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건조증 치료 의료기기'를 샀다. 눈 위로 쓰는 VR기계처럼 생겼는데, 스위치를 누르면 45도 정도까지 열이 올라가서 기름샘의 막힌 기름을 녹여주고 눈가 주변을 마사지까지 해준다는 기기다. 하루 두 번 15분씩 사용하기를 권장한다고 설명서에 적혀있더라. 15분 후 면봉으로 기름샘 주변을 쓱~닦아주면, 거기까지가 안구 홈케어 순서다. 몇십만 원이나 하는 나름 고가의 기기라서 '비싼 건 제값을 할 것이다'라는 믿음 때문인지, '의료기기'라고 적혀있는 것에 안심하는 단순한 플라세보 효과 때문인지 몰라도 증세가 좀 완화되는 느낌이다. 예전보다 자고 일어날 때 안구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은 확실히 덜하다. 맑은 눈을 되찾은 기쁨에 10년 정도 나이가 어린 지인에게 이 안구건조 기기의 임상실험(?) 결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여기저기 아픈 곳 투성이인 중년의 나이지만 눈만이라도 회춘했음을 자랑 안할 수 없었다. 근데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하더라. "45도나 되는 열을 계속 받고 있으면 눈가에 주름 생기는 거 아네요?"
어머나;; 그 생각을 못했네;;;
얼굴에 열이 1도만 올라도 피부가 상해서 주름이 생기니 얼굴의 온도를 내려줘야 한다는 화장품 광고를 여름만 되면 봤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여름철 화끈화끈해진 얼굴에 오이며, 알로에며, 냉장고에 넣어둔 쿨링팩 등을 얼마나 붙여댔었냔 말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자세한 것은 몰라도 피부 관리를 위해선 열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시나브로 학습되었나 보다. 금이야 옥이야~애지중지하며 피부를 차갑게 만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45도의 열을 아침저녁 15분씩, 그것도 내 손으로 가장 연약하다는 눈가에 갖다 대다니!!!
아닌 게 아니라 걱정이 되긴 했다...만 기기 사용을 멈출 수는 없었다. 눈알이 너무 아프다 보니 눈가 주름 걱정할 때가 아니었기때문이다. 미용보다 치료가 시급한 나이가 된 것이다. 왠지 서글픈데...흠흠.
하지만 건강을 위해 미용을 포기한 것이 중년에 닥쳐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다. 안구건조 때문에 눈 화장은 20년전부터 포기했다. 아이라인이나 마스카라, 아이섀도 등은 쓸 수가 없었다. 툭하면 인공눈물을 떨어뜨려야 하는 눈에 눈 화장은 사치였다. 눈뿐만이 아니다. 스키니진이 유행했을 때도 혈액순환이 안되어 퉁퉁 붓는 것이 힘들어 널널한 통바지를 입었고, 와이어가 있어 가슴의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엄청 가슴을 압박해서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브래지어도 10년전에 다 버렸다. 대신 와이어 없고 신축성 좋은 스포츠브라 같은걸로 갈아탔다. 심지어 압박감을 최대한 안 받으려고 한치수 큰 걸로 샀다. 예쁘지만 가죽으로 만든 가방도 무거워서 들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역시 예쁘지만 굽이 높은 신발은 신발장에서 먼지와 한몸이 되어 있다. 미용보다 편함을 찾고, 편안함이 나의 건강이 될 것이라 믿으며 서서히 나는 나이들어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서글플 일도 아니었네. 억지로 버티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건강해지며 나이 들고 있는 중이니까.
다음엔 건강을 위해 또 어떤 미용적인 것을 포기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