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는 아니지만 구독 부탁합니다.

by 뽀닥

작년 12월 다니던 직장의 폐업으로 실업자가 된 후 지금까지 몇 명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아~표현이 적절치 못한 것 같은데, 많이 만나서 모르겠는 게 아니라 적게 만나서 모르겠다는 의미다. 거의 매일 집에 혼자 있다 보니 혀는 굳었고, 머리는 이미 안 돌아가고, 이젠 헛것마저 보이는 것 같다.

출퇴근하던 시절은 지옥철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낯선이들에게 신발을 밟히고, 어깨를 부딪치고, 제발 밀지 좀 말아달라는 불평을 들었고, 직장에서는 니탓을 내 탓이라고 우기는 동료들과 입씨름하며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이 일이었다. 말 섞어봐야 짜증만 나는 사람들이라 상종을 말아야지 하며 입 다물고 숨 막히게 지내다가도 몇몇 친한 동료들과 소소한 일상을 수다로 풀면 그 짧은 소통만으로도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곤 했다. 다들 그렇듯 나도 과한 스트레스와 찔끔찔끔의 행복이 있는 하루를 보내며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실업자가 되자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더 이상 지옥철에서 누군가에게 발을 밟히거나 짜증 섞인 불평을 듣지 않아도 되었고, 툭하면 니탓, 내 탓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겉으로 보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껴야 마땅한 상황 같은데 나는 왠지 불안해졌다. 불안감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장 매달 들어오던 수입이 끊어진 것, 10여 년간 규칙적이던 생활리듬이 무너진 것 등. 하지만 의외로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든 것은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긋지긋한 게 사람이라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이 다 지긋지긋했고 맨날 남 탓만 해대는 직장동료들도 지긋지긋했다. 사람 좀 안 보고 살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사람 좀 안 보고 살게 돼서 기뻐해야 마땅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해졌다.

대화가 하고 싶었다.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같은 상황에 놓여서 서로의 말에 ‘아~’하면 ‘어~’라고 척 알아듣는 그런 사람들과 말이 하고 싶어 졌다. 집에 오자마자 뭐가 기분 나쁜지 내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뚱~한 표정으로 게임만 하던 남편 욕도 하고 싶었고, 한번 시작하면 배틀 그라운드가 형성되는 시댁 얘기도 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아픈 곳도 얘기하며 같이 늙어감을 위로받고 싶었고, 심지어 이제는 니탓내탓하면서 싸우는 것조차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같은 상황에 처해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 위로와 공감을 주고받는 그런 사람, 그런 관계가 절실했다. 하지만 망할 놈의 코로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좀 더 많은, 그리고 좀 더 자주 소통하고 싶은데 말이다.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한 가지 목적만 가지고 돌진하는 좀비들처럼 내장이 반쯤 뜯겨나간 것 같은 휑~한 가슴을 부여잡고 대화, 공감, 위로! 이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덧 나는 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짧은 컷툰만 그리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꼬꼬맹이 시절~열쇠 같지도 않은 코딱지만 한 열쇠를 달고 몰래몰래 쓰던 일기 같은 게 아니라 '여보시오들~나 글 쓴다오~내 거 좀 읽어주시고 공감 좀 해주시오~'라고 사대문에 방을 걸어놓고 싶을 정도로 열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소통. 나에게 글쓰기란 이런 것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싶어 이런저런 플랫폼을 기웃거려봤지만 그중 '카카오 브런치'가 소통하며 글쓰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많은 수다쟁이 작가님들이 계시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니맘이내맘이오"를 외치고 싶은 글들이 넘쳐난다. 여긴 수다의 천국이고 소통의 천국이다. 숨통이 트인다. 큰 소리로 유야~~~~호라도 외치고 싶다.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는 생활비를 벌고, 등록금을 갚기 위해 주 5일 글을 발행하고 구독자를 모집했다고 한다.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통하며 숨 쉬고 살기 위해서 글을 발행하고 구독자를 모집한다. 브런치에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씩 나름 아침 7시 시간도 딱 맞춰서 꼬박꼬박 올린다. 수다도 타이밍이다. 내 말만 하고 살면 모임에서 눈총을 받는다. 나는 내 말을 일주일에 두 번만 하기로 했다. 남들의 말을 들어줄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

뻥이다. 내 말을 글로 조리 있게 쓸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다. 글만 잘 썼으면 하루 종일 내 말을 주절주절 적어냈을 것이다. '일간 이슬아'가 다 뭐냐~실시간 김뽀닥이 될 뻔했다. 수다 떨고 싶은데 타인을 배려하긴 무슨~내가 먼저 말 못 해서 안달 난 사람 주제에 괜히 멋진 척했다. 사과한다. 어찌 되었든 나의 말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이 300명이 넘으시고,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들이 그중 10%나 되신다. 댓글을 써 주시고 같은 경험도 공유해주신다. 직장 다닐 때와 비교도 안되게 정말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고, 그리고 소통을 하고 있다. 비대면이지만 말이다. 비대면이면 어떤가. 우리가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Z세대는 아니지만 디지털 시대인 Z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Z시대에서의 최대한의 소통, 비대면으로도 충분하다.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숨통이 트인다. 이 숨은 자발적 유산소 운동으로 쉰 숨만큼 값지다. 폐활량이 좋아져서 그런지 피부도 좋아진 것 같다. 여러모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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