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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Oct 23. 2021

맞건 틀리건, 예측하는 인간

<미래 시나리오 2022 - 백신 작동 이후의 세계>, 김광석 외3 


갑작스러운 찬 바람이 느껴질 때, 서점 매대에는 마치 점집을 찾듯이 다음 해에 일어날 일들을 먼저 알고 싶어하는 트렌드/미래 전망서적들이 등장한다. 인간에 대한 가장 알맞은 설명이자, 인간을 다른 종과 다르게 지혜로운 존재로 만드는 본질적인 능력은 바로 미래를 예측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일 것이다. 물론 작년의 갑작스러운 코로나 사태처럼 모든 예상 시나리오가 무의미하게 먼지처럼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올해도 인간은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구하듯이 낙관적인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내년의 미래를 예측한다. 


이 책은 더 야심차게, 아직 한 여름인 올해 6월에 2022년에 펼쳐질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고 장담하며 출간된 책이다. 예년이라면 무모하게 느껴졌을 시도는 코로나 백신이라는 게임체인져의 등장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팬데믹 2년 동안 재택근무나 원격수업과 같이 우리의 일상은 새롭게 구성되었으나, 코로나 시대를 만든 모든 기술들은 전에 없다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팬데믹은 이미 뿌려져 있던 변화의 씨앗들을 잭의 콩나무처럼 성장시키는 질소비료 같은 역할을 했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백신을 확보한 인류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출몰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야심차게 ‘리오프닝’, ‘위드코로나’라 부르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그 진통 속에서 개인, 기업, 국가와 관련된 모든 변화의 추세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급격한 단축을 겪었다. 내년은 숫자상으로는 2022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처럼 갑작스럽게 눈앞에 다가온 2030년이기도 하다. 이 책의 예상 시나리오처럼, 백신 작동 이후의 어느 정도 ‘예정된 미래’를 향해 모두가 더 빨리 뛰거나 달아나려고 애를 쓰는 한 해가 다가오고 있다. 


저자들의 예상은 비록 평이하지만, 팬데믹 이후 세상의 주요 흐름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출간 이후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가장 빠르게 예상 시나리오에 도달했고 앞으로도 더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단연 인플레이션의 위협과 통화팽창 시대의 종언일 것이다. 과연 팬데믹 극복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 세계 경제에 고민 없이 털어넣은 유동성은 지난 10여 년 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까? 


인류는 미래를 예상하는 만큼 과거를 기억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현재의 경제 환경에서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떠올린다.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의 충격, 중국의 정전 사태, 일손이 없어 항구 앞에 정박해있는 컨테이너선, 실종된 이주민 노동자들과 트럭 운전사, 인력 수요의 급증,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은 중앙은행의 모호한 발언 등의 경제 뉴스는 실망스러운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과 더 높은 인플레이션, ‘공짜 점심은 없다’는 악몽들이 결합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을까하는 전망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과거와의 차이점을 따져보면 충분히 다른 시나리오를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인상을 요구할 노조는 경제 구조의 변화 속에서 사실상 와해되고 있고,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들의 생산성 성장세는 꺾이지 않고 있으며(물론 반독점과 규제 리스크가 버티고 있지만),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자신들이 손에 쥔 통화정책이라는 무기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데 상당히 효과가 좋다는 것을 길었던 저금리 시절을 보내며 습득했으며, 새로운 보호무역주의로 무장한 패권 전쟁 속에서 국가재정의 한계, 적정 국가채무를 둘러싼 논쟁은 한가한 담론으로 여겨진다. 인플레이션은 ‘그 기간이 다소 길어졌을뿐’ 여전히 일시적이고, 세계 경제는 더 뜨거워질 도약의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의 금융시장과 공급망이 거대하게 통합된 복잡계 속에서 급변하는 세상은 우연한 기회와 가혹한 도태를 같이 안겨준다.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흐름에 휘둘리는 작은 개인이지만, 자연 속에서 생존하는 모든 생명이 그렇듯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맞건 틀리건, 오늘도 예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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