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꿈에 중년이 되어서 대답하다

꿈은 배신하지 않아요. 배신은 내가 합니다.

by 뽀닥


요즘은 유튜브며 게임이며 예능프로며~ 워낙에 재밌는 놀 거리가 풍부한 세상이다 보니 밤늦도록 놀다가 잠드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9시만 되면 얄짤없이 자러 들어갔다. 믿기지 않겠지만 80년대엔 텔레비전에서 9시 뉴스 하기 바로 직전 ‘어린이 여러분. 이젠 자야 할 시간입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최면 방송인가. 그 소리를 들으면 홀린 듯이 잠이 쏟아지곤 했다. 일찍 잠든 만큼 일찍 깼다. 간혹 새벽에 깰 때도 있었다. 새벽의 집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낯설었다. 낯선 어둠은 처음 보는 공간을 보여 줬고, 들어 본 적 없는 소리도 들려줬다. 그런 낯선 분위기가 좀 무섭기도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 무섭고도 신기한 집에서 가만히 누워 상상, 공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렸을 땐 잠들기 전과 잠에서 깬 후 꼭 상상, 공상을 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이 세상을 구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신데렐라가 되어 마법사와 짜고 계모와 못된 언니들을 혼쭐내는 공상도 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공상과 상상을 하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 이야기들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글로만 쓰는 것보다 그림과 글, 그리고 장면이 나뉘는 만화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 스케치북으로 한 권을 채우면 반 친구들에게 내 만화를 보여주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절친이 맹장 수술을 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스케치북 만화를 보고 싶어 해서 병원에 가져다주었다. 내 만화는 병실에 있던 여자들이 다 돌려봤다. 쑥스럽고 부끄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스케치북 만화 연재는 중학교 졸업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늘 만화가를 꿈꾸었다. 어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꾸준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부산 안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동네에서 자란 나는 어떻게 해야 만화가가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국영수만 공부하면 뭐라도 된다고 외치던 시절이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란 유명한 만화가 선생님의 문하생이 된다는 것인데 집에서 절대적으로 반대하셨다. 부모님은 어린 여자애가 남의 집에 가서 문하생이고 뭐고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때 공주전문대에 만화 과가 전국에서 처음 신설되었다( 지금은 공주대학교 만화 예술학 부이다). 나를 위해 만들어진 과 같았다. 만화 과로 가겠노라고, 공주전문대로 진학하겠노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허락하지 않으셨다. 엄마, 아빠는 자신들의 딸이 '만화가'가 되기 위해 '전문대'에 간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셨다. 만화가 어떤 예술이나 작품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수준 낮은 그 무언가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만화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확신이 없기도 했다. 막연한 꿈과 두려움 사이 내 인생은 성적에 맞춰 선택되었다. 그리고 떨어졌다.


재수하면서 역시 만화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리고 쓰는 일이었고, 달리 다른 꿈이 생기지도 않았다. '만화 과'는 안된다고 하셨으니 스토리를 짜는 데 도움을 줄 '과'를 선택해야 했다. 부산에서 나름 좋다는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원서를 넣고 합격했다. 부모님은 그 '대학'에 들어간 나를 자랑스러워하셨지만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다닐 수 있어서 기뻤다. 뭔가 '문학'스럽고 뭔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다닌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는 국어학이 70%이고 국문학이 30%의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었다. 허구한 날 조상들의 언어 변천사와 문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배웠다. 조상들의 언어와 문법 따위 내 알 바 아니었고 이야기 짜는 것을 알려주는 수업이 필요했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완전히 망한 것이었다. 의지도 의욕도 없는 망한 대학생활이 지속 되었다. 4학년이 되었을 때 서울에 있는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1년 과정으로 만화를 가르쳐준다는 것을 알았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한겨레 문화센터 출판만화 전문반’을 등록했다. 이번엔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으셨다. 졸업하자마자 책상과 책, 옷들만 싸들고 상경했다. 작은 쪽방과 옥탑방을 전전하며 작업하고 내 원고를 알리며 몇 년을 보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기간이다.


하지만 꿈은.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그 일은 나의 자존감을 여지없이 무너지게 했다. 주변에 흔히 말하는 ‘천재’들이 넘쳤다. 그들은 그림을 정말 잘 그리고, 글을 정말 잘 쓰고, 만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연출’을 정말 정말 기가 막히게 했다. 나는 너무 늦게 시작했어... 너무 늦게 시작해서 이런 거야... 후회와 자책을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늦게 시작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재능이 그들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늦게 시작한 것을 핑계 삼았다. 그 핑계는 나를 더 초라하고 움츠러들게 하였다. 내 만화를 그려 당당히 연재하고 싶었지만 그럴 공간은 나오지 않았고 어린이들의 학습만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어쨌든 서울생활은 돈이 든다.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네가 이렇게 만화 그리고 살 줄 알았으면 그때 반대하지 말걸...’ 아빠가 미웠다. 엄마도 미웠다. 하지만 그 미움은 실력 없는 나를 미워하다가 지쳐서 나온 미움이었다. 나를 미워하기보다 부모님을 미워하는 것이 더 마음 편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얼마 후 나는 만화에서 손을 놓았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넘치고 넘쳐서 마를 줄 몰랐던 시간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나는 늙고 있다. 20살의 그때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원래 모든 생명은 시한부 인생 아닌가. 중년은 내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해 준다. 흰머리가, 주름이, 이유 없이 아픈 곳들이 수시로 내게 말한다. 시간이 눈 깜빡할 새에 지나가지 않느냐고, 어제가 1월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여름이지 않으냐며, 이러다가 하는 것 없이 세월 보내고 정신 차리면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거라고 겁을 준다. 아~아~ 그렇지.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이판사판이다. 다시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기로 했다. 예전엔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벌지 못하면 포기해야 하는 줄 알았다. 모지리같은 생각이었다. 돈은 다른 것으로 벌면 된다. 하고 싶은 것은 그냥 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초등학교 때 스케치북으로 만화를 그렸던 그때처럼 그냥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떠냐. 나만 재밌으면 그만이다. 더는 부모님 탓, 재능 많던 친구들 탓, 실력 없는 내 탓을 핑계 삼아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중년이 되어서야 나는 어릴 적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 그리고 내 꿈에 대답한다.


나의 못남으로 너를 외면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아직도 만화가 좋다고. 그러니 앞으로는 재밌게 잘 지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