙스로 저런 이야기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되짚어보니 저런 무관한 이야기가 강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을 리는 없고,
사소한 부분을 굳이 언급해 되려 청취자의 흐름을 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이 마무리될 즘엔 조급했다.
중반부에는 강연 환경에 적응해서 내 페이스를 찾았는데 중후반부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노트북 연결 이슈, 강의와 무관한 이야기 등이 쌓여 리허설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강연 시간을 트래킹 하고 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중후반부의 내용이 핵심이었는데 그 부분을 랩 하듯 와다다 쏟아내며 전달했다.
중간중간 말이 너무 빠른지, 내용이 잘 전달되었는지 여쭤봤지만
그 자리에서 강연자에게 직접적으로 너무 빠르다고 하거나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하긴 쉽지 않다.
이때부터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는 행태가 되었으리라 추정한다.
강연이 끝나고 회고해 보니 강연 방향이 너무 개인적이었다.
나의 성장에 더 집중한 것이다.
청자가 나로부터 듣고 싶은 정보를 제공하는 게 가르치기의 기본인 것을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느라 뒷전으로 미뤄두고 잊고 있었다.
취업을 목전에 앞둔 학생들은 어떤 것이 궁금할까?
너무 당연스럽게도 어떻게 하면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을지가 궁금할 것이다.
앞선 주변 대학생들에게 물어본 강의 내용 인터뷰는, 이미 나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답변해준, 좀 더 개인적인 궁금증이었다.
강연을 하기 전에 질문 사이트로 연결되는 QR을 보여주고 웹사이트로 질문을 받아둔 후
Q&A 시간에 하나하나 답변을 진행했다.
강연시간에 해소되지 않은 질문들은 결이 다 비슷했다.
어떤 식으로 포폴을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포폴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면접 분위기 궁금해요! 압박면접 썰 풀어주세요.
삼성은 면접 전에 실기 테스트 하나요?
UX 취업하고 싶은데 개발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필요할까요?
취업이 쉽지 않은데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나는 내가 몸 담은 회사에 오기까지의 거시적 여정과
내가 경험해 본 다양한 UX 필드를 위주로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학생들은 내가 몸 담은 회사에 들어올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더 궁금해했다.
특히 청취자의 90%가 제품 디자인 전공생이었기 때문에 UX 필드에 대한 것도 좋지만,
이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있는 기업 특화 실전 팁이 더 유용했을 것이다.
강연 내용을 구성할 때 괜한 사명감에 휩싸여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는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섣부르게도, 감정적 고양을 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가진 배경의 특수성을 보고 모인
졸업이 목전인 학생들은, 감정의 고양뿐만 아니라 구체적 방법 또한 강연에 바라던 바였을 것이다.
강연 내용이 결코 불필요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다음에 대학 졸업학년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면 그런 방향을 더 고려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번에 준비한 내용은 1-2학년을 대상으로 하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아쉬운 점만 남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도전이기 때문에 개인의 성장에 있어선 아쉬운 것보다 도전했다는 성취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강연 전에 미리 준비했는데 그 효과가 예상보다 좋았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언제든 질문하라 했지만 강연을 들으며, 그리고 강연이 끝나고 바로바로 손들어 질문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청취자가 궁금한 것을 놓치지 않게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별도의 로그인 없이 링크 하나로 진입가능한 웹사이트였으면 했다.
이번에는 페잉이라는 시스템을 활용했는데 비로그인, 웹사이트, 익명 질문 등의 조건은 모두 부합하였으나 광고가 너무 많이 떠서 질문 경험이 좋았을지 걱정된다. 다음에는 다른 경로도 모색해 봐야겠다.
이번 강연의 주제는 Whyfinder&Wayfinder였다. 목적지와 방법을 찾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점이라는 경험, 선이라는 방향, 면이라는 필드, 입체라는 지향점을 비주얼 콘셉트로 잡아 자료를 제작했다. 그리고 식물을 메타포 삼아 씨앗, 꽃, 꽃다발, 들판으로 개념을 확장하며 내용을 전달했다. 주변에 리허설하며 피드백받았을 때 이러한 메타포가 특히 내용 이해를 돕고 임팩트 있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도 되돌아보면 그냥 설명을 듣는 것보다 시각적 이해를 돕는 비유가 있을 때 더 집중이 잘 되고 이해가 수월했던 것 같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긴 한데 실물 청취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 앞에서 대면으로 강연 시간을 지켜 직접 발화하며 리허설한다. 강연이 길수록 더더욱. 내 강연의 어느 부분에서 내용이 끊기는지, 집중이 끊기는지, 장표가 더 필요한지, 환기가 필요한지 청취자의 반응을 보며 체감할 수 있다. 리허설하지 않아도 감이 오는 순간까진 계속 리허설하며 스피치를 키워야 한다.
다음 강연이 언제일 진 모르겠지만 아쉬운 점은 보완하고 잘했던 점은 지속적으로 반영해야겠다.
3년차가 되고 계획한 첫번째 버킷리스트 달성을 기념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