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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닥 Feb 21. 2022

확진자의 소소한 변명과 앞으로의 계획

그간 격조했던 것에 관한 짧은 변명.


'코로나'에 걸려서 좀 아팠습니다. 켁!

2월 4일 금요일, 3차 주사를 맞을 예정이라 컨디션 관리 차원으로 설날부터 아무도 안 만나고, 동네 커피숍조차 가지 않고 오로지 집, 등산, 집, 등산의 생활을 했는데 말이죠. 6일부터 감기 기운이 있더니 9일 떡하니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왜죠? 도대체 왜입니까;;?



이제와서 '왜'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작년만큼 손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제 탓이겠지요. 병원 볼펜에서 묻어왔을지,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일지 알게 뭡니까. 손 소독도 거의 하지 않고 마스크를 제대로 꽉 여미지 않고 대충 걸치고 다녔던 제 탓이지요. 주사 맞고 안정을 취하라는 말도 무시하고 주사 맞자 마자 (마침 가장 추웠던 기간이었지요) 목도리도 안 하고 등산을 꼬박꼬박 다닌 탓도 있을 겁니다. 산 바람이 목을 파고 들어와 얼마나 춥던지 "겁나 춥네"라며 덜덜 떨며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일요일부터 목이 따끔따끔하고 몸이 나른해졌지만 추운 날 등산해서 그저 감기 기운일 거라며 코로나라는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고 화요일 지인들과 집에서 만남도 가졌지 뭡니까!(이 와중에 밖은 위험하니 집에서 보자며 우리 집에서 다들 만났지요) 등산만 다닌 내가 무슨 코로냐겠냐며 단순히 목감기일 거라고, 원래 나는 목감기에 잘 걸린다며 수다 떨었습니다. 하지만 수요일 아무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검사를 받아보니 '코로나 양성'판정이 나왔습니다. 아놔~망했습니다.


전날 지인들과 만난 것이 너무너무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픈 거는 그러려니 하는데 저 때문에 지인들이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아. 멍청이, 멍청이, 똥멍청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만나지를 말 것을, 자가검진이라도 하고 만났어야 했을 것을...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릅니다. 자가격리 일주일간 계속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지인들은 검사결과 다 음성이었습니다. 일주일 지나는 동안 별다른 증세도 발현되지 않으셨고요.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그렇게 열흘 이상 개인적인 컨디션 악화와 마음고생을 핑계 삼아 그림도 글도 안 쓰고 농땡 농땡 부렸습니다. 농땡이도 부려봤던 놈이 더 잘 부릴 줄 안다고~한번 농땡이 부리기 시작하니 한때 귀차니즘 학파의 귀차니스트였던 본캐가 스멀스멀 살아나서 어느새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있더라고요. 잊고 있었습니다. 집순이중의 집순이였던 저의 본 모습을요. 아픈몸을 핑계삼아 아무것도 안하고 미드만 보며 노닥거렸던 일주일이 얼마나 꿈같이 좋았던지요. 일주일이 지난 후 벌써 자가격리 해제일이냐며 진심 놀래며 집 밖에 나가야한다는 부담감이 스멀 올라왔습니다. 법적으로 집에만 있어야 했던 날들이 좋았는데... 이제 등산도 해야하고, 글도 쓰고, 만화도 그리는 일상으로 돌아와야하는 것이 귀찮았습니다. 최소한의 먹을 것만 있으면 가축같은 생활을 해도 나는 괜찮게 살겠구나라며 과일가게 가서 사과와 귤만 사 오곤 하루 종일 집에서 미드를 보며 계속 뒹굴거렸습니다. 뽀로로의 심정이었습니다. 노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그러다 지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글도 안써지고 작업도 안되고 손 놓고 살고 있다, 둘이 서로의 매니저가 되어 으쌰 으쌰 하며 다시 힘내서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지 않겠느냐면서요.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던 저에게 '일상으로의 초대' 전화였습니다. 더는 밍기적거릴 수 없구나,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하는구나를 속으로 되뇌이며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러합시다!라고 답을 주고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최고의 매니저가 되어 채찍질을 날릴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길래 같이 자가격리가 끝낸 후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안돼"


남편의 한마디는 단호했습니다.

