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도 충분히 찌질하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엘리베이터 공포증이 있다. 폐소 공포증이 아니다. 그냥 엘리베이터 공포증이다. 왠지 모르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려고 할 때마다 기관총을 든 사람이 서 있다가 우리를 향해서 난사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완전 어이없는 망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진지하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가능하면 문 바로 앞에 서지 않는다.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서 어쩔 수 없이 문 앞에 섰을 때는 ‘땡~’하는 소리와 더불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내가 제일 먼저 보는 장면이 기관총을 든 미친놈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놔, 왜 가운데 서서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는가! 제일 뒤에 섰으면 앞에 있는 사람들이 총을 다 맞아주어서 나는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망할! 사람들이 아무리 많았어도 꾸역꾸역 비집고 구석자리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게 뭐가 부끄럽다고 체면 차리며 문이 열리는 정면을 바라보고 섰을까! 체면이 밥 먹여주냐! 체면 차리다 죽게 생겼지 않냔 말이다! 미친 미친~오늘 죽는다면 이건 모두 내 탓이다!...라는 별 쓸데없는 상상을 계속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총 든 미친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쭈욱 긴장상태로 있다.
왜 이런 공포증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어릴 때 본 영화나 만화 등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정확하지 않다. 그냥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총을 든 미친놈을 만나는 것만 공포스러웠는데 ‘터미네이터 2’를 본 이후에는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천장에서 긴 칼이 쑤욱 들어와 내 머리에 꽂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공포가 생겼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 2’의 악당인 로봇의 살상 장면은 (그 당시) 정말 기발하며 끔찍했다. 어쩜 그렇게 로봇의 몸이 액체괴물처럼 자유자재로 변형 가능하면서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하고 날카로와질 수 있는거지? 종잇장 같은 얇은 틈으로도 물처럼 부드럽게 들어와선 순식간에 단단한 칼날로 변해 사람을 찔러 죽인다. 으아아! 무서워, 무서워, 너무 무서워! 나는 이런 공포에 약하다. 뭔가 찔리고, 베이는 느낌? 주삿바늘도 싫고, 종이에 베이는 것도 싫은데 그것보다 천만 배 더 강한 고통일 것이라 생각하면 차라리 기관총에 난사당해 한방에 죽는 편이 오히려 속편하겠다 싶기도 하다.
그 이후론 엘리베이터를 타면 천장도 유심히 살피는 버릇까지 생겼다. 웬만하면 틈새 같은 것 없는 쪽이 좋겠다. 구석자리로 이동도 해야 하고, 천장도 살펴야 하고… 엘리베이터란 참으로 피곤한 도구다. 하지만 그 공포스러운 엘리베이터를 피해 계단으로 올라갈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면 죽음의 공포보다 당장의 육체적 안락이 더 중요한 듯하다. 안전불감증은 먼 곳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