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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Nov 07. 2021

'모두를 위한 권력'이라는 불가능한 꿈

<권력의 원리>, 줄리 바틸라나, 티치아나 카시아로


별들이여, 빛을 감추어라.
그 빛이 내 마음속 깊은 곳의 검은 욕망을 보지 않도록.
<맥베스>     
권력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사진은 영화 <맥베스>


1. 권력의 변하지 않는 속성 - 마키아밸리 <군주론>     


모든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권력의 절대적인 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절대반지’와도 같은 권력의 어두운 속성을 탐구하여 서양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 <군주론>을 썼다. 샤를 5세, 루이 14세, 비스마르크부터 히틀러, 스탈린, 처칠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책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의 마차에서도 발견된 책이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적인 권력론에 따르면 인간은 “배은망덕하고 변덕스러우며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며 비겁하고 탐욕스러운 존재”이다. 그래서 당신은 누군가가 베푸는 호의에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결코 좋은 일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진정 권력을 원한다면, 뻔뻔하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것을 쟁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약한 자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 철저하게 짓밟힐 것이다. 16세기에 정립된 ‘권력의 원칙’, 마키아밸리즘은 이후 국가 지도자와 CEO를 꿈꾸는 이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과연 인간은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속이고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것일까?     

1550년 판 <군주론>의 표지


2. 권력에 대한 오해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줄리 바틸라나)과 토론토대 로트만 경영대학원(티치아나 카시아로)의 조직행동학 교수인 저자들은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통념에 대해 반기를 든다. 저자들은 1) 권력은 소유의 대상이고, 2) 부자와 유명인, 고위직들만 권력을 얻고 유지할 자격이 있으며, 3)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3가지 잘못된 인식이 개인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사회적으로도 재앙(민주주의의 약화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상대보다 더 힘이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자원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들은 권력관계를 안전과 자존감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의 활용, 즉 돈(물질적 부), 지위(명예), 소속감(사회적 연결), 성취감, 자율성, 도덕성의 주고받음으로 세분화하고 권력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나 조직의 신뢰성을 높임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능력도 모두 권력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며, 권력이란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왜 힘을 갖고 있는지’에 관한 네트워크 배치도, 즉 힘의 지도를 그리고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가령 회사원인 당신이 회사에서 권력이 있는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사람들이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려고 찾고, 기꺼이 그 말을 들으려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고 관찰해야 한다. 저자들은 다양한 경영학의 성공 사례를 제시하면서, “우리 주변에서 본받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라는 질문의 범위를 늘려 나가고, ‘힘의 지도’를 파악하여 나의 반대자가 아닌 ‘중립자’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자신이 속한 부서나 조직 밖으로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여러 조직 간에 연결자 역할(가교 중심성 betweeness centrality)을 하라고 조언한다.    

 

 

3. 기득권과 자본주의 뜯어고치기 : PC(정치적 올바름)와 ESG 경영     


이렇게 책의 절반인 4장까지 개인의 자기 계발과 회사의 조직경영에 관한 비즈니스적 접근을 하는 것처럼 보이던 책은 5장부터 사회, 국가의 차원의 권력관계로 이야기를 급격하게 확장해나간다. 힘의 지도에서 이미 소수이고 차별받는 집단에 속해 있을 경우 권력관계의 다양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권력 불균형은 개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해소할 수 없다. 저자는 힘을 가진 사람만이 계속 힘을 쌓아 가는 '영원한 왕국'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여성과 유색인종, 성 소수자, 종교집단, 장애인, 원주민 등을 둘러싼 오래된 권력 구조가 해체된 사례를 들어 사회 시스템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PC(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그러한 기득권 비판은 현재의 사회경제 시스템 전반에 만연한 불평등 구조 자체를 향한다. 2010년대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포퓰리스트 운동(Black Lives Matter, 홍콩 시위, 미투 운동, 노란 조끼 시위, 아랍의 봄)의 물결은 결국 권력 하층부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시스템을 거부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집단 연대의 움직임이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대기업들의 힘을 축소하고, 기업이 주주 이익 극대화가 아닌 환경적, 사회적 영향력을 인식해야 하며, 긱 경제와 비공식 경제에서 주주와 경영진이 아닌 근로자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ESG 경영은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현실의 자본주의가 마치 민주주의의 권력분립 메커니즘처럼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과도한 권력 집중은 기업에서나 사회 전체적으로나 결국 남용과 폭정을 부르게 되므로, 우리는 권력 견제와 공유가 모두의 책임임을 깨닫고 ‘집단적 권력’을 지향하는 민주 시민으로서 힘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인류는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권력에 관한 긴 논의는 존 롤즈의 <정의론>에 나온 사고 실험으로 귀결된다. 당신은 백지상태의 새로운 사회에 참여하게 되지만, 어떠한 사회적 지위도, 타고난 능력도 알 수 없다. 이러한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당신은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롤즈는 지위와 능력에 따른 편견을 제거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행복과 기회를 고려한다면, 사회는 정의롭고 공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정의론>이 출간된 지 40년이 흘렀지만, '정의'란 가치는 막연하고, 자본의 위세는 더 강해졌으며, 사회적 연대의 그물망은 점점 해체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 같은 약육강식의 논리는 세상(=자연)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이치이며, 자본의 게임 앞에서 인간의 이상과 기대는 자주 허물어진다. 저자들이 외치는 권력의 제한과 공유는 결국 모두가 가장 우선적으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자원, 돈의 배분에 그 승패가 달려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1인 1 표제 같은 체제를 자본주의에서 실현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며(인류는 이미 공산주의의 실패를 겪은 바 있다), 자본의 집중에 따른 민주주의의 약화는 머니 게임이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얼굴, ESG 경영도 마찬가지이다. 소비자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고, 근로자와 이익을 공유하고, 근로자의 성별과 인종을 다양화하며,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공급자와 거래하고, 지역 커뮤니티도 지원하고, 미래 세대의 환경까지 보호하는, 이 모든 책임을 다하고 모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힘쓰는 기업은 정말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ESG 기준을 지키는 일과 기업의 이익 추구라는 가치가 실질적인 의미에서 충돌하는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다. 기업과 경영자들이 이익 창출 이외의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지향할 수 있는 체계가 정립되지 않으면, 안정적인 수익 창출과 성장이라는 지상 목표는 어느 순간 다시 기업을 잠식해버릴 것이다.


5. '모두를 위한 권력'이라는 불가능한 꿈


결국 우리의 사회는 기존 질서의 권력 구조와 만연한 불평등에 의존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인간의 역사를 두고, "불행하게도 복잡한 인간사회에는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단한 바 있다(<사피엔스> 8장'역사에 정의는 없다', 200쪽). 과연 21세기의 인류는 오래도록 인류와 함께 한 마키아밸리 식 권력 구조를 뒤엎을 수 있을까? 분명 현실의 권력 지형이 변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 그려진 힘의 지도에는 또 다른 공고한 권력과 깊어지는 불평등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책의 원제 '모두를 위한 힘'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향하여


※ 싱큐베이션 11기 두 번째 도서 <권력의 원리>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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