"뭘 해도 안돼"

아니, 부인이 의욕적으로 뭔가 해보겠다는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어? 안된다니 뭐가 안된다는 거야! 지금 이렇게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게 아니라 활동적으로 글과 만화를 그릴 수 있는 뭔가 획기적인 계획을 짤 거라니깐! 그러니 도움을 달라고! 어떻게 하면 다시 열정적으로 해볼 수 있을까!! 응? 응? 아이디어를 짜 달라고!!

저의 버럭에 남편은 차분히 말했습니다.

부인이 예전에 학습만화 그릴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봐. 어떻게 일을 계속할 수 있었지?

그거야 마감이 있었으니까 할 수밖에 없었지. 출판사 마감 안 지키면 큰일 나니까.

그것 봐~그거라니까. 큰일 나니까 하는 거야. 근데 지금 부인은 큰일 나는 게 없잖아. 그러니 안되는 거야.

...... 응? 그런 거야...?

이모티콘 작업을 하다가 그만둬도, 브런치 글을 안 써도 큰일 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농땡이 부리고 있는 거라고요. 그랬던 겁니다.

"부인은 브런치에 독자들도 있잖아. 그런데 외면하고 있잖아. 이미 훌륭한 플랫폼이 있고,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으면서 그냥 외면하고 있는 거잖아. 그러면서 다른 데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찾고 있잖아. 없어. 없다고. 그냥 부인은 하기만 하면 돼. 그냥 하면 되는데 안 하는 거잖아. 그러니 무슨 계획을 짜든 안돼"

팩폭을 맞고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남편 말이 맞아요. 학습만화를 그릴 때는 원고료를 받았고, 마감이 있었고, 정말이지 하기 싫어도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 내서 했어야 했습니다. 지금 나는 원고료와 마감이 없으니 안 할 핑계만 찾으며 미적거리고 있어요. 돈을 받으면 지킬 수 있는 마감인데 무료라서 못 한다는 것은 그냥 하기 싫다는 거지요. 마냥 할 거라고, 하고 싶다고, 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잘될 거라고, 그러니 할 수 있는 열정 에너지를 달라고 징징거리고만 있던 저는 뭘하자는 태도였을까요. 

그만 징징거리고 그냥 해야겠습니다. 다른 길은 없어요. 길은 이미 알고 있는데 다른 곳에 더 쉬운 길이 있을까 봐 미적거리고 변명거리만 찾고 있었지요. 이제 그만 됐고! 군소리 말고 그냥 할껍니다.


*** 그래서 '월, 목 아침 7시 업로드' 다시 스타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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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 궁금하실까봐 말씀 드리자면,저의 코로나증상은 인후통이었습니다. 이틀간은 물한모금 삼킬때도 바늘 100개를 삼키는것처럼 아팠습니다.( 생각보다 사람은 침을 엄청 많이 삼키는구나를 알아챘습니다. 침 삼킬때마다 역시 바늘 백개를 삼키는 느낌이었어요. 진짜 너무 아프;;;) 이러다 아무것도 못 먹어서 굶어죽겠구나 싶더라고요. 사흘째 되니 끝이 뭉툭한 바늘 100개를 삼키는것 같더니 나흘째 완쾌 되었습니다. 오지게 아프더라고요. 다들 몸조심 하세욥!


TMI 2 : 사흘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극소량의 음식물만 섭취했더니 내장지방이 빠졌는지 윗배가 쏙~들어갔습니다. 고작 사흘 단식비스무리했을 뿐인데 말이지요. 내장지방 빼는거 별거 아닙니다, 여러분. 사흘만 소식하세요. 코로나로 얻은 유일한 장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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