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랏챠차~!밥상 뒤집기!

그때 아빠는 왜 그랬을까?

by 뽀닥


"어쩜 니는 니 아빠랑 똑~~같노."


10대 때 엄마에게서 수시로 듣던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결코 칭찬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아빠’를 빗대어하는 말은 접두사로 ‘개’가 붙으면 욕이 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원리다.

대체로 ‘니 아빠랑 똑~같노’라는 말을 들을 때의 내 행동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하루 종일 누워서 만화책만 본다거나, 설거지 좀 해놓으라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다거나, 텔레비전 보다가 물이 마시고 싶으면 방에서 공부하는 남동생을 불러 물을 떠 오게 하거나~뭐 그런 게으른 모습을 보일 때였다. 아빠도 게으름뱅이였다. 아빠는 발가락만 뻗으면 닿을 위치에 있는 리모컨을 방에 있는 나를 불러 가지고 오게 시키셨다. 게으름도 유전이 되는걸까? 그렇다면 나는 아빠의 게으름 유전자를 90% 물려 받았을 것이다.


아빠가 나에게 물려주신 유전자는 또 있다. 뭔가 신기하고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 해 보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가족회의’를 하자며 아빠는 식구들을 다 불러 모았다. 남동생과 나, 그 당시 같이 살고 있었던 고모와 막내 삼촌은 영문도 모르고 불려 와 둥그렇게 앉았다. 엄마는 가게를 봐야 해서 가족회의지만 참석 안 하셨다. 다들 앉혀놓고 아빠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씀 하셨다. “우리도 가족회의란 것을 해보자. 그래~다들 뭐…응? 저기 뽀닥이도 뭐 하고 싶은 말 없꼬?” 뜨악했다. 부산싸나이 아빠가 나에게 “뭐~하고 싶은 말 없꼬?”라고 물으시는 것 자체가 그냥 아주 징그러워 두드러기가 날 판이었다. 우리는 무뚝뚝함의 전형인 경상도가족이다. 언제는 말을 하고 살았나? 우리가 남이가, 가족 아이가~눈치껏 지지고 볶고 살고 있는데 뜬금없이 분위기 잡으며 말을 하란다. 아빠를 제외하고 다들 낭패인 표정이다. 요새 주말 드라마를 자주 보시더라니…. 느낌이 왔다. 아빠는 ‘가족회의’라는 것을 따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한창 보시던 주말드라마에서 툭하면 ‘가족회의’를 했다. 옛날의 주말드라마는 다 그랬다. ‘목욕탕집 남자들’이나 ‘왕가네 식구들’ 같은 드라마 속 대가족들은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면 가족회의를 한답시고 과일과 커피를 가지고 와서 3대가 거실에 빙~둘러앉곤 했다. 아빠는 그런 모습이 참 좋아보였나보다. 하지만 구멍가게를 하며 맨날 얼굴 보고 사는 가족들이 회의할 것이 무엇이 있으며 심각하게 빙 둘러앉아 한 마디씩 할 만큼 큰 사건사고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날 가족회의의 분위기는 막내 삼촌은 형이 오라니깐 어쩔 수 없이 왔고, 고모는 동생이 앉아보라니까 일단 앉아 있고, 남동생은 아빠가 부르니 습관적으로 무릎 꿇고 앉아 있는 형태였다. 그때 고등학생이며 사춘기의 절정을 맞아 집안에서 가장 큰 갑질을 행사하던 내가 “갑자기 왜 안 하던 행동을 하노! 나는 내 방에 들어갈끼다”고 큰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족회의는 그렇게 아빠와 딸의 싸움으로 끝을 맺었다. 화목함을 연출하고자 한 가족회의는 실패로 끝났지만 아빠는 본인이 따라 하고 싶었던 것을 해봤으니 만족하셨을 것이다. 호기심은 한번 충족됐으면 끝이었다.

그리고 따라할 것은 가족회의 말고도 많았다. 밥상을 뒤집은 것도 그중 하나였다.


