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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Oct 24. 2021

비전이라는 낙관주의

<모두를 움직이는 힘 - 위대한 리더의 조건, 비전>, 마이클 하얏트

저도 위대한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만


“당신은 NASA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존 F. 케네디 대통령)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NASA의 청소부)    


이 유명한 일화는 지도자의 명료한 비전과 언어가 어떻게 조직을 감화시키는지, 또는 단순한 일(job)이 아닌 소명(calling)으로서의 직업의식을 갖는 것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모두를 움직이는 힘>은 케네디 대통령의 우주탐사와 같이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리더십을 가능하게 만드는 비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자신만의 비전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방법(비전 스크립트 쓰기)과 예상되는 장애물(조직의 저항)을 헤쳐나가는 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당시 열네 살이었던 저자 마이클 하얏트는 ‘내 인생에서 그보다 더 흥분되고 경이로운 순간은 없었다’라고 회상하며, 케네디의 정치적 비전을 기업 경영과 리더십 일반에 접목시키려 한다.   


   

"We choose to go to the Moon." 전설적인 1962년 9월 12일 케네디의 라이스대학 연설


그런데 ‘인류를 달에 보낸 NASA 청소부’ 이야기는 과연 진짜일까? 곰곰이 따져보면 위 일화에는 이상한 점이 많다. 우선 이야기의 출처도, 청소부의 이름도 확인할 자료가 없다. 존 고든의 <에너지 버스>에서는 청소부를 만난 대통령이 케네디가 아닌 후임 린든 존슨으로 바뀐다. 버전에 따라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한밤중에 복도를 지나다가 청소부를 만난 것으로 나온다(대통령의 도착 전에 미리 깨끗이 청소해두라는 업무 지시라도 있었던 것일까). “나는 대통령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대화 형식도 어린이 영어 교재의 대화처럼 어색하고, 경호원의 사전 통제 없이 평범한 직원이 대통령과 맞닥뜨리는 상황도 상식 밖의 일이다.      



결국 위대한 지도자의 명료한 비전에 동참하는 NASA 청소부 이야기는 증명할 수는 없지만 각종 책, 학술지, 기사 등을 통해서 사실처럼 떠도는 일종의 ‘도시전설(Urban tale)’일 것이다. 아마도 이야기의 원전은 런던의 랜드마크인 세인트 폴 대성당 건축 당시 건축을 총괄한 크리스토퍼 렌 경과 작업공의 일화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크리스토퍼 렌 경) 
“저는 전능하신 분께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다.”(미천한 작업공)    


세인트 폴 대성당의 벽돌을 쌓아 올린 작업공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서두에 나온 NASA 청소부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쓴 이유는 <모두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매력적인 제목으로 관심을 끄는 이 책 역시 일종의 도시전설 모음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책은 효과적이고, 명료하며, 조직 구성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으로 인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는 위대한 기업의 사례들을 제시한다. 조지 이스트먼의 코닥, 헨리 포드의 모델-T,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같은 이미 전설로 남은 사례부터 최근 10여 년 동안 있었던 에어비앤비,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마블의 성공 사례까지. 이 책을 읽으며 독자 스스로 매력적인 비전을 가지거나, 당장 리더가 될 위치에 있지 않다면 적어도 그런 비전을 가진 리더가 있는 조직에 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제시한 수많은 기업의 성공 요인을 모두 비전과 리더십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복잡계인 세상, 특히 시장의 영역은 무작위적이고 비연속적이며 비선형적인 일들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은 무작위성에 속아, 우연히 일어난 일과 인간의 통제 밖의 일 사이에 인과관계를 부여한다. 또한 과거의 사례에 대한 분석이 갖는 중대한 문제는 결국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는 것이다. 정규분포에 비해 극단적인 성공 사례(정규분포 곡선의 두꺼운 꼬리)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나, 당첨되지 않은 대부분의 로또들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우연이나 행운의 탓인 것도 과도하게 승자의 능력 덕분으로 생각하고 승자를 연구하다 틀린 교훈을 얻을 때도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위대한 비전을 가진 기업들에 패배한 수많은 기업들은 과연 비전이 없었을까? 패자들도 똑같이 비전을 가지고 행동했지만, 그저 시장이 배분하는 운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나심 탈렙이 ‘고요한 무덤’이라 부르는 생존자 편향에 갇혀, 오늘도 성공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한다.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마이클 모부신의 <운과 실력의 성공방정식>에는 ‘모방해서는 안 되는 성공 전략’이라는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한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와 같이 성공적인 기업을 관찰해서 모방하는 경영 서적이나 경영 방식은 이른바 ‘과소 표집 undersamlping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기업만 가려내어 분석하고 그 기업의 전략이 성공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며, ‘이 전략을 실행한 기업 중 실제로 성공한 기업은 몇 개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 복잡계 속에서 기업의 성과를 제대로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모두를 움직이는 힘>의 내용에 적용시킨다면, ‘리더가 조직 구성원들 모두 공감할만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한 모든 기업 중 실제로 성공한 기업은 몇 개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정말로 그들은 비전이 없어서 시장에서 퇴출당한 것일까?    


  


뭔가 익숙한 내용들


구체적이고 명확한 비전을 세우기 위한 기록, ‘비전 스크립트’의 내용도 사실 익숙한 자기 계발의 레토릭 중 하나이다. <3개의 소원 100일의 기적 – 잠들기 전, 쓰기만 하면 이루어진다>(이시다 히사쓰구 저) 같은 책처럼, 감사 일기, TO-DO 리스트, 불렛 저널 다이어리 등 꿈을 이루기 위한 마일스톤이자 매일의 습관으로 기록하기의 중요성은 많은 이들이 체감하고 이미 실천하고 있는 행동 방식이다. ‘비전 스크립트’는 결국 자기 계발하려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의 CEO들도 ‘회사가 돌아가는 방향에 대해 생각 좀 하면서, 종이를 펴놓고 일단 좀 써봐라’라는 내용처럼 읽힌다.    


  

탁월한 리더가 되도록 비전을 그려야 한다는 책의 메시지는 결국 캄캄한 어둠(삶) 속에서 희미한 별빛(성공)을 따라가라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내재된 낙관주의의 작동 방식과 같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미래의 성공에 대한 기대와 ‘도전하면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 자기 관념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생산에 뛰어들게 하는 핵심적인 생산 토대가 된다. 낙관의 주체는 자기 자신을 희망찬 상태로 인식할 뿐 아니라 나름의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하기 때문에 매일 모든 일에 의욕적이고 활기차 보인다. 문제는 그러한 노력으로 피드백되는 낙관(비전)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해 보이는 착각을 부여하기에 개인을 미래의 성공에 끊임없이 매달려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비전이 있다고 누구나 잡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려면 당연히 비전을 가져야 한다(물론 비전 없이도 성공할 확률은 있다). 하지만 비전을 가진 모두가 당연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자신의 비전 스크립트를 가다듬는 것은 분명 불안한 삶을 지탱하는데 유용한 태도이겠으나, 세상은 그 비전의 실현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너무 크게 좌절하지는 말고, 이전 스크립트는 찢어버리고, 새로운 비전을 다시 써보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하루를 버텨나가는 것. 그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이자, 공평하게 불확실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다.


※ 싱큐베이션 11기 첫 번째 선정도서 <모두를 움직이는 힘>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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