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기, 우리들의 숨겨진 이야기

세상에 맞선 한 용감한 돈키호테의 이야기

by 녹색나무
돈 아저씨는 가만히 손을 뻗어 은행 건물 벽에 손을 댔다. 그러고 나서 눈을 감고 머리를 벽에 댄 채 미동이 없었다 … 그거 알지? 세르반테스가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다가 수금액을 맡겨둔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감옥에 간 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찬란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이 찬란함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생각만 해도 행복을 느끼게 하고, 어깨를 들썩이게 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시절을 회상하게 만들곤 하죠. 팍팍한 현실과 어려운 한 때를 견딜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김호연 작가님의 『나의 돈키호테』라는 소설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이미 책의 제목에서 어느 정도 줄거리를 예상하셨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듯, 이 소설의 메인 테마는 바로 ‘돈키호테’입니다. 스페인의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인 『돈키호테』를 메인으로 삼은 책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기승전결 돈키호테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힘든 시기를 겪게 되는데요. 그 순간에는 모르지만 결국, 이 힘듦이 우리를 더욱 굳세게 하고 성숙한 미래로 이끄는 디딤돌이 되어 줌으로 우리가 인생에서 거센 파도를 만날 때마다 버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 준다는 점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진솔’은 서른 살 된, 전직 방송국 PD로, 현재 무직인 상태로 부모님 집에 거주하는 청년입니다. 방송국 일을 하다 일주일 전 때려치우고 대전에 머물고 있죠.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거의 없듯이 진솔에게도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중학생 시절, 진솔은 ‘라만차 클럽’이라는 모임을 했었고, 이 중심에는 솔이의 돈키호테라 할 수 있는 ‘돈 아저씨’ 장영수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다 여러 일을 진전한 이력이 있는 엘리트이자 유능했지만 남모를 상처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솔이에게 그는 인생을 가르쳐준 절친한 아저씨이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존재였죠. 나중에 솔이가 돈 아저씨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시작하는 계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엄마의 잔소리 폭탄에 도망치듯 찾은 옛 돈키호테 비디오 지하방에서 솔이는 돈 아저씨가 필사해 놓은 두툼한 『돈키호테』 1, 2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돈 아저씨의 아들인 ‘한빈’기사와 함께 돈 아저씨를 찾는 머나먼 여정을 시작하게 되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사람다운 가치관과 관점, 관계가 형성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소설 『완득이』에 보면 돈 아저씨와 유사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완득이의 담임이자, 조폭 스승인(?) 이동주 선생님을 들 수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 베트남 어머니와 키 작은 난쟁이로 불리는 아버지를 둔 완득이. 어떻게 보면 버릇이 없고 삐딱하게 반응하는 청소년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여러모로 완득이를 챙기는 모습에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겹쳤습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김려령 작가는 완득이의 아버지가 부드러운 닭고기가 아닌 일명 ‘고무닭’으로 불리는 폐닭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인생은 폐닭처럼 팍팍하고 질기지만, ‘찐산초’에서 ‘돈키호테’로 성장하는 솔이의 모습과 킥복싱에서 꿈을 찾은 완득이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희망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장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대를 흡입하는 블랙홀’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 책을 쓰신 김호연 작가님이 시나리오 작가이시기도 해서 그런지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마치 한 편의 시나리오 대본을 접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만약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나온다면 정말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만큼 본 소설의 구성과 전개방식은 잘 짜여져 있고 내구성 또한 탄탄합니다. 본 서평을 읽는 분들 가운데 현재 자신의 일상과 삶에 의문점이 생기고, 거대한 물음표를 느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과 더불어 2022년 4월에 방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시청을 강력히 권합니다. 다른 드라마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권하는 이유는 이 책과 잘 어울리는 아버지들의 ‘짠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대 갈등으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울분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녹차를 마시면 처음에는 쓰지만 입에 머금고 있으면 조금씩 단맛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눈물과 슬픔은 예고 없이 불청객처럼 갑작스레 닥치지만,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이 흘린 눈물방울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여중생이었던 솔이가 돈 아저씨를 만나면서 돈키호테를 받아들이게 되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 간 것처럼 지치고 곤한 인생의 여정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용기의 비타민, 돈키호테를 처방해 드리고 싶습니다. 필자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구절을 인용하면서 본 서평을 마치고자 합니다. 무차쓰(Muchas) 그라씨아쓰(gracias)!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에 머물던 시절은 그가 레판토 해전과 포로 생활이란 고초를 겪으며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전전하고 귀국한 뒤였다. 그는 상이군인이었고 전쟁포로였으며 한물 간 소설가였다.···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며 세금을 맡겨둔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횡령죄를 선고받고 감옥까지 가야 했다. 나이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한쪽 팔이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는 꿈꿨다. 신대륙에 가는 바람을 이루기능커녕 감옥에 갇혀야 했던 그는, 장애인에다 전과자에 불과한 늙은이인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꿈꿨다. 바로 이곳에서.2)


각주

1) 김호연, 『나의 돈키호테』, (고양: 나무옆의자, 2024), p.384.

2) 위의 책, p.386.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곰과 호랑이와 배짱이와 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