그날은 딱히 무슨 사건사고가 있는 날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녁밥을 먹으면서 아빠는 괜히 짜증을 내셨고 다른 가족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잘 짜증을 내시는 아빠의 성격을 알기에 침묵으로 그 짜증을 흘려보냈다. 가족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눈치채셔서 더 화가 났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기회는 이때다!라는 표정으로 아빠는 뜬금없이 밥상을 뒤집으셨다. 참고로 우리는 안방에서 밥을 먹었다. 식탁이 있는 집이 아니었다. 으랏챠차~하며 밥상이 호기롭게 뒤집어지자 둥그런 밥상의 (가게를 보는 엄마를 제외한) 다섯 식구의 밥과 국과 수많은 반찬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기 시작했다. 김치에 국물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벽지 구석구석 김칫국물이 튀었고, 장판 사이로 된장국물이 스며들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많은 반찬을 두고 먹는 걸까? 진득거리는 감자조림과 멸치조림이 간장과 고추장 색으로 가족들의 옷을 물들였다. 하얀 쌀밥을 주워 치우는 일이 제일 쉬웠다. 난장판이 된 벽지와 바닥과 가구들과 옷들을 치우면서 가족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할 말이 없는 법이다. 아마 모두들 눈치챘을 것이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나왔다. 밥상 뒤집는 장면이. 가장의 권위 어쩌고 하며 뒤집을 때 설마설마했었는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밥상을 뒤집고 아빠는 엄청 당황하셨지만 아무렇지 않아 하려고 노력하는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드라마에서는 밥상을 뒤집은 행위만 클로즈업될 뿐 그 이후의 상황은 보여주지 않는다. 난장판이 된 세트는 스태프들이 나중에 치우거나 버렸겠지만 현실엔 치워줄 스태프도 없고 우리 집은 버려도 그만인 드라마 세트장이 아니다. 가족들의 눈치가 엄청 보이지만 가장의 권위를 드라마로 잘 못 배운 아빠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피해 가게로 나가셨고 가게 보시던 엄마는 방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구석구석 치우기 시작하셨다. 저녁은 다들 굶었다.

그 이후로 아빠가 드라마 따라 하는 것을 그만두셨는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뒤집힌 밥상과 널브러진 밥과 반찬들을 무표정하게 치우는 가족들을 보시고 한동안 그 좋아하는 술도 안 드시고 친구들도 안 만나시며 가게에 꼼짝없이 앉아 열심히 장사를 하셨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밥상뒤집기 역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의 아빠는 순간의 재미를 모아 일생을 이룬 분이었다. 하지만 그 재미의 뒷감당은 엄마가 늘 하셨다. 호기심에 밥상을 뒤집었지만 더러워진 방도, 신나게 술을 드셨지만 이불 위에 게워내신 토사물도, 친구가 너무 좋아 돈을 빌려 줬지만 돌려받지 못해 가정에 빵꾸 난 돈을 메우는 것도 엄마 몫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사건사고를 다 처리해 주시는 든든한 뒷배였다. 내 눈에 비친 엄마의 일생은 아빠를 만나 한참 밑지는 장사를 하신 것 같은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만에 10킬로 넘게 살이 빠지신 엄마를 보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을라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부의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자식이라 할지라도.

아빠유전자를 거의 90프로 받은 나도 무언가 좋아 보이는 것이나 신기한 것이 있으면 따라 해보고 싶다. 아주 그냥 손이 근질근질할 때도 있다. 어이없고 철없는 행동 같은 것도 많지만~뭐 어떠냐! 재밌어 보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뒤처리를 누가 한담? 아~나도 아빠처럼 사고 쳐도 뒤처리를 도맡아줄 엄마 같은 든든한 뒷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이 있긴 하지만 내 남편은 나의 엄마만큼 만만하지 않다. 아쉽다. 나도 밥상 한번 뒤집어 보고 싶었는데…. 도대체 가족들이 다 같이 밥 먹고 있는데 그걸 으라챠챠~하며 뒤집는 기분은 어떨까? 아빠에게 물어봤어야 했는데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셔서 이젠 영영 알 길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시작을 독려하는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