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의 기록과 생각의 파편들
이른 아침,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내 집을 방문했다. 오전 9시 반. 나는 그가 누른 초인종 소리에 뒤척이다가 겨우 일어나 그를 맞았다. 보통 같으면 11시 사이에서 정오에 일어나 간단히 점심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동이 떠오르는 해가 자신의 임무에 너무도 투철한 나머지, 나의 하루는 선로에서 벗어난 기차와 같이 마치 도착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승객을 태우자마자 출발할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12월 12일 ‘아카리’(アカリ)의 생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생일에 선물을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364일을 제외한 오직 하루, 즉 '생일이 아닌 날이 아닌' 날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라는 고민이 무색하게도 아카리가 생각하는 생일은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고 해야하는 것이 맞을지도. 아카리의 답은 질문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그저 단순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특별한 그녀의 생일은 누군가와 같이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생일에 함께 먹는 점심’ 어떻게 보면 가장 아카리다운 생일이지 않을까. ‘빛’을 뜻하는 ‘明里’에서 알 수 있듯 아카리가 하나의 빛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밤과도 같은 내 성격을 그녀가 너무 잘 알아서인지 좋아하는 음식 또한 역시 단출했다. 맵지 않은 일본식 된장과 초밥, 그리고 돈카츠 정도면 진수성찬이기 때문이다. 일본식 된장, 소위 미소 된장국은 한국식 된장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끓이는 법부터 정반대다. 한국의 된장은 오랜시간 끓여야 하고, 풀어넣는 된장이 진하다면, 미소 된장국은 너무 오래 끓이면, 텁텁한 맛이 강해지므로 된장 본연의 맛을 잃고 만다. 따라서 재료가 익을 정도만 끓여주면 된다. 재료도 한국처럼 복잡하지 않다. 버섯, 두부, 청양고추 등 다채로운 재료보다는 유부와 파 같은 단순한 재료가 생명이다. ‘된장도 이렇게 다른데 다른 것들은 얼마나 다를까?’ 생활과 패턴, 집과 사회에 대한 인식 또한 두 나라처럼 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멀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상으로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한 나라는 반도이고 다른 하나는 섬나라다. 과거 역사를 보면 한반도의 역사는 침략사가 적지 않다. 주위 국가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아야만 했고, 이를 인식이라도 한 듯, 나름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고려는 북진정책과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고, 조선은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며 사대외교를 했다. 후자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나름대로 그 시기를 잘 살아가기 위한 외교전략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섬이라는 독특한 지형과 환경에서 그들 또한 나름대로 전략이 있었을 것이다. 문화를 받아들이고 지진과 해일에 대비하고, 등등 자신들도 살기 위한 생존의 전략을 짰을 터. 백제, 근초고왕, 야마토..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 또한 내일을 위한 계획이 나름 있지만, 자취생의 하루는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또 학교 꿈을 꿨다. 저번에는 고등학교 시절 꿈을 꾸더니 이번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이 겹쳤다. 난데없이 박 선생님과 수학여행을 가다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학시험을 보는 꿈은 아니었다는 것. 수학 시험을 보면 시계가 등장하고 시계가 종을 치면 갑자기 토끼가 등장해 “너는 늦었어!”라고 선언한다. 그러면 학생은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되어 트럼프 병사들에게 끌려나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여왕 앞에 서서 재판을 받게 된다. 이 때, 하나같이 등장하는 증인들은 선생님이나 학생, 또는 지인의 지인들이다. 완득이가 똥주에게 '체벌 99대 집행유예 12개월'을 선고받은 것처럼 나는 시험에 재응시해야만 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점은 하필 많고 많은 과목 중에 응시할 과목이 오직 하나, 수학이라는 점이다. 도대체 소금물의 농도는 왜 구하는 것이며, 철수와 영희 중 더 빨리 뛴 사람을 가리는 것이 인생에 무엇이 도움이 된다는 점인가? 삼각함수와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또 어떻고? 차라리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말하기 듣기, 쓰기 등 과목을 배우는 것이 훨씬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나? 더욱 신기한 것은 학교 꿈을 꾸면 그날 하루는 무난하게 보낸다는 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것처럼 무난은 학교를 필요로 하고 학교는 학생을, 그리고 학생은 시험을 필요로 하는 필요와 불충분 사이 그 어딘가에 나는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