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건조증이 심하다. 습한 여름이 가고 건조해지는 계절이 오면 눈은 더 뻑뻑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일어날 때 눈을 번-쩍-뜨면 가뭄에 논바닥 찢어지듯 십중팔구 망막이 찢어진다. 일단, 잠에서 깨면 먼저 눈을 감은 채로 머리맡에 둔 인공눈물을 더듬더듬 찾아서 눈이 있을 만한 위치에 대충 조준시킨 후 눈을 뜨자마자 인공 눈물을 쏟아부어야 망막이 찢어지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 번거롭기 이를 데 없다. 번거롭기 이를 데 없지만 그저 나이 탓이려니 여기며 그냥 지냈다. 어느날 다래끼가 나서 안과에 갔더니 기름샘이 막혀서 다래끼도 나고 안구건조도 심해지는 것이라 했다. 레이저를 받고 기름을 짜주면 안구건조가 완화된단다. 심지어 실비보험처리도 된다 하였다. 와우! 이런 좋은 소식이! 3주 간격으로 3회 치료를 받으면 된다니 기쁜 마음으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데…. 아놔~ 시술이 진짜 너무 아팠다. 정말 너무너무 너무 아팠다. 어느 정도로 아팠냐면 눈꺼풀 뒤집은 곳을 바늘로 콕콕콕콕꾸~욱, 콕콕콕콕꾸~욱.. 찌르듯이 아팠다. 내 돈 내고 고문받는 느낌이었다. 고문이라면 아는 것을 말하면 그치겠지만 나는 아는 것이 없었고, 그저 안구건조증이 있을 뿐이었다. 이 고문 같은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내 인생의 마법의 주문이었다.
언제,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왕이 기쁠 때 기분을 차분하게 만들고, 기분이 안 좋을 때 마음이 풀리게 만드는 말을 학자에게 요구하니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해줬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그 뒤로 내 인생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면 주문처럼 왼다. 담석증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을 때도, 치통이 너무 심했을 때도, 망막이 찢어졌을 때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중얼중얼 중얼~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다. 뻘짓거리를 해서 밤에 이불 킥을 하고 나서도, 악덕 상사 때문에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졌어도, 실수를 해서 쥐구멍을 찾고 싶을 때도,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 깊은 실망을 했을 때도 늘 되뇌었다. 되뇌고 나면 좀 나았다. 확실히 나았다. 이 기간은 지나갈 것이고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아무 일도 없듯이, 또는 일은 있었지만 상처는 많이 옅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 마법의 주문을 긍정적으로만 쓴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 말 뒤에 나를 숨겼다. 사고를 치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감정으로 사고를 덮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하며 반성해도 사람이 성장할까 말까 하는데 나는 시간 뒤로 숨었다. 그저 흘려보냈다. 그 시간대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과 일들을 버렸다.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라 여기며 방치했다. 그러고 나서 지금 남은 것은 성장하지 못한 (흔히 말하는 나이에 맞지 않는) 미숙한 자아뿐이었다. 또래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무척 낯설었다. 많은 아픔과 힘듦 뒤에 성숙해진 사람들을 보며 내가 숨어버린 시간 뒤로 남겨진 내 모습이 드러났다. 같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내가 흘려보낸 시간에 그들은 성장했구나를 느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웃고 있지만 나는 분명 긴장하고 있었다. 혼자 떨어져 나와 스스로 편한 길을 간 결과였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좋을 대로 이용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는 버릇은 어느새 몸에 배여 곤란한 상황이 오면 시간을 흘려보낼 생각부터 한다. 비겁함이 습관이 되었다. 조직을 배신하는 것만 비겁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성장했어야 할 내 시간을 배신했다. 나는 비겁한 놈이다. 아. ‘놈’은 아니다. 그게 문제다. 어엿한 중년으로 불려야 하는데 중년이 되지 못하고 그냥 비겁한 ‘년’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