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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나무 Jan 03. 2024

자연과 옛 조상들의 관계

문학과 미학을 통해 본 자연친화적 태도

  예로부터 자연과 우리 조상들의 관계는 긴밀하였다. 예를 들어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주제로 삼아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렸다. 대표적인 예로 한호의 ‘짚방석 내지 마라’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가 있다. 위 시조에서 한호는 방석 대신에 낙엽을, 관솔불 대신에 달을 원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연친화적 자세를 표현하였다. 또한 강희안의 작품에서는 일상의 흐르는 물에서 느껴지는 ‘느림의 시선’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자연과 친밀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의 어느 문인은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임포’라는 인물을 본인의 생활 속에서 모방하였다고 한다. 임포는 매화나무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신의 자식으로 여기며 산에서 홀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그 조선시대 문인은 매화를 자신의 의복이나 이불에 그려 넣었으며 심지어는 매화를 벽에다 새겨 넣는 등 매화에 대해서 광적인 태도를 나타내었다. 또 다른 어느 시조에서 한 시인은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강을 벗으로 삼고 청풍과 산도 자신의 벗으로 삼아 그들의 방을 양 옆에 두고 자신은 남아있는 한 방을 쓰겠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위의 예들을 보듯, 우리 조상들은 삶에서 ‘인간과 자신의 조화’를 추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비단 우리 조상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우리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조선 초부터 중국에 조공하기 시작했다. 즉, 우리나라는 15세기 초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따르면서 자연스레 우리 민족의 예술에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고려시대 청자에서 조선시대의 백자로, 개인적인 애상시와 군주에게 충정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고려가요, 서정시에서 유교적인 가치관을 드러내는 시로 바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친화적인 시나 회화들이 나왔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 자연친화적인 자세가 예술에 영향을 주어 나타난 대표적인 예로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이 즐겨 그린 ‘사군자’를 들 수 있다. 사군자는 대나무, 매화, 국화, 난초를 일컫는다. 이것들은 성리학이 중심사상이었던 조선의 지배층 문화를 드러내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것 역시 자연진화적이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일면에 해당한다. ‘자연친화’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인간의 자세를 나타낸다. 이 자연친화적 자세는 위에서 보듯 우리 조상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역별로 그 지역만의 특별함을 이용하여 많은 것을 자연으로부터 얻고 있는 실정이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정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오른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면 자연으로부터 상쾌함과 뿌듯함을 얻는다. 이 뿌듯함과 상쾌함은 힘들게 올라온 결과에 대한 보상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특별한 만족감을 누리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실제로 나 역시 이번 수학여행으로 간 제주도의 성산일출봉의 정상에 올랐을 때 매우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거니와 정상에 올라온 순간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가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후손들에게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지내는 법을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으로서 마땅히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도 인간과 자연이 서로 어울리고 조화